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31_1.jpg » 밥과의 전쟁에 지쳐 과자나 라면 같은 불량식품을 아이 입에 슬쩍 넣어주기도 한다.

 

 일주일에 딸랑 이틀. 원없이 아이를 하루 종일 물고 빨고 할 수 있는 짧고 소중한 주말시간임에도 거의 매주 한두번은 버럭하고야 만다. ‘아니야’ 라는 말을 달고 살면서 바야흐로 시작된 미운 세 살 짓도 종종 나를 열받게 하지만 대개는 밥먹이기 씨름 때문이다.

 

식탁 앞 자기 의자에 앉기를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고, 고개를 싹싹 돌리는 아이를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다 중간에 전자레인지로 한두번 데워도 결국 차갑고 딱딱해진 밥을 쏟아버리면서 아이의 식사시간이 끝나고 나는 소리를 지른다. “처먹지마!” 이만한 애들은 하루 세끼 밥에 두 번 간식을 먹어야 한다는데 두끼 챙기기도 힘들다. 대신 나는 아이가  ‘환장’하는 ‘이얼럴(오레오 쿠키)’같은 걸 슬쩍슬쩍 쥐어준다. 뭐 굶는 것보다는 낫잖아?

 

많은 독자들이, 특히나 돌 안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여기 저기서 쯧쯧 혀차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애한테 불량식품을 먹여? 미친 거니? 불량식품이 아니라 이유식 간을 하는 것만으로도 친정엄마와 얼마나 많은 실랑이를 벌였던가.

 

아직 육아휴직 중이던 이유식 초기 때 죽에 소금을 넣는 문제로 엄마와 자주 다퉜다. 당연히 글로 이유식을 배운 나는 돌때까지는 절대로 이유식에 간을 하면 안된다고 주장했고, 친정엄마는 아이도 입맛이 있는데 맹탕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겠냐고 맞섰다. 생후 5개월 때 몸무게 상위 98%를 찍어 숟가락을 듬과 동시에 식신으로 거듭나리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던 아이가 영 이유식에 시큰둥한 게 문제였다.

 

좀처럼 몇숟갈 뜨지 않으려던 아이가 소금 간을 살짝 한 친정엄마의 이유식은 좀 더 먹는 것같더니 그것도 어떤 때는 영 내켜하지 않았다. 아이가 할머니와 엄마, 누구의 손도 확실히 들어주기를 주저하는 사이 엄마와 나는 소금 넣기와 단속하기를 톰과 제리처럼 이어나갔다. 결과는 엄마 승. 내가 다시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출근을 한 뒤에도 가끔씩 생각나면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다. 엄마 나 몰래 소금 막 넣는 거 아냐? 그럼 엄마는 한마디로 나를 깨갱하게 만든다. 그럼 니가 만들어 놔라. 나는 바로 ‘소금이 아니라 고춧가루를 넣어도 할머니표 이유식이 최고!’라는 극저자세로 변신한다. 주변에 돌잽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직장생활을 하는 지인이 있다. 밤늦게 퇴근하는 날에도 다음날 먹일 이유식을 새벽까지 만들어놓고 잔다고 한다. 어머니 눈치가 보여 주문 이유식도 못시키겠단다. 물론 고된 만큼 잘 먹는 아이를 보면 뿌듯한 마음도 들 것이다. 똑같이 일하는 엄마를 두고도 누구는 맨날 메뉴 바꿔가면서 호강(?)하는데 늘 있는 국에 밥만 말아먹어야 하는 애가 문득 안됐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변명하는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요리 재주도 관심도 없는 엄마에게서 태어난 니 팔자를 탓해야지 누구를 탓하겠니.

 

나는 아기도 간이 된 음식을 잘 먹는다는 엄마의 주장을 여전히 인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엄마가 당신 편하겠다고 아이한테 아무거나 먹이려고 하는 게 아닌 이상 나와는 다른 주양육자의 노선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엄마는 주말내 두끼 다이어트로 홀쭉해진 인이의 볼을 주중에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한 숟갈 더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토실토실 오르게 만드는 주인공이 아닌가. 음식만 보면 고개를 젓는 아이가 또래 평균치보다 다만 500g이라도 몸무게가 더 나가는 건 이런 외할머니의 눈물겨운 ‘섭식구애’덕이 아니던가 말이다. 엄마에게 ‘닥치고 감사’하는 수밖에.

 

** 이 글은 월간 <베스트 베이비>2012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태그
첨부
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66492/75b/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24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남편이 본 아내의 임신 - (1)임부복 imagefile [6] 김외현 2012-04-24 64295
23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 위태로운 아이들, 어떻게 살려낼까 [4] 안정숙 2016-08-03 62772
2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기막혔던 뽀뇨의 첫 이사 imagefile [2] 홍창욱 2011-12-26 60760
2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13살 아들, 죽음을 돌보다 imagefile [4] 신순화 2015-09-23 59512
20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 세월호 시대, 촛불과 횃불이 거리로 나섰다 imagefile [2] 안정숙 2014-05-01 57851
19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 출산 육아와 귀촌, 내 인생의 한 방 imagefile [11] 안정숙 2014-03-24 55436
18 [앙큼군과 곰팅맘의 책달리기] 짝퉁 만리장성에서 터닝메카드를 imagefile [2] 권귀순 2015-11-27 55309
17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 엄마 미안해, 내 딸들을 더 사랑해서 imagefile [3] 안정숙 2017-12-01 55301
1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쭈쭈 없는 아빠의 설움 imagefile 홍창욱 2011-11-07 55159
15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 이런 질문하는 내가 싫다 imagefile [9] 안정숙 2017-01-03 55125
1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엄마, 엄마는 아주 천천히 늙어줘 imagefile [1] 신순화 2011-08-17 53418
» [김은형 기자의 내가 니 엄마다] 불량식품 쥐어주는 엄마 imagefile [9] 김은형 2012-05-31 52653
12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돌잔치는 할 수 있는 만큼, 딱 그 만큼만 imagefile 양선아 2011-08-17 50665
1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안 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imagefile [8] 홍창욱 2011-11-14 50232
10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 [로이터 사진전] 65살 아빠와 35살 딸의 합작 관람기 imagefile [7] 안정숙 2016-09-21 45510
9 [하어영 기자의 철딱서니 없는 육아빠] 초보 아빠, 2차는 없었다 imagefile [1] 하어영 2015-09-17 44268
8 [송채경화 기자의 모성애 탐구생활] 객관성을 상실했다 imagefile [3] 송채경화 2016-01-04 43822
7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야구소년-그림소녀, 소개팅 어그러진 까닭 imagefile [1] 김태규 2015-07-23 41562
6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관중도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 imagefile [6] 김태규 2015-05-29 40753
5 [김명주의 하마육아] 유럽까지 1주일 1만원 imagefile [14] 김명주 2014-12-28 37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