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성윤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등원한 아이는 12명 중 4명. 폭우가 쏟아진 탓에 나오지 않은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수족구가 문제였다. 녀석은 어린이집을 강타한 수족구의 파상공세를 아슬아슬하게 잘 막아내고 있었다.



지난 6월16일 오후 5시경. 아내가 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성윤이 수족구가 의심돼서 지금 격리시켜놓고 있대. 그런데 내가 지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꼼짝할 수가 없어. 병원에 좀 같이 가 줘.”



격리돼 울고 있지는 않을까. 아내의 속 타는 마음이 느껴졌다. 다행히 바쁜 일이 없는 상황이어서 어린이집으로 바로 출동했다. 도착해서 걱정스런 맘으로 녀석을 찾았는데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나오는 녀석이 싱글싱글 웃는다. 점심도 잘 먹고 잘 놀았단다. 선생님은, 손바닥의 울긋불긋한 무늬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수족구가 대유행이라 어린이집에서도 각별히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컨디션이 무지 좋아 보이는 녀석을 데리고 동네 병원을 찾았다. 열도 없었고 목도 붓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수족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다행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 뒤로도 수족구를 예방하려고 손을 자주 씻기고 위생관리에 더 신경 썼다. 그런데 7월6일 또 다시 어린이집에서는 수족구가 의심된다는 연락이 왔다. 일이 바빴던 아내는 일과 시간 전에 녀석과 함께 병원에 가지 못했는데 집에 와서 녀석의 목 안을 살펴보니 부어있다고 했다. 이번엔 수족구가 확실한 것 같았다. 다음날 나는 휴가를 내고 녀석을 돌보기로 했고 ‘확진’ 판정을 받으려고 아침에 녀석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의사선생님은 수족구가 아니라고 했다. 다시 뿌듯해하며 녀석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강력한 면역력과 철저한 위생관리로 수족구와의 일전에서 완승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7월12일 어린이집에서 “수족구가 의심된다”는 전화가 또 걸려왔다. 이번에는 목과 혀가 심하게 헐어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병원으로 향했지만 이번에는 수족구 확진 판정을 받았다. 친할머니가 긴급 출동하셔서 수·목·금 3일을 버텼다. 발진이 심하진 않았지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녀석은 배가 고팠는지 새벽마다 찡찡거리며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화·수·목 3일 동안 술자리에 있었던 나는 녀석의 울음소리에 일어나지 못했다. 아내의 고생이 컸다.



833e92963597202027481f71c2212c24.드디어 휴일인 토요일. 투병 중인 녀석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로 마음먹었다. 영양공급도 되고 점수도 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출근하는 엄마를 따라나서려던 녀석을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며 진정시켜놓았는데 “비가 그친 뒤에 나가자” 하니 녀석은 제 손으로 바지를 입으면서 밖으로 나가겠다고 떼를 썼다.



3일 동안 집안에 ‘수용’돼있던 녀석의 처지가 딱해 어떡해서든 외출을 시키고 싶은데 녀석의 전용 뽀로로 우산은 아내가 가지고 간 차 안에 있었다. 떼를 쓰는 녀석에게 장화를 신기고 일단 빌라 1층으로 데리고 갔다. 우산 없이 밖으로 풀어놓으니 녀석이 나아가질 못한다. 흐흐. 성공이다. 처마 밑에서 이렇게 비 구경을 하면서 놀다가 비가 그치면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언제나 친절하신 관리실 아저씨께서 “어디 갈 거냐,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셨다. “우산이 없어서 나가질 못한다”고 말씀 드렸더니 아저씨께서는 “우산 여기 있다”며 노란색 푸우 우산을 내놓으셨다. 흑. 관리실 주변에는 없는 게 없다.



관리실 아저씨의 ‘호의’ 덕분에 우리 부자는 장대비를 뚫고 길을 나서야 했다. 우산을 받치는 게 아직 서툰 녀석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난 푸우 우산의 한쪽 끝을 손으로 잡고 길잡이 노릇을 해야 했다. 200미터 남짓밖에 안되는 ‘빗속 여행길’은 그렇게 멀고도 험난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 산 2500원짜리 아이스크림 맛은 유난히 달았다. 나는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어 이렇게 물었다.

 

 “아이스크림 맛있어?”

 “어.”

 “아빠가 아이스크림 맨날맨날 사주니까 좋지?”

 “...”

 

d0c37487d40b02872411ed75bb9c8f15.짜식. ‘맨날맨날’이라는 단어가 걸리나보다. 이렇게 둘이서 아이스크림 먹는 건 사실 이번이 두 번째다.



 

어쨌든 수족구 투병 중에도 녀석은 잘 놀았다. 손발에는 이상이 없었고 혀에 잡혔던 물집도 거의 다 나았다. 월요일 병원에서 ‘완치’ 진단을 받으면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이다. 어린이집 친구들이 하나둘 수족구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멀쩡한 녀석이 대견하면서도 불안하기도 했는데, 큰 아픔 없이 ‘통과의례’를 치렀으니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하다.



그런데 수족구 바이러스가 여러 종류여서 한 번 걸렸다고 해서 면역력이 완비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끝까지 방심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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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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