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527_483452301686158_822313804_n.jpg » 마곡사 주변 풍경. 단풍잎이 예쁘게 물들었다.

 

나는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인정 욕구도 강하다. 호기심도 많고, 사람도 좋아한다. 능력은 출중하지 않지만 뭐든지 내게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 칭찬을 받기도 한다. 반대로 이런 성격으로 내 몸과 마음을 혹사하는 경우도 많다. 남들에게 “잘한다”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나에게 과부하가 걸린 줄 모르고 무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에게 어떤 제안이 오거나 만나자는 요청이 들어오면 잘 거절하지도 못한다. 또 목표를 정해놓고 반드시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런 내 성격이 좀 달라졌다. 나보다는 좀 더 폭넓게 삶의 면면을 바라보는 남편 덕으로 나는 눈 앞에 놓인 일만 생각하다 진짜 중요한 것(예를 들면 건강이나 가족, 신뢰와 같은 가치)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덜하게 됐다. 뭔가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잔뜩 긴장한채 ‘이것 아니면 곧 죽을 것 처럼’ 행동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어떤 일이든 요란스럽지 않게 해내는 장점이 있다. 또 남편은 자기 에너지의 한계에 대해 잘 알고 무리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 편이다. 그런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정신적인 편안함을 느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내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엄마를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예쁜 사람으로 알아주는 아이들이 있기에 나 있는 그대로를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 내 아이들에게는 엄마인 내가 온 우주이고 온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저 내가 말타기를 해주고 뽀뽀를 해주고 뒹굴뒹굴 해주기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웃음소리를 낸다. 그 웃음소리는 천국에서 천사들이 내는 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내 아이들이 나랑 있을 때 행복해하는 모습은 내게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IMG_7841.JPG » 즐거운 아이들.

 

이렇게 장점으로만 받아들였던 결혼과 육아가 최근 내게 짐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결혼과 육아로 인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결혼과 육아가 내 발전과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내게 온 기회를 붙잡아 잘 해내야 하는데, 가정에 묶인 몸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는 게 화가 났다. 이렇게 마음에 자꾸 바람이 부니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번뇌에 휩싸였다. 제2의 사춘기가 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아, 왜 나는 이렇게 많은 역할들을 해내도록 강요받는거지?’ ‘도대체 왜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하고 있지?’ ‘과연 인생이란 무엇이며, 나는 이 세상에 왜 왔나? ’‘내가 가고 있는 이 길, 잘 선택할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밤마다 스멀스멀 올라왔고 나를 괴롭혔다. 몸은 항상 피곤했고, 어쩌다 마신 술이 일주일 내내 해독되지 않아 해롱해롱했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일에 집중이 되지 않으니 무엇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이상한 것은 이런 때일수록 만나자는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쓰는 육아기와 이 주에 한번 쓰는 서평, 이 주에 한번 쓰는 건강면 기사, 한 달에 한번 쓰는 칼럼과 베이비트리의 전반적인 관리가 고정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베이비트리 콘텐츠를 알리는 일뿐만 아니라, 베이비트리 독자와 활발한 소통을 지향하며 댓글와 오프라인 모임도 주도한다. 지면에 기사를 발제해서 육아 관련 기사도 계속 쓰고 싶어 그런 부분도 고민을 하고, 가끔 지면 기사도 발제해서 쓴다.  

최근 우쿨렐레가 너무 배우고 싶어 일주일에 한번 사내 우쿨렐레 모임에 합류하기 시작했고, 한의학에 대한 관심으로 한의사협회에서 일주일에 한번 하는 최고위 한의약 정책관리자 과정을 듣기 시작했다. 식품기자포럼에서 수차례 연락이 와 한 달에 한번씩 가서 식품 관련 강의를 듣고 식품 관계자들을 만나고, 출판사에서 책을 쓰자는 제안이 와 연말까지 책 원고를 마감해야 한다.  이 와중에 읽고 싶은 책들은 많아 밤늦도록 책을 보다 잠자기도 했다. 매일 매일 쏟아지는 신문 기사와 잡지 기사도 대충은 훑어봐야 한다. 그래야 이슈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트렌드도 알 수 있다. 또 끊임없이 기존 취재원과 새로운 취재원을 만나고 연락해야 한다. 모든 기사는 사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mm.jpg » 명상하는 내 모습   

