목욕하는 민지.jpg “있잖아~ 너희들 애기 머리는 어떻게 감겨? 우리 ○○이는 머리 감는 걸 너무 싫어해서 말이야. 애들 머리 감기는 게 제일 힘든 것 같지 않아?”
 
여자 동료들끼리 모였는데 한 선배가 아이 머리카락 감기는 법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상당수 아이들에게 있어 머리 감기는 도전해야 하는 일이다. 어른인 우리는 머리 감는 것이 대수로운 일이지만, 아이들에게 특히 머리가 긴 여자 아이에게는 머리를 감다 물이나 비눗물이 눈이나 코로 들어갈 수 있다는 공포감으로 머리 감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한 선배는 아이가 머리 감는 걸 너무 싫어해 머리 감기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고 얘기했고, 한 선배는 아이가 울어도 “머리는 감아야지”하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감긴다고 했다. 
 

사실 머리 감는 것과 관련해 나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다. 4~5살 무렵이었을 때의 일이다. 어렸을 때 나를 돌봐주셨던 큰이모께서 내 머리를 감기기 위해 세숫대야에 물을 떠넣고 머리를 수그리라고 했다.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나는 큰이모께 “안아서 머리 감겨달라”고 칭얼댔다. 그런데 그때 힘든 일이 있었는지 큰이모께서는 “이모가 힘드니까 엎드려서 머리를 감아보자”고 했다. 잔뜩 긴장한 채 나는 울먹이며 머리를 수그렸고, 이모는 비누칠을 해서 머리카락을 감겼다. 그런데 어느순간 비눗물이 약간 내 눈으로 흘러들어왔고, 놀란 나는 고개를 쳐들고 “비누~ 비누~”라고 외쳤다. 고개를 쳐드니 비눗물은 더욱 더 눈에 많이 들어갔고, 나는 마구 울어대면서 “비누~ 비누~”하고 소리쳤다. 힘든 일도 많고 동생의 아이까지 돌봐주느라 아마도 큰이모는 힘들었을 것이다. 고개를 수그려야 계속 머리를 감길 수 있는데, 무작정 울면서 머리를 감지 않겠다고 버티는 내가 밉기도 했을 것이다. 당시 빨래를 할 때 이모께서는 빨래방망이로 빨래를 탕탕 두들겨 빨았는데, 큰이모께서는 머리를 수그리지 않는 나를 빨래방망이로 사정없이 두들겨팼다. 그것은 내가 가족으로부터 받은 최초의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그때의 공포와 충격이란. 나는 이 일을 초등학생, 중학생, 아니 대학생이 되어서까지도 큰이모께 두고두고 말했다. 그때 이모에게 빨래방망이로 맞은 것이 너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고, 그때 나는 많이 놀랬었다고. 이모는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엎드려 머리 감는 것을 무서워했던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머리 감는 것에 대한 공포때문에 빨래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경험이 있는 나는 머리 감는 것에 대한 아이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첫 아이를 낳아 머리를 감길 때도 최대한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어떻게 하면 아이가 덜 무서워하면서 머리를 감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아이를 안고 머리를 감기는 것은 어느 정도 어릴 때만 가능하다. 3살 정도까지는 안아서 머리를 감길 수 있었다. 그런데 4살 무렵이 돼 아이가 무거워지면 엄마가 쭈그려앉아 아이를 안고 머리를 감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 무렵 내 눈에 띈 것이 샴푸 의자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샴푸 의자. 아이가 편하게 누워 있을 수 있는 각도에 미용실에서 머리 감을 때 목을 받쳐주는 의자처럼 목 부분에 부드러운 받침이 덧대져 있다. 의자처럼 생긴데다 각종 샴푸 의자 후기를 보면 아이들이 마술처럼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는다고 했다. 폭풍 검색을 통해 민지가 좋아하는 뿡뿡이가 그려진 샴푸 의자를 구입했고, 나는 이젠 머리 감기 노동에서 해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항상 예상했던 것처럼 진행되지는 않는다. 샴푸 의자만 있으면 쉽게 머리를 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딸은 샴푸 의자에 앉아 눕는 것을 싫어했다. 의자에 앉아 샴푸질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샴푸 의자에 즐겁게 앉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일단 그냥 의자처럼 사용했다. 샴푸 의자에 누워 놀도록 했다. 샴푸 의자에 누워 노래도 불러보고, 인형놀이도 하고, 머리 감는 흉내도 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흐른 뒤, 실제로 욕실에서 샴푸 의자에 앉아 머리감기 실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민지는 또 물이 머리에 닿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려고 했다. 이번엔 민지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마음대로 지어내는 이야기다.
 
 
“옛날에 옛날에 토끼 한 마리가 살았어. 토끼는 저 산골짜기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려고 했지~ 할머니 생신이어서 할머니께 꿀밤 10개를 가져다드리라고 엄마가 심부름을 보냈대. 그래서 산 고개 하나를 넘었어. 거기 누가 있었을까? 민지야~ 산 고개 하나 넘으니 누가 있니?”
“음... 호랑이!”
“아~ 어흥 호랑이가 있었구나~호랑이는 토끼가 가지고 있는 꿀밤이 너무 맛있게 보였어. 그래서 토끼한테 ‘토끼야, 토끼야... 나 그 꿀밤 하나만 주면 안될까? 난 하루종일 밥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파’하고 말했대. 그래서 토끼는 꿀밤을 줬을까 안줬을까?”
“음.... 줬지~ 꿀밤 줘야지. 배고픈데. 엄마~ 친구랑 맛있는 거 나눠 먹어야지 착하지.”
“와~ 그렇구나. 토끼는 착해서 꿀밤 하나를 나눠줬구나. 토끼가 꿀밤 하나를 주니까 꿀밤 9개가 남았어. 호랑이는 토끼한테 너무 고마워서 나중에 꼭 당근을 하나 준다고 말하고 사라졌대~”
 
이런 식으로 산고개를 8~9개 넘다보면 아이는 엄마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다 머리 감는 것을 끝낸다. 여기서 포인트는 그냥 엄마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지 말고, 아이에게 질문을 하면서 함께 얘기를 만들어간다는 것. 단, 아이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좋아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민지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날엔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신나게 불러보기도 한다. 수십번 이렇게 하고 나니 아이는 거리낌 없이 샴푸의자에 앉았고, 1년 정도 지나 5살 중반이 넘어가자 이젠 본인 스스로 엄마처럼 엎드려 감아보겠다고 했다.
 
 
머리 감기기. 아주 사소하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머리 감는 일 하나를 아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엄마는 필살기를 펼친다. 아마도 나처럼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울리지 않고 머리를 감기기 위한 각종 필살기를 개발하고 있으리라. 갑자기 다른 엄마들의 필살기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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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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