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자고야 말았다. 벌써 며칠 째인가. 오늘은 정말 안 자려 했는데...
요즘 아내는 바쁘다. 일주일 내내 야근이다. 이럴 땐, 퇴근 후 애를 재울 때까지 온전히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
책을 읽어주다 퍼즐을 맞추다 공놀이를 하다 녀석이 하품을 하면 나는 그 빈틈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우리 양치질할까?”라며 녀석을 화장실로 유인한 뒤 양치질을 시키고 손발 얼굴을 다시 씻기면
녀석은 자동으로 침대로 향한다.
이후 애가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 시간을 단축시키는 일은 순전히 나의 역량에 달렸다.
자려고 누워서 뒹굴다가도 갑자기 ‘아, 이거 덜 놀았지’ 라는 생각이 난 것처럼 갑자기 내 몸을 타넘고
침대를 탈출하려고 할 때는, 마치 장난치듯이 녀석을 매트리스에 메다꽂아 제압했다.
시체처럼 정숙을 유지하다가도 탈출이나 낙상사고를 방지하려면 녀석의 움직임에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한때는 ‘자장가 신공’이 맹위를 떨치기도 했다. 어디선가 많이 들었음직한 곡조로 “잘 자라 잘 자라”를 무한 반복했다.
늦은 시각, 더 놀겠다고 격렬하게 반발하던 녀석의 가슴에 손을 얹고 이 노래를 들려주면 녀석은 신기하게 곯아떨어졌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려고 자장가 신공을 무리하게 쓰다가 실패한 적도 있다(그날 우리 세 식구는 사이좋게
<선덕여왕>을 다함께 시청해야 했다).
요즘 녀석의 코에 바람이 들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바깥출입이 늘었다.
그렇게 활동량이 많다보니 녀석은 밤 9시를 전후로 하품을 한다. 침대에 눕히면 탈출을 감행하지도 않고
몇 번 뒹굴 거리다 자버린다. 늦은 밤까지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야 했던 때와 비교하면 정말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문제는, 나도 같이 잔다는 거다.
오늘, 아니 어제도 그랬다. 퇴근길에 다짐을 했다. 오늘은 같이 안자겠다고. 최근 녀석을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새벽 2시나 3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가욋일로 하는 이런저런 기사를 쓰고 잠자리에 들면
잠이 확 달아나 불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다고 씻지도 않고 쭉 자버리면 수면시간이 유아 수준으로 급등하는
허무한 결과를 맞게 된다. 녀석과 같이 자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유다.
어제도 녀석과 함께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한겨레> 22주년 창간기념호도 봐야 하고,
어제 산 <삼성을 생각한다>도 읽어야 하고, 에 또...’
그러나 나는 또 자버렸다. 일어나보니 새벽 1시30분. 일거리를 집에까지 들고 온 아내가 이제 잠자리에
들려는 시점이었다. 별 것도 아닌 ‘나와의 싸움’에서 또 진 것이다. 때늦은 샤워를 하면서 잠시 고민하다,
이 처절한 좌절의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14일 새벽 3시, 불면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육아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