 

5살, 3살 아이는 여전히 엄마를 많이 필요로 한다. 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다차원적인 관심과 사랑을 요구한다. 환절기인 요즘에는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생강차와 유자차를 먹이면서 날씨에 적합한 옷을 입히는 정성을 기울인다. 첫째는 요즘 부쩍 책을 읽어달라는 요구가 늘었다. 목이 아파도 아이가 읽어달라고 하면 재미있게 신나게 읽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둘째는 요즘 스티커 책에 재미를 붙였다. 스티커를 떼서 여기저기 같이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 뿐인가.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나면 가을에는 가을 소풍과 무슨 무슨 체험 등을 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간식과 도시락도 신경써야 한다. 아이가 요즘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는지, 아이를 보살펴주고 있는 시터와의 관계는 어떤지 등등도 잘 살펴야 한다. 시터분께서 우리와 생활하신 지 1년이 넘다보니 서로 너무 가까워져 긴장감이 다소 풀려 그런 부분을 고려해 시터와의 관계 정립도 신경써야 한다. 또 주말이면 아이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 나들이 계획도 세워야 한다.  
 
 
살림은 또 어떤가. 요리나 청소는 시터분께서 대신 해주고 있어 상대적으로 덜 신경을 쓴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번은 장을 봐야 하고, 집안 곳곳 정리할 시기가 됐다. 정리를 자주 하지도 않고, 잘 하지도 않으니 집안이 산만해져 자꾸 내 신경을 건드렸다. 분기별로 아이들 책장 책도 바꿔줘야 하고, 옷장 정리도 해야 하고, 베란다에 쌓인 장난감들도 정리를 해야 한다. 집안의 대소사도 챙겨야 하고,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로 대출 관계도 알아봐야 한다.
 
 
정말 나는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해내고 있고, 해내야 한다. 슈퍼우먼이 아니고서는 이런 일들을 모두 잘 해낼 수 없다. 어떤 영역에서는 30점일 수도 있고, 어떤 영역에서는 90점 정도가 가능하다. 모든 영역에서 100점을 맞을 수는 없다. 그리고 상당수 일들은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해야하고, 협조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내 마음은 이 모든 것을 나 혼자서 잘 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완벽한 나를 바란 것이다. 내가 하루 하루 쓸 수 있는 에너지와 내가 소화해 낼 수 있는 일정들, 나를 둘러싼 여러 여건들을 고려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때 그때 내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일을 벌였다. 당연히 과부하가 걸렸고, 내 몸과 마음이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tree.jpg » 마곡사 내 아름다운 나무.

 

 

이렇게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중, 한겨레 여성회에서 ‘휴 캠프’를 떠난다는 메일이 왔다. 한겨레 휴센터에서 운영하는 ‘휴’프로그램을 여성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다. 토요일 오전 9시에 떠나 일요일 오후 4시에 도착한다고 했다. 태화산 숲길도 걷고, 몸의 순환을 돕는 유기압법 체조도 배우고, 명상도 하고, 자연 채식으로 디톡스를 한다고 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절오의 기회라 생각했다. 사실 휴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꼭 가보고 싶었지만, 마음만 있을 뿐 가보지 못했다. 이메일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을 뒤로 한채 그냥 떠나고 싶었다. 휴센터의 카피이기도 한 ‘아무것도 하지 않을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남편과 시터분께 양해를 구했다. 이번 여성회 캠프는 꼭 가고 싶다고 애원하듯 말했다. 남편과 시터분께서는 허락했고, 나는 지난주 토요일과 일요일 공주 마곡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과 가정에 묶여 폭발할 것만 같던 내 마음도 대자연의 품에 안기니 잠잠해졌다. 내 마음에 쌩쌩 불던 바람도 고요해졌다. 특히 캠프 프로그램에서 호흡명상, 빛명상, 관상명상 등을 배우며 조용히 앉거나 누워 명상을 했다. 술도 먹지 않았고, 숲길을 걸을 때도 서로 말하며 떠드는 게 아니라 침묵하면서 자연을 느끼고 자연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일정이 꽉 짜여있지 않았고, 참가자들의 상태에 따라 조율됐다. 모든 것을 다 잊은채 그저 내 호흡에 집중하고 내 몸과 마음에 집중했다.

