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앵두.jpg

 

요즘 아주 고단하다. 앵두 때문이다.
우리집엔 오래된 앵두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다. 봄엔 정말 사랑스런 분홍꽃을 매달았다가
5월부터 익기 시작하는데 6월 쯤 되면 가지마다 탐스러운 빨간 열매들이 주렁주렁 익어간다.
처음엔 올해의 첫 앵두 맛이 궁금해서 빨리 익어라 빨리 익어라 노래를 부르지만
한 번 붉어지기 시작하면 온 나무가 빨강 보석이 된다.
올 해 6월엔 비가 드믈었다. 열매가 익어갈때 큰 비가 오면 우수수 떨어지고 마는데 올 해는
여지껏 붉은 열매들이 그득하다. 덕분에 내가 아주 바빠졌다.
우리 식구 실컷 먹고, 친정 부모님도 실컷 따 가도 나무마다 가지마다 넘치는 열매들이 아까와서
별 수없이 올 해도 앵두 파는 아낙이 되었다.
처음엔 이룸이네 반 단톡방에만 올렸는데 열 통 정도 주문을 받았다.

열 통을 따고도 열매가 너무 많아서 마을 조합 밴드에 올렸더니 스무 통 넘게 주문이 들어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앵두는 넉넉하게 한 통 담아 5천원에 판다. 사람들은 재료비가 안들고 품만 좀 들이면

돈이 들어오니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앵두 따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정말이다.
앵두를 농사로 짓는 집이 아니다보니 자연 상태에서 마구 자란 앵두나무는 가지가 빽빽하게

비탈길에 서 있는데 크고 맛있는 열매는 대부분 높은 가지에 달려 있다.

손 닿는 가지의 앵두 먼저 털어서 팔다보면 이내 맛있는 열매가 다 털린다.

비슷하게 붉어도 그늘에서 자란 것은 시큼해서 차마 돈 받고 팔 수 는 없다.

그래서 되도록 햇빛을 많이 받은 실한 열매를 찾아 따는 일이 만만치 않다.

수목 소독을 하지 않는 우리집 앵두 나무는 가지마다 거미가 집을 짓고 산다.

다른 벌레들도 우글우글하다. 가지에 달린 열매를 털다보면 손등으로 기어오는 벌레들이

한 둘이 아니다.

분명 열매만 털었는데 바구니를 쏟고다면 사방에서 노린재며 애벌레며 거미들이 기어나온다.

지금 집안에는 여러 마리의 노린재들이 돌아다닌다. 이름 모르는 갑충들은 더 많다.
앵두 나무 가지 사이마다 기세좋게 벋어 올라간 환삼덩굴도 골치 아프다.

앵두 열매는 껍질이 얇아서 꼭 맨손으로 따는데 환삼덩굴에 쓸리기라도 하면 무척 따갑다.

긁힌 자국도 오래간다.
열매를 따 와서 넓은 쟁반에 펴 놓고 알을 일일이 골라 터진 것, 덜 익은 것, 벌레 먹은 것들을

가려내서 한 통을 채우기 까지 들어가는 수고는......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2018년 앵두4.jpg             

이쁜 알들로만 통을 채우고 앵두 잎사귀로 장식을 한 후 냉장고에 넣었다가 배달을 나간다.
시내와 떨어져 있는 우리집으로 찾으러 오라고 할 수 가 없어 내가 차에 싣고 동네를 누빈다.
대개 학교가 파한 후 운동장에서, 혹은 많이들 몰려 사는 아파트 단지로 배달을 간다.
앵두는 상하기 쉬운 토종 과일이라 비닐 봉지 같은데에 담아서 줄 수 가 없다.
꼭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통이 있어야 하는데 정해진 양만큼 채워줘야 해서 올 해는

새 통을 여섯개나 샀다. 온 마을에 퍼져 있는 빈 병과 빈 통도 다 돌려받아야 한다. 

시간 내기 어려운 바쁜 엄마들은 앵두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딱 정해서 주문을 하는데

무르기 쉬운 앵두를 미리 왕창 따 놓고 파는게 아니다보니 네시 반에 가져다 달라는

고객을 위해서는 네 시부터 앵두를 따야 한다.
어제는 이글이글 거리는 땡볕아래 앵두를 따서 부리나케 달려가야 했다.

         2018년 앵두2.jpg        

오늘 아침엔 윤정이반으로 보낼 앵두를 따느라 두 딸들이 밥을 직접 차려 먹었다.
윤정이네 반은 요즘 경제 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직접 아이템을 정해 판매를 하는 과정이 있다.
윤정이네 모둠은 머랭 쿠키를 굽고 우리집 앵두를 따서 팔기로 정했단다. 머랭쿠키를 만든다고
일요일에 우리집에 몰려온 모둠 아이들은 방과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들어가며 머랭쿠키를 구웠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계란 흰자는 거품이 잘 나지 않았고 가까스로 만든 머랭을 구웠더니 겉은 타고 속은 덜 익어서 그야말로 차마 팔 수는 없는 지경이 되었다.

