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일요일 오전에 초인종이 울렸다. 누군가해서 문을 열었더니, 윤슬이 반 친구 지후와 우솔이가 놀러왔다. 우리 집에 윤슬이 친구들이 처음 놀러 온 것. 윤슬이는 물론 은유까지도 형 친구들을 반겼고, 이날 하루 종일 같이 놀았다. 우리 집에서 점심까지 먹고, 오후 4시까지 네 명이서 집에서 놀기도 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물총 놀이를 하는 등 신나게 놀았다. 그 날 이후로 주말에는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놀기도 하고, 윤슬이와 은유가 지후와 우솔이 집에 가서 같이 놀기도 한다.
우리 가족은 애월읍내에 살고 있다. 나름 읍내라서 마트, 의원, 노래방, 당구장, 고기집 등 있을 건 다 있지만 서울 사람들 기준으로는 시골이다. 윤슬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씩 있다. 한 반 학생 수가 학년마다 좀 다르지만 20명은 넘는다. 제주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윤슬이 반 학생 수가 20명이 넘는다면 “그 동네에 아이들이 그렇게 많아”라면서 좀 놀란다.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 아이들끼리 서로 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끼리 만나서 놀지 않았다. 이 동네에도 골목문화가 사라 진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윤슬이보다 고학년인 아이들이 학교운동장에서 어울려 노는 것을 보고는 윤슬이가 아이들이랑 어울려 놀지 않는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미쳤다.
그러던 어느 날, 지후가 우솔이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 뜻밖에 귀한 손님들이라서 윤슬이와 은유보다 내가 더 아이들이 반가울 정도였다. 윤슬이 반에서 이번 학기 활동 중 하나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마을 나들이를 하면서 자기 집이 어디 있는지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아이들은 친구들 집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윤슬이가 바라고 바랐던 캠핑을 갔다. 윤슬이가 2년 전부터 캠핑을 가자고 노래를 불렀다. 그 때마다 “그래 그래 가자”라고 답을 했지만, 차일피일 미뤘다. 캠핑을 가기에는 은유가 아직 너무 어렸고, 캠핑 장비도 다 구비를 못했다. 그동안 캠핑 장비를 하나, 하나씩 마련했다. 드디어 지난 5월 아이들을 데리고 서귀포자연휴양림으로 가족 캠핑을 갔다.
아이들은 잠을 잘 잘까, 무엇을 하고 놀까, 내가 텐트는 잘 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걱정이 많았다. 아이들은 숲 속에서 자연을 놀이터 삼아 잘 놀았다. 잘 놀아서인지 집에서보다도 더 잘 먹고, 잘 잤다.
윤슬이와 은유는 달팽이를 키우고 싶어서 숲에서 달팽이를 찾아 헤맸다. 결국 달팽이는 찾지 못하고 텐트로 돌아가는 도중 길 위에서 개미떼에 둘러싸인 달팽이를 발견했다. 그 달팽이는 무슨 이유인지 숲에서 도로로 잘못 나왔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개미떼에 둘러싸여 있었다.
윤슬이와 은유는 “달팽이가 죽었어”라고 외쳤다. 내가 보기에도 죽어서 개미떼의 먹이가 되고 있는 중으로 보였다. 혹시나 해서 발로 살짝 달팽이를 건드려보았다. 아직 살아 있었다. 우리는 달팽이를 개미떼로부터 구해 이미 가져간 통 안에 넣었다.
그 통에는 다른 식구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 집 화단 텃밭 상추 잎에서 발견하고 아이들이 키우고 있는 애벌레가 그 주인공. 애벌레를 처음 발견할 때는 1센치도 안됐다. 1~2주 사이에 두 배 이상으로 자랐다. 애벌레는 상추도 엄청 먹고, 똥도 엄청 눴다.
아이들이 책에서 본 흰배추나비 애벌레라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나비가 될 때까지 키우자고 했다. 하지만 달팽이가 오고 나서 다음 날 애벌레는 죽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달팽이는 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달팽이와 애벌레 집에 물을 너무 줬고, 애벌레가 물에 빠져 죽었다. 달팽이는 죽을 뻔한 위기를 한 번 넘기고 지금까지 잘 크고 있다.
첫 가족 캠프를 하고 나서 2주 후에 다시 캠핑을 했다. 이번에는 나랑 윤슬이, 은유, 지후, 우솔 이렇게 남자 다섯 명이 갔다. 윤슬이는 캠핑에 우솔이와 지후를 데리러 가고 싶어했다. 우솔이와 지후 네에서는 나에게 좀 미안해하면서도 당연히 대환영. 나의 독박 캠핑으로 아내와 더불어 두 집이 주말 동안 육아에서 해방됐다.
아이들 넷 데리고 하는 캠핑이 좀 걱정됐지만,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 세 명은 텐트를 치고 걷을 때 열심히 일했다. 생각보다 훨씬 성공적인 캠핑이었다. 아이들 네 명은 가지고 간 모든 음식을 남김 없이 싹 먹어치웠다. 자기들끼리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 끼니랑 간식 챙겨주고, 이런 저런 뒷바라지 하는데 공력이 안 든 것은 아니나 이 정도면 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 일요일에는 아내가 일이 있어 하루 종일 집을 비웠다. 윤슬이와 은유는 지후 집에 오전에 놀러가서 점심 까지 얻어먹고 오후 5까지 놀았다. 그 동안 나는 주말 동안 밀린 빨래를 하고, 집 청소를 하고, 남는 시간은 혼자서 책을 읽었다. 지난 번 캠핑의 보상이라고 할까, 정말 오래간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누렸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학교 다녀오면 가방을 집에 팽겨쳐놓고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놀았다. 집 앞 골목길에서, 때로는 학교 운동장에서, 때로는 광안리 바닷가에서. 아직도 그 친구들 이름이 생생히 기억난다. 성원이, 정렬이, 승필이, 정호, 윤정이...
다른 이야기지만, 윤슬이 반 이름은 “제주”반이다. 윤슬이 반 학부모 다모임이 지난 3월 초에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이 정한 “제주”라는 반 이름이 너무 밋밋해서 다른 이름을 은근히 권했단다. 아이들은 제주가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에 제주 반을 끝까지 주장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기억에 길이길이 남을 추억과 우정을 차곡차곡 쌓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