 

캠프를 떠난 토요일 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자다 깨지도 않고 푹 잠을 잤다. 평소 꿈을 꾸기도 하고, 잠을 자다 중간에 깨 잠이 안와 책을 보는 경우도 많았는데 간만에 아무 상념없이 푹 잤다. 빨갛고 노란 단풍들을 보면서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비온 뒤 숲에서 나는 그 맑은 향기가 내 몸에 푹 젖어들었다. 일 하면서 아이들도 잘 키우고 집안 정리도 말끔하게 정리하기를 바라는 남편에 대한 분노도 많았는데 그런 분노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엄마가 전적으로 보살펴주지 않는데도 밝고 건강하게 커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내 마음의 긍정심도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P1080512.JPG » 한겨레 여성회 휴 캠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버리고 포기하고 안하고 거절하는 것도 큰 용기이고 삶의 큰 지혜라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나는 무엇인가 일을 만들어 도모하고, 물건을 모으고, 어떤 일을 선택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것 것들을 잘 하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버리고 포기하고 안하고 거절하는 것을 잘 해야 생활이 번잡해지지 않는다. 삶이 너무 복잡하면 불행해지고, 단순해질수록 삶은 풍요로와진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점을 깨닫고 나니 한결 내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연말까지는 내가 이제까지 벌여놓은 일들을 잘 추스리면서 큰 탈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포기하거나 거절하겠다 다짐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많은 선택지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이제는 그런 아쉬운 마음도 접기로 했다. 예를 들면 중요한 회의가 생겨 식품기자포럼 강연을 듣지 못하게 됐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죄책감도 가지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상황에 대해 모두 내 탓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P1080636.JPG »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아마 일하는 엄마들은 나와 같은 상황을 자주 직면할 것이다. 일도 잘 하고 싶고, 육아도 잘 하고 싶고, 살림도 어느정도는 잘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좀 더 스스로에게 부드러워질 수 있는 것 같다. 버리고 포기하고 안하고 거절하는 것도 용기이고 지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좀 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덜 혹사시키게 된다.

 

너무 마음이 바빠질 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 발자욱 일상에서 떨어져서 자신의 생활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무엇이 진실인지 깨닫는다. 남편 탓, 아이 탓, 회사 탓, 사회 탓, 남 탓을 많이 하다가, 결국 그 모든 것들이 내 스스로 선택한 일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지금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휴 캠프를 다녀온 뒤 하루에 5분씩이라도 호흡 명상을 해보기로 했다. 이번에 배운 바에 따르면 호흡명상을 할 때는 조용히 눈을 감고 내 숨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서 나서 날숨에 내 몸 안의 찌꺼기를 다 내버린다는 생각으로 `휴' 숨을 내뱉는다. 잠시 쉬었다가 끝까지 숨을 내뱉고 나면 자연스럽게 숨이 들어온다. 그렇게 내 숨이 들고 나는 것에 집중하면서 내 몸을 바라본다. 내 의식을 꼬리뼈 앞 자궁 위치에다 두고 집중을 한다. 호흡 명상을 하면 잡념이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감소된다. 자기 전에 호흡 명상을 하니 좀 더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나처럼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엄마들도 애들 다 재우고 자기 전에 5분만 시간을 내서 해보시길!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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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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