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 젖은 나뭇잎 냄새 좀 맡아봐.”
“세상에, 무지개 조개야.”
“풀 미끄럼틀 타러 가자!”
집 밖을 나서자마자 아이들은 흙으로, 나무로, 풀로 달려간다.
와산리에 살 때는 자연에 폭 들어가 살아서 달리 갈 곳이 없었다지만
서귀포 신도시로 이사를 온 지금은
집 주변에 알록달록 예쁜 놀이터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마트도 있는데 말이다.
아이들은 놀이터를 옆에 두고 풀 미끄럼틀을 타고
빌라 건물 사이의 작은 화단이나 공터에서 몇 시간이고 논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부터
집 앞 화단에서 작은 도토리를 땅에 엎드려 줍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여러 모양의 돌, 나뭇가지, 열매, 나뭇잎, 조개 같은 것들을
찾아서 자세히 들여다본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그 때 마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딱 벌린 채로
“와~!”하고 탄성을 지른다.
그리고 아이들은 예쁘고 깨끗한 것만 고르지 않는다.
썩은 나뭇잎, 깨진 돌, 벌어지고 흠이 난 열매 같은 것들을 들여다보며
더 즐거워하고 모양을 찾아내며 예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자연의 품 안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이 참 작아보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아이들이 자연보다 더 커 보이고
그 자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마도 아이들은 크고 건강한 자연에게 받은 어마어마한 사랑을
여기서 힘을 잃어가는 작은 자연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예전에 살던 마을에서 아이들이 한 주먹씩 뜯어서 들고 먹던 괭이밥이
여기 빌라 화단에도 있는데
도로가 옆에 있고 애완동물들이 있으니 먹으려고 하는 것을 말려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기회로 상자텃밭에서 먹을 수 있는 풀을 잔뜩 키워 볼 생각이다.
작년 말에 관절염 치료를 받기 위해 더 따뜻하고 편리한 서귀포로 이사를 오면서
자연과 멀어지는 것이 가장 아쉽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는데
웬걸,
아이들은 작은 자연에서 더 집중적으로 놀며
관심과 감탄으로 그 자연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고
나도 아이들 틈에 끼어 더 자세히 자연을 들여다보며 만나고 있다.
‘결국은 눈에 더 많이 보이는 건물들과 만들어진 것들에 익숙해져서
자연과 멀어지지 않을까?’,
‘지금 이렇게 반짝이는 호기심의 눈빛과 감탄과 즐거움이
시들어 버리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관절염이 낫고 상황이 되면
빨리 더 살아있는 자연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조바심이 슬쩍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충분히 좋은 지금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다.
작은 자연을 더 크게 즐기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 잘 지내셨어요? 오래간만이지요?
저는 류마티스 관절염 때문에 작업을 한동안 못하다가 요즘 치료를 받고 몸이 회복되어서
이번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 해는 몸이 나아져서 '빛나는 지금'을 더 많이 발견하고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새해 복 가~득 받으시길 바래요!
<놀이터 옆에서 풀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