믿을 구석이 있는 아이들은 윤정이한테
"앵두나 팔자. 많이 따와" 하고는 가버렸다.
덕분에 오늘 아침 댓바람부터 나는 빽빽하게 우거진 가지들을 헤쳐가며 앵두를 한 소쿠리 땄다.
앵두를 고르고, 통에 담느라 식탁은 며칠째 이 모양이다. 지난번에 한 번 따간 앵두는 인기리에 팔렸단다. 진짜 돈을 주고 받는게 아니라 윤정이네 반 에서 만든 조폐 공사에서 그려낸 지폐로 거래를 해서 내 수중으로는 한 푼도 안 들어왔다. 하루는 친정 엄마가 다니러 오셨다가 앵두 아르바이트를 하셨다. 알바비 3만원에 기분 좋아진 엄마는 오후 두 시간동안 열심히 앵두를 따 주셨다. 나는 엄마가 따신 앵두를 선별해서 통에 담고 배달을 다녔다. 흔 여섯인 엄마와 쉰을 앞 둔 딸은 손발이 척척 맞는 한 팀이 되어 앵두 장사를 했다.

               2018년 앵두3.jpg 

오늘은 한 통, 내일은 두 통 배달이 남았다.
이제 앵두는 나무 끝과 우거진 가지를 어렵게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 곳에만 달려 있다.
어제도 앵두 따다 가지에 눈이 찔려서 큰 일 날뻔 했는데 1만 5천원을 위해 또 한번 모험이 필요하다.

앵두를 딸 때마다 몸으로 하는 노동에 대해 한없이 겸손해진다.
시장에서 쉽게 사는 과일 하나하나 마다 얼마나 많은 손길이  수없이 닿았을까가 이 때만큼

생생하게 실감되는 적은 없다. 과일이든 채소든 농사를 짓는 일의 그 어려움에 대해서,

그 수고만큼 받기 어려운 댓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뭐든 쉽게 여기지 말아야지. 고맙게 먹고, 쓰고, 사야지..
앵두 따며 내내 다짐하고 있다.
그런 일들에 비해서 한 며칠 앵두를 따서 15만원 쯤 버는 일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누구에겐 한없이 부러운 일자리 일 것이다. 새 벽에 나가서 종일 수만평 넓은 밭에서 고된 품 일을 하시고 하루에 5만원, 6만원 정도 벌으셨던 우리 어머님에게 앵두 따서 파시라고 하면 신이 나서 종일 서른통을 다 채우셨을 것이다.

이건 일도 아니라고, 이런 일은 매일이라도 하겠다고 하셨을 것이다.
 한 여름에 품일 나가셨던 밭 둑에서 돌아가신 어머님 기일이 다가온다. 명치 끝이 싸해진다.

처음에는 앵두 판 돈으로 이것 저것 살 수 있는 것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열심히 궁리해보지만
한 통 한통 힘들게 채우고 5천원을 받으면 너무 아깝고 귀해서 쓰기가 어려워진다.

카드로 만원, 만 오천원 긁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시간과 수고가 보이는 돈은 쉽게 쓸 수 가 없다. 마음이 다르다.

앵두 판 돈 중에서 3만원은 엄마 수고비로 드리고 만3천원 주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그리고 남은 돈은 언젠가 여행가려고 모으는 통장에 저금을 한다.

그 언제가 도대체 언제일지 모르지만
몇 해 째 애써서 앵두 판 돈은 고스란히 통장에 담겨 있다.

언젠가 진짜 우리집을 짓게 되면, 진짜 마당 있는 집을 갖게 되면 그 마당엔 꼭 앵두나무를 심자고
남편에게 말해 두었다. 그 언제가 도대체 언제일지, 그런 날이 오기는 할지 모르지만
6월에 빨간 앵두를 맛볼 수 없는 곳에서는 살 수 가 없게 되었다.

앵두가 익는 달에 결혼을 했고, 앵두가 익는 달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자라고 자라서
나보다 훨씬 큰 청년이 되었는데 공부에 바쁘고 기숙사에서 사는 아이는 높은 가지에 매달린
앵두 따줄 시간이 없다. 주말에 집에 왔을 때 앵두를 내밀어도 별로 먹지 않는다. 새콤한 작은 열매는 이제 열여섯 사내아이의 관심 저 밖으로 밀려나있다.

다시 앵두 맛과, 앵두를 마음껏 딸 수 있었던 어린 날이 그리워지려면 긴 시간이 지나야겠지.

이 글 쓰면서 팔다 남은 앵두 한 통을 다 먹었다. 무르익은 작고 새콤한 열매가 입안 가득하다.
이건 참....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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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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