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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 필규를 임신하고 3개월쯤 되었을 2002년 11월, 나는 이른 아침에 하혈을 했다.



뱃속의 아이가 잘못되었을까봐 두려움에 덜덜 떨며 남편과 찾은 평촌의 한 종합병원응급실에서



 밤새 온갖 위급환자들과 씨름하다 지친 의사과 간호사들이 나를 맞았다.



젊은 의사의 문진이 끝나자 간호사는 수액을 맞아야 한다며 링거주사기를 들고 내게 왔다.



'왜 이걸 맞아야 하나요?



''소파수술을 받으려면 이것부터 맞으셔야 해요.'



아이가 무사한지가 너무나 중요하고 궁굼한 나에게



그들은 벌써 소파수술을 할 경우에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고, 마음 깊이 분노했다. 만약 아이가 무사하고, 뱃속에서 이 소리를 들었더라면 얼마나 놀랐을 것인가.



내 안에 있는 생명은 절대로, 만약 잘못되었을 경우 간단하게 긁어 낼 수 있는 핏덩어리가아니었다. 



그 아이는 내 생명과 다름 없었다.



만약 잘못되었을지라도 그런식으로 바로 수액을 맞고소파수술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뱃속의 아이와 나눈 행복한 시간에 대해 고마움을전하고



 미안함과, 슬픔과, 또 다시 만날 인연을 얘기하며 마음을 정리 한 후 수술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에겐 어이없을지 몰라도,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이른아침 응급실에서 유산의 가능성이 있는 산모는 결코 위급한 환자가 아니었다.



어떤 의사와 간호사도, 혹 뱃속의 아이가 잘못되었을지 몰라 두려움과 슬픔에 빠져있는산모의 마음을 읽어주는 이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 여의사가 내진을 하고, 또 한참을 기다려 남자의사 앞에 누워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적출물'이라고 적힌 쓰레기통이 놓여있는 초음파 검사대위에 올라가던 순간의 두렵고슬픈 기분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만약 뱃속의 아이가 잘못되었다면, 한때 내 생명과 다름없던 그 아이는그들에게 그저 처리해야 하는 '적출물'이 되는 것이다 



'살아는 있네요.' 남자 의사는 잘라 말했다. 아.. 그 한마디를 듣기위해 나는 응급실에서 몇시간이나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돌아가며 하는 비슷한 질문과 거친 내진을 거쳐야 했다.



의사는 이런 경우에도 의료적으론 유산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에 입원을 하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 병원을 나섰다. '저희 병원에서 출산하지 않으실거죠?'의사는 다시 물었다.



 물론, 나는 그런 비인간적인 의료환경에서 새 생명을 낳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저었더니 그들은 각서를 쓰고 나가라 했다.



나는 앞으로 일어나는 어떤 일도 본인의 책임이라는 각서를 쓰고 병원을 나왔다.



지옥과 천국을 오간 기분이었다. 



회사를 쉬고 집으로 들어와 나는 남편이 깔아 준 요 위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때, 남편은 마루위에 놓인 커다란 항아리에 무언가를 열심히 심고 있었다.



'수련이야. 동대문에서 사왔어. 잘 가꾸면 내년 여름에 꽃을 볼 수 있대.



우리, 뱃속의 아이를 '연이'라고 부르자.  당신은 몸 안의 '연이'를 키우고 나는 몸 밖의 '연이'를 키울께.



 우리 '연이'가 태어날 무렵에 꽃을 피울 수 있을꺼야'  그날부터 남편은 '연이 아빠', 나는 '연이 엄마'가 되었다.



그날부터 나는 뱃속의 아이에게 '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남자던 여자던 연꽃처럼 그윽하고,맑고,기품있는 아이가 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나는 10년을 이어온 회사 생활을 접었다.



결혼 후 왕복 세시간이 되버린 출퇴근 시간과 과중한 업무의 스트레스가' 연이'에겐 무리가 되었던 것임을 나는 받아 들였다.



지금은 오직 이 생명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때 임을 나는 깨달았다.  아무런 갈등없이 기쁘게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받아 들였다. 



아이를 낳을 조산원에서 남편과 함께 '예비 부모 교실'을 참가했고,  그 이듬해 6월, '연이'는 부천의 '열린 가족 조산원'의 햇살 밝은 방에서 태어났다.



엄마와 이모같은 여 조산사들이 평온하게 아이를 받았고, 남편이 탯줄을 잘랐다.



주사도, 관장도, 회음절개도, 어떠한 인위적인 조치없이 내 엄마가 시골집에서 나를 낳았을 때 처럼자연스럽게 낳은 아이였다. 



그 해 여름 만났던 '연이'는 태명을 벗고 '필규'라는 이름을 얻었다. 필규는 올해 여덟살,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두 여동생의 탄생을 직접 지켜본 오빠가 되어있다.



남편이 정성스레 길렀던 항아리 속의 연이는 정작 필규가 태어나던 그 여름엔 꽃을 피우지 않았다.



연꽃은 그 후로 3년이나 더 지나서 2006년 5월에야 첫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귀한 꽃을 보던 해, 나는 꽃 같이 이쁜 둘째, 윤정이를 가졌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환하게 피어난 연꽃과 마주치게 되면,  나는 첫 아이를 잃었을까봐 두려움에 떨던



그 아침과 남편이 구해온 연뿌리와 '연이'라고 이름붙였던 내 몸속의 첫 아이와 함께 지내던



날들을 떠올리게 된다.



내 몸을 처음으로 열어준 아이,  나를 엄마로 만들어준 아이.



그 아이가 있어 둘째와 셋째 아이까지 행복하게 고대할 수 있었다.



여덟살이 된 아이는 엄마에게 미운 소리도 하고, 제법 드세게 반항도 해 오고



원망도 툭툭 던지는 사내아이로 크고 있다.  여전히 나를 제일 많이 키우고, 가르치고, 시험에 들게 하는 첫 아이다.



미울때도 있고, 힘들게 하는 때도 너무 많은 아이지만 그 마음 안에 곱고 귀한 연꽃이 피고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내게 '생명'의 건강한 탄생에 대하여 고민하게 하고,  올바른 길을 찾게 하고, 그 길을 꾿꾿하게 걸을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준 아이다.



필규는 8년 전에도, 지금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부부에게는 늘 '연이'로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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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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