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어린이집에 다닌다.
세 살, 다섯 살 때도 시도는 했었다.
세 살 때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우는 통에 일주일을 보내다가 그만두었고
다섯 살 때는 적응 기간 중에 한 아이가 엄마가 보고 싶다며 계속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바다도 그럴까봐 내가 포기했다.
다섯 살 때 그만 두면서 다시는 어린이집이라는 곳에
바다를 보낼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했다.
바다도 준비가 안 되었지만 나도 준비가 안 되어서였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 나 이제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바다가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어리둥절하면서도
이제 정말 때가 되었나 싶어 남편과 의논하여
가까운 어린이집에 대기 신청을 했다.
어차피 기다려야할 테니 차분히 생각하자 했는데
맙소사! 바로 등원이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바다가 할 수 있을까?’
‘이젠 내가 바다를 보낼 수 있을까?’걱정하며 첫 날 등원을 했는데
바다는 가자마자 친구들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나에게 등을 보였고 나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혼자 돌아왔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어린이집에 보내라고,
아이에게 기회를 줘야 되지 않겠냐고,
사회성을 배워야 한다고,
처음에는 힘들어도 다 적응해나간다고.
정말 힘들 때는 ‘그래...’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계속 고개를 젓고 있었다.
무엇보다 바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늘 나를 할머니께 맡겨두고
뭘 배우거나 일을 하러 나가셨다.
그 때마다 창 문 앞에 서서 엄마 빨리 돌아오라며 손을 흔들고
하루 종일 엄마 옷을 붙잡고 냄새를 맡으며 외롭고 슬픈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렸다.
그 어린 내가 어른이 되어 딸을 낳았는데
내 딸이 나를 기다리며 외로워하고 슬퍼하는 경험을 하게 둘 수가 없었다.
남편은 내가 바다를 어렸을 때의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나도 그런 것 같아서 떼어놓고 생각하려고 애써보았지만 잘 안 되었다.
그래서 천천히 하기로 했다.
바다와 보내는 충분한 시간을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의 상처가 회복이 되든 뭐든
이 시간이 나에게 그리고 바다에게 주어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날 어린이 집에 다녀온 바다는
"엄마, 되게 되게 재미있어. 매일 매일 갈 거야." 라고 했고
둘째 날 바다는
"엄마, 이렇게 재미있는 곳일 줄 몰랐어. 아, 대단해!" 라고 했다.
자유 의지로 어린이집을 즐기고 있는 바다를 보면서
남편은 당신이 지혜로웠다며 나를 칭찬했고
나는 남편에게 당신이 중심을 잡고 보내자고 해서 용기를 냈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삼 일 째 되는 날부터 바다가
“어린이집 안 갈래... 재미없어...” 라고 하며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등원을 안 하려고 늦게 일어나고
내 소원은 어린이집에 안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어린이집에 안 다니면 안 되냐고 계속 물어봤다.
심지어 하루는 신발을 벗고 몇 발자국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어린이집 정말 재미없어! 안 갈 거야!” 하고 소리치며 신발을 신고 뛰어 나가버렸다.
일주일 정도 대화를 해본 결과, 어린이 집이 재미가 없는 이유는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많아서 힘들고
자기랑 놀아주는 친구들이 많이 없고
퀴즈나 게임을 잘 몰라서 지는 것이 눈물이 날 정도로 싫은 것이었다.
보내지 말까.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하나.
지금부터 꼭 이런 것들을 적응해내고 이겨내야 할 필요가 있나.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와 떨어지는 것은 이제 바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도 다행히 바다와 떨어질 용기가 어느 정도 생겼고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좀 더 집중해서 빨리 낫기 위해서라도
바다를 보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요즘도 바다는 잠들기 전이나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갔다 와서는 어린이집에서 그린 그림이나 만든 것을 자랑하며 보여주고
어떤 칭찬을 받았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바쁘다.
더 씩씩하고 활발해진 몸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동네 아이들과, 어린이집 친구와 어울려 논다.
품 안의 자식을 내놓으며 가지게 된 여러 가지 감정들,
불안, 긴장, 걱정, 뿌듯함, 고마움, 만족감 같은 것이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는 와중에
하루는 어린이집 옷을 입고 걸어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한 시기를 넘어왔구나...’
바다와 하루 종일 부비고 다투면서 보낸 5년.
내일은 아무래도 바다와 나를 위해 어린이집 등원 한 달 기념 파티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