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뽀뇨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빠, 나 혼자 노는거 심심한데 유현이가 말을 좀 잘했으면 좋겠어”,

“어, 한 살만 더 먹으면 말을 잘 하게 될거야”,

“그래? 언제 한 살을 더 먹는데?”,

“한 해가 다 갔으니까. 내일이 되면 한 살을 더 먹지”

다음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깬 뽀뇨가 유현이와 이야기를 하더니

“아빠, 유현이가 왜 아직도 어버버 하는거야?”

“뭐?”

“왜 한 살을 더 먹었는데도 말을 못하냐구?”

뽀뇨가 7살, 유현이가 3살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유현이는 남자아이어서 그런지 말이 느린 편이었고 뽀뇨는 동생과 대화가 안 되어 속이 탔나보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유현이 말솜씨가 많이 늘었고 뽀뇨는 인형놀이할 때만은 동생이 자기 이름을 “해솔아”하며 부르게 할 정도로 친하게 지낸다. 가끔 누나와 목소리 높여가며 싸우는 수준까지 발전한 것을 보면 유현이 말이 늦은걸 괜히 걱정했나보다.

뽀뇨는 첫째라 사진이나 동영상도 많이 찍어두었는데 유현이는 별로 없다며 아내와 아쉬워하던 중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유현이 말솜씨라도 적어두면 좋겠다고 하여 유현어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아내와 내가 빵터지는 유현어록을 몇가지 언급해 보자면..

-안전벨트를 했더니 꼬츄가 쉬할라고 했어

둘째가 아직 카시트에 앉는데 겨울이다보니 두꺼운 옷을 입고 안전벨트를 하는 일이 잦다. 그러다보니 주요부위가 압박되고 자연스레 쉬가 자주 마려운 것이다. 유현이는 ‘꼬츄가 쉬할라고 했어’로 이걸 표현했다.

-아빠는 왜 엄마를 수미라고하고 엄마는 왜 아빠를 자기라고해?

잠들기 직전에 유현이가 이걸 물어왔다. 나도 아내도 왜 그렇게 부르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고 관찰력이 뛰어나고 질문하기 좋아하는 유현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빠, 토끼 걸음마하는거 아냐?”, “뭐?”

: 그 뜻은 “아빠, 혹시 거짓말하는거 아냐?”였다!

유현이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보니 “뭐?”라고 물어볼 때가 있다. 하지만 위의 어록은 물어보는 즉시 정확한 문장이 떠올라 빵 터지고 말았다. 유현이는 잘 삐지는데 삐지거나 화날때의 발음이 부정확하다보니 그 뜻을 헤아리려고 노력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선 아내가 나보다 훨씬 눈치가 빠르고 이해를 잘 하는 편이다.

-아빠, 이거 얼룩말호랑이야?

광주공항에서 본 백호그림을 유현이는 ‘얼룩말호랑이’로 정리해버렸다. 하얀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보고 얼룩말을 떠올리는 유현이의 센스에 놀랐고 또 한번 빵 터졌다.

유현이 어록을 그때그때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책으로 엮어 줘야지. 그럴려면 부지런히 대화를 나누고 귀담아 들어야 겠다.

 

유현3.jpg » 얼룩말호랑이 그림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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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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