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10653712_510907119054847_1976772846076415830_n.jpg » 로저 멜로 작품. (로저 멜로 한국전 페이스북 제공)

 

주말이면, 특히 가을 주말이면, 나의 마음에서는 바람이 분다. 밖에 나가 활개치며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1년 전 가을에도, 2년 전 가을에도 그랬다. 가을이면 부는 나들이 바람, 그것이 기어코 이번 가을에도 오고야 말았다.
 
“예술의 전당 뭉크전 티켓 선물받았는데, 한 번 가볼까?”
지난 일요일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야한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슬쩍 물었다. 어쩐 일인지 남편이 흔쾌히 “그래, 가자”고 답했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예술의 전당에 들어서니 웅장한 건물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가을 햇살이, 뻥 뚫린 공간들이,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나를 반겨줬다. 두 아이는 무작정 달려보기도 하고, 바닥의 돌 무늬를 따라 한 발로 콩콩 뛰며 재밌어했다.

 

“아이들에게 뭉크전은 너무 어렵지 않을까? 저기 무슨 동화전 같은 것을 하는데 거기 가보는 것 어때?”
남편이 뭉크전을 하는 전시관 맞은 편의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화의 마법에 홀리다, 로저 멜로 한국전>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국제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유명한 작가전이라고 했다. 나와 우리 아이들은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작품들이었지만, 뭉크전의 절규보다는 동화작가의 개인전이 아이들에게 더 적합할 것 같아 로저 멜로전을 선택했다.
 
관람료는 아이는 4천원, 어른은 1만원이었다. 이 티켓을 갖고 남이섬에 가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합리적인 가격이었고, 남이섬에도 가볼까 하는 생각에 기분좋게 티켓을 샀다.

 

전시장 입구에는 다른 전시전들과 다르게 “사진을 마음껏 찍어도 된다”고 적혀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전시전인만큼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거미줄과 비슷한 그물들이 보였다. 아들은 “엄마~ 거미줄이야!!”라고 소리치며 그물 뒤로 가 얼굴을 내밀고 즐거워했다. <실 끝에 매달린 주앙>이라는 로저 멜로의 그림책에 나온 그림을 그대로 실물로 구현해놓은 것이었다. 브라질 그림책 작가인 로저 멜로의 그림은 남미 특유의 원색적이고 강렬한 느낌의 그림들이 많았다. 섬세한 드로잉의 작품도 많았다. 그림에 문외한인 우리 부부도 작가의 그림을 보고 사진을 찍어 간직하고 싶은 욕구가 들만큼 그림 하나하나가 개성이 넘쳤다. 어떻게 하면 저런 색감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20140921_145425.jpg » <실 끝에 매달린 주앙>에 나오는 이미지를 실제로 그물로 표현.

 

 

10632799_510907045721521_4563337059403624558_n.jpg » 로저 멜로의 작품

 

1526725_510907085721517_7885256872710050949_n.jpg » 로저 멜로의 작품


이외에도 전시관에는 1996년부터 2011년까지 작가가 작업한 책 원화 88여점과 그림책 원본, 스케치, 아이디어북, 여행기, 조형물, 도자기 등 다채롭게 구성돼 있었다.

20140921_151850.jpg » 전시관 안의 그림 그리는 공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곳은 화가처럼 큰 벽화에 싸인펜으로 색칠도 하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아이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자기가 색칠하고 싶은 것을 찾아 색칠하고, 자기 마음대로 그림도 그렸다. 아이들이 그림 그린 곳에 날짜와 아이들 이름을 적어주었다.

 

20140921_150658.jpg » 구멍 뚫린 곳으로 보면 홀로그램 동영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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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1_150138.jpg »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 홀로그램.

두번째로 아이들이 좋아한 곳은 어두컴컴하고 조용하고 신비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4차원 홀로그램 일러스트레이션 영상 전시관이었다. <실 끝에 매달린 주앙>의 내용을 홀로그램 영상으로 작업을 해놓았는데, 신비한 마법의 세계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들어 나도 한참을 멍하니 쳐다봤다. 마치 딴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 영상관 한쪽에는 돌무덤 같이 생긴 설치물이 있었는데, 구멍 뚫린 곳을 내다보면 거기에 숯을 굽는 아이들에 대한 홀로그램 동영상이 보였다. 아이들은 엄마의 자궁과 같은 다락방같은 공간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햅면 아이들은 구멍을 들여다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을 이번 관람을 통해 알게 됐다. 로저 멜로는 그런 아이들의 특징들을 잘 알아채고, 작품 곳곳에 구멍과 관련한 표현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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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멜로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산업 디자인 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로저 멜로는 지속적인 실험정신과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으로 남아메리카에서 최고의 화가 및 극작가로 평가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전시를 위해 방한해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범상치 않았다. 세계적인 작가로 평가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아이와 어른이 함께할 시간이 없는 이 시대에 동화책은 서로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하나의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책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책은 우리의 일상과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책을 보면서 현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고, 그렇게 생각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고도 말했다. 
 
