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기 전까지는 그를 알지 못했다. 2등신의 몸매에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저것들, 도대체 뭐지? 첫인상도 별로였다. 뽀로로와 그 일당들 얘기다.
뽀로로는 처음엔 나의 아침잠을 보충해주는 ‘도구’였다. 마구 늦잠 자고 싶은 토요일 아침, 녀석은 늦어도 7시30분에는 나를 깨웠다. 책도 읽어주고 이런저런 개인기로 녀석을 보살폈지만 그래도 졸음은 달아나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30분이라도 더 자고파서 난 텔레비전을 켰다. 8시30분께 <모여라 딩동댕>이 시작되면 녀석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9시부터 <뽀롱뽀롱 뽀로로>가 시작되면 녀석은 아빠가 필요 없을 정도로 무섭게 몰입했다. 녀석이 몰입할수록 난 그 시간에 달콤한 쪽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녀석과 함께 뽀로로를 시청했다. 그때부터 쪽잠의 도구였던 뽀로로는 나의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뽀로로, 크롱, 루피, 페티, 에디. 하는 짓들이 어찌나 깜찍하고 귀엽던지. 게다가 국산 캐릭터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뽀로로의 팬으로서 자부심까지 가지게 됐다.
그때부터 난 뽀로로 홍보대사가 되었다. 뽀로로의 인지도는 ‘의외로’ 낮았다.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후배들은 뽀로로를 전혀 몰랐다.
“너희 정말 뽀로로를 몰라?”
“그게 뭔데요?”
“국산 애니메이션이고, 2등신의 귀여운 캐릭터들이지. 인터넷에 등본 뗄 때도 등장하는데... 뽀로로, 크롱 정말 몰라? 크롱은 말을 못해서 ‘크롱 크롱’ 거려서 꼭 우리 애 같아.”
“크롱은 공룡인가 보죠?”
와우! 크롱을 생전 보지도 못한 후배가 공룡이라고 느낄 정도로 작명도 기가 막히다.
아이가 이미 중고등학생이 된 장년층에게도 뽀로로는 낯설다. 한 부장검사와 아이폰 관련 대화를 하다가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애가 아이폰으로 뽀로로 보는 걸 너무 좋아해서 걱정입니다.”
“그래? 애가 벌써부터 아빠를 닮았나... 포르노를 본다고?”
“아니오, 포르노가 아니고 뽀로로요. 뽀로로라고 유명한 아이들 애니메이션 있습니다.”
» 왼쪽부터 춤추는 뽀로로, 뽀로로 블럭, 뽀로로 비눗방울, 미니 뽀로로, 뽀로로 슬리퍼, 뽀로로 칫솔세트
어쨌든 뽀로로는 육아계의 ‘효자손’이었다. 아빠가 쪽잠을 자고 싶을 때, 엄마가 재택근무를 해야 할 때, 녀석은 뽀로로를 봤고 뽀로로는 녀석을 돌봤다. 스마트폰 속으로 뽀로로가 쏙 들어가고 나서 그 위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외식을 하건 장거리 여행을 하건 녀석의 칭얼거림이 예상되면 뽀로로는 언제 어디서건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면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집안에는 뽀로로 캐릭터가 하나둘 늘어갔다. 춤추는 뽀로로, 뽀로로 블록, 뽀로로 비눗방울 놀이, 뽀로로 치약, 뽀로로 에디슨젓가락, 뽀로로 슬리퍼 등등. 아이를 캐릭터의 노예로 키우지 않겠다는 내 계획은 잊혀진 지 오래다. 지난해까지 뽀로로 캐릭터 누적 매출액이 8300억원이라는데, 우리집도 공헌한 바가 적지 않다.
그런데 녀석의 뽀로로에 대한 애착이 시들해진 것 같다. 아이폰을 통해서 녀석은 더 이상 뽀로로를 찾지 않는다. 심각해보였던 아이폰 집착도 이젠 없다. 다 ‘한때’였던 것 같다.
석가탄신일이 있던 지난주, 뽀로로 연등 행사를 둘러싼 조그만 해프닝이 있었다. 조계종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뽀로로 연등 행사를 기획하면서 저작권사에 사전 양해를 구하지 않았고 이에 저작권사가 사용금지를 요구하면서 ‘종교 편향’ 논란이 빚어진 것. 저작권사가 다시 사용금지 요구를 철회함에 따라 내년에는 뽀로로 연등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뽀로로에는 진보도 보수도, 기독교도 불교도 없다. 그냥 뽀로로일 뿐이다. 이젠 자기를 ‘씩씩한 형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커버린 녀석은 더 이상 뽀로로를 찾지 않지만, 지금도 어느 아이는 꿈속에서 뽀로로와 비행기를 타는 환상적인 경험을 하고 있을 거다.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콘, 아이들의 아이돌, 토종 캐릭터 뽀로로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