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JPG » 호정이가 민지에게 준 쪽지.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은 “엄마~~”하며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아이들을 한번씩 꼭 안아주고나면, 딸 민지는 그날 있었던 가장 인상깊은 일들을 내게 쏟아내기 시작한다. 최근 민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그날 하루 호정이라는 단짝 친구와 어떻게 지냈느냐 여부다.
 

지난해에는 같은 반 도훈이라는 남자친구와 단짝이었는데, 이번에는 호정이라는 여자 친구가 짝꿍이다. 씩씩하고 다정하지만 때로는 다른 여자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 딸의 마음을 한번씩 속상하게 했던 남자친구와는 달리, 이번에 우정을 쌓고 있는 호정이라는 친구는 오랜 시간 민지와 찰떡 궁합을 유지하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서로를 좋아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호정이는 매일 민지에게 “나에게는 니가 제일 친한 친구야”라고 고백하는 편지를 쓰고, 민지는 호정이에게 “호정아 너는 나의 소중한 친구야”라고 답장을 쓴다. 호정이가 직접 그린 그림 편지에 민지는 또 그림 편지로 답한다. 호정이가 반지나 사탕, 스티커 등 선물을 주면, 민지는 자기에게 소중한 물건 가운데 무엇을 줄까 고민하고 내게 조언을 구한다. 그래서 한번은 호정이를 위한 예쁜 머리핀을 내가 사주기도 했고, 민지와 내가 직접 호정이에게 줄 스티커를 고르기도 했다. 민지와 호정이는 매일 서로에게 편지 쓰고 어떤 선물을 줄까 궁리한다. 생일을 말해주며 꼭 자신의 생일에 집으로 놀러오라는 당부도 한다.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민지는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알아가고 있고, 관계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감정들을 경험하고 있다. 또 직접 손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려야 해서 부쩍 글씨 쓰는 법에도 관심도 많이 갖고, 그림도 자주 그린다. 우정을 통해 무럭무럭 커가고 있는 딸을 보면, 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여자친구와의 우정을 쌓는 딸을 보며 다시 한번 나 역시 친구의 소중함을 되돌아본다. 나를 이해해주고 내게 힘든 일이 있을 때나 내게 좋은 있을 때 나와 함께 울고 웃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봐도 그렇다. 나를 키운 절반은 아마도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

호정이에게 주려고 그린 그림.jpg » 호정이에게 주려고 민지가 그린 그림.

 

민지처럼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수많은 친구들과 손편지를 주고 받았다. 지금도 당시 친구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내 서랍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연말에 시간이 나면 옛날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들을 들춰보곤 한다. 그 편지 안에는 수많은 얘기와 사연들이 녹아있고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집안에 불만이 가득 있을 때, 외롭고 쓸쓸하고 불안하고 힘들때마다 항상 내 곁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나를 키워주신 이모에 대한 불만으로 첫 가출을 감행했는데, 그때 친한 친구들과 순천으로 여행을 갔다. 친구의 친척이 별장으로 사용하는 곳에 단짝 친구들 5명이 함께 놀러갔는데, 한 친구가 벌집을 잘못 건드려 벌이 친구를 쏘아 놀란 기억이 있다. 그때 요리를 잘 하는 친구는 우리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었고, 낙엽이 뒹굴거리는 것만 봐도 깔깔깔 웃던 우리는 밤새 이불 속에 누워 수다를 떨기도 했다.
 

친구들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공부가 어려워 포기하고 싶을 때 항상 도전하고 끈기를 잃지 않는 친구를 보며 나 역시 어렵다고 무엇이든 포기않는 정신을 배웠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마음이 아픈 친구를 보듬는 친구를 보며 사람에 대한 따뜻함을 배웠다. 리더십 있는 친구를 보며 진정한 리더십이 뭔지 알게 됐고, 유머와 재치 있는 친구를 보며 유머의 순기능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도 내 친구들은 참 따뜻했고 착했고 멋졌다. 초등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여전히 연락하면서 지내는데, 세월이 흘러도 또 어쩌다 만나도 ‘그때 그 친구들’은 포근하고 다정하다. 여전히 친구들은 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주고, 항상 나를 응원해준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어렸을 적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나는 내 자식들이 그 어떤 복보다도 인복이 많았으면 좋겠다. 사람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고,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떤 친구들과 어떤 우정들을 쌓아갈 지 궁금하기만 하다. 엄마인 나는 우정을 쌓고 인생의 묘미를 알아가는 아이들을 그저 옆에서 지켜봐주며 우정을 축복해주면 되지 않을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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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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