꿈과 환상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쓰면서도 그는 아동 노동과 같은 정치·사회적이 문제들도 그림책으로 만드는 작가였다. 빈부 격차가 심한 브라질에서는 가난한 집안의 아동들이 노동을 많이 한다. 브라질에서는 철을 수출해 돈을 많이 벌고 있지만, 그런 이면에는 숯가마에서 일하고 가난한 아이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아이들의 인생을 동화에서 제외한다면, 세상은 이들을 알지 못한다. 가마 속에서 일하는 아이들, 맹그로브 노예 소년들이 담긴 그림을 보면서 관람객이나 독자들은 이들의 인생을 생각하게 되고, 그것은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멋진 그의 작품들을 홀로그램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놓으니 이색적이었고 아이들도 흥미롭게 관람했다.
 
우연히 들어간 전시전이었는데, 아이들도 어른들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전시전을 보고난 뒤 로저 멜로만의 색감들이 너무 좋아 온라인 서점에서 그의 책들을 사려고 검색했다. <실 끝에 매달린 주앙>만 번역돼 나와있었다. 냉큼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더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실 끝에 매달린 주앙>은 혼자 잠자는 것을 너무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주앙의 이야기다. 주앙은 엄마가 덮어 주고 간 손뜨개 이불을 꼭 끌어안고 가는데, 그 손뜨개 이불은 주앙의 상상력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가 된다. 이불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런 상상의 세계가 동화의 매력 아닐까.
 
이불 안에는 물고기도 있고, 따뜻한 엄마의 입맞춤이 있고, 노래도 있고, 산줄기도 있고, 지진도 있다. 주앙이 잠이 든 동안 큰 물고기가 그물에 구멍을 낸다. 구멍은 점점 커져 이불의 실이 모두 풀린다. 그리고 텅 빈 이불 속에는 글자들이 나타난다. 주앙은 흩어진 글자를 다시 꿰매 자신만의 이불을 만들어낸다. 글자를 꿰매 이불을 만든다는 상상력, 그런 상상력만으로도 아이들이 그의 작품들을 좋아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로 시작해 이불로 끝나지만 그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전시관에서 봤던 이미지들이 오버랩되며 그림책 보는 재미 솔솔~

 

20140921_162918.jpg » 초등학생의 우쿨렐레 공연. 양선아 기자
 
전시관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중, 아이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우쿨렐레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안양의 한 초등학생들이 야외 공연장에서 무료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우쿨렐레를 배우는 딸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공연을 봤고, 우리 가족은 신나는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어대고 노래도 함께 불렀다.

 

가을 바람에 무작정 간 예술의 전당 나들이에서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하고, 신나는 음악까지 즐기다니!
역시 나의 마음에 바람이 부는 이유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살랑살랑 가을 바람이 부는 지금, 당신의 마음 속에도 바람이 부는가? 

그렇다면 일단 아이 손을 잡고 나가보자.
목적지가 있어도 좋고,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마음 속에 부는 바람이,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바람이,

당신에게 아이에게 무엇이든 선물할 것이다.       

 

[한겨레 문화면 관련 기사]  “전시회 보고 그림 그리고 싶어했으면” 로저 멜로의 일러스트전    

 

로저 멜로전 전시 정보

 

전시 기간: 2014.9.19~10.15

전시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2전시실

관람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입장 마감 오후 7시)

전시 문의: 02-747-0727

예매처: 1544-1555(www.interpark.com)

단체 관람 안내: 02-747-0727(20인 이상의 단체 지정된 시간 외 작품 해설 가능)

홈페이지: www.rogerkorea.com

작품 해설 docent: 평일 오전 11:30 / 오후 2시/ 오후 5시(3회, 소요시간 30분)

                           주말 및 공휴일 없음

관람 요금: 성인(만19살 이상~64살 미만) 1만원

                 청소년(만13~18살) 8천원

                 어린이(36개월~12살) 경로(만65살 이상) 4천원


 * 바람 부는 가을에 아이들과 함께 갈 만한 나들이 정보 댓글로 달고 정보 공유해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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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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