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하나를 낳고 아래로 두 딸을 낳은 것을 나는 정말 살아가면서 거듭 거듭
감사하고 있다.
세살 터울 자매는 싸우고 삐지고 투닥거리는 것도 말할 수 없이 많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서로 같이 하고, 가르쳐주고, 배우는 사이로도 더할 나위없이
좋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오빠도 있고, 언니도 있는 막내의 운명이란 언제나 저보다 잘 하고 앞서는
사람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심술도 나고, 부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뭐든지 더 빨리, 잘 하려고 마음과 몸을 내는 일이 된다.
적어도 우리집 막내에겐 그렇다.
아주 여렸을때부터 언니가 하는 것은 뭐든 저도 따라 해야 직성이 풀리던 이룸이가
가장 큰 좌절을 맛본 것은 언니의 초등학교 입학이었다.
매일 가방 메고 학교를 가는 언니가 부러워서, 급식을 먹는 언니가 부러워서
받아쓰기 하고 숙제를 하는 언니가 부러워서 이룸이는 몸살을 앓았다.
그래서 저도 가방 메고 집안을 돌아다니고,
급식판처럼 생긴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받아쓰기 내 달라고, 숙제 내 달라고 나를 졸라대곤 했다.
적당히 받아주다가 귀찮아서 내버려두면 어느결에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이라도
가져다 놓고 글씨를 공책에 옮겨적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다 쓰고 나면 채점을 해 달라고도 했다.
뭐든 언니처럼,
언니가 하는 대로 하고 싶은 그 마음은
때로 정말 가여울 만큼 간절했다.
그래서였는지 이룸이는 성취가 또래보다 훨씬 빨랐다.
1월에 태어난 아이라 발육도 앞서지만 어휘며, 행동이며, 하다못해, 생각까지
또래보다 훨씬 앞섰다. 엄마로서는 정말 기특한 딸인 셈이다.
두 딸이 집에서 놀때 제일 많이 하는 것이 학교 놀이다.
주로 큰 딸이 선생님이 되고 막내가 학생이 되는데 가르쳐주고 배우는 자세가
아주 제법이다. 얼마전까지지는 언니가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배우는 우쿨렐레에
아주 열중하던 이룸이는 요즘 글씨 연습에 빠져 있다.
글씨는 여섯살 봄 부터 떠듬 떠듬 읽기 시작했던 이룸이는 이제 어떤 글자도
막힘없이 줄 줄 읽는 단계가 되었다.
가르치지 않았는데 제 욕심에 저 스스로 깨우친 한글 실력이다.
글씨는 읽기도 전에 쓰는 흉내부터 냈던 이룸이는 요즘 글씨를 순서대로 제대로
쓰는 법을 익히고 있는데 언니가 아주 좋은 선생님이 되고 있다.
언니가 공책에 반듯하게 순서대로 써준 글씨를 그 순서 고대로 열심히 적는
모습이 얼마나 이쁜지... 게다가 글씨를 깜짝 놀랄 만큼 이쁘게 쓰고 있었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뇌구조가 다르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열세살이어도
도무지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를 휘갈겨대는 큰 아들을, 참을 인자를 써가며 지켜보는
나로서는 겨우 여섯살에 이렇게 균형잡힌 글씨를 쓸 수 있는 막내가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구나...
억지로 하는 게 아닌 공부.. 마음이 원해서 즐겁게 신나게 하는 일은
딱히 공부라고 부를 필요도 없다.
학교에 들어가면 의무가 생기고 책임이 더 커지겠지만 아직 이룸이는 어떤 공부도
즐거운 놀이일 뿐이다.
재미있어서 하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하기 싫으면 안 하는 놀이다.
그래서 하는 동안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책을 읽는 일도, 글씨를 쓰는 일도, 숫자를 셈하는 것도, 영어도
이룸이에겐 아직 해야만 하는 공부가 아니다. 그냥 다 놀이다.
그래서 뭐든 재미있다. 아... 참 부럽다.
언니가 다니는 학교의 병설유치원을 다니는 막내는 언니 담임선생님도 잘 알고
교장선생님은 원장선생님이라며 달려가 안길 정도로 좋아한다.
언니 친구들도 모두 알고, 온 학교가 익숙하고 편한 곳이다.
언니가 있어 미리 경험하고 알게 된 곳에서 제 배움을 시작할 일도 참 고맙다.
내게도 두 명의 언니가 있다. 두 명의 여동생도 있다.
많은 자매들이 있어서 커오는 동안 큰 힘이 되었고,
살아가는 동안 더 큰 의지가 되고 있다.
이 다음에 내 두 딸들도 살아가는 내내 서로 돕고, 의지하고, 힘이 되는 그런
자매들이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언니가 있어서 나도, 이룸이도
정말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