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녀올게 라는 아이 목소리가 들린 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8시 30분. 그 시간은 아이가 나에게 붙여준 아빠라는 수식어까지 책가방에 넣고 학교로 향하는 시간이었다. 아빠에서 한 사람으로 돌아오는 시간. 신데렐라가 마법에 걸리면 집에서 빠져 나와 평소와 다른 경험을 하는 것처럼, 매일 오전 8시 30분쯤이면 집안 일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섰다. 기자 생활을 막 그만두고는 이 시간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가난에 찌들린 사람이 복권에 당첨돼 어찌할 줄 모르는 것처럼,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듯한 자유시간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다. 그 자유시간에 어느덧 익숙해져 갔다.

 

 이 날은 아이를 보낸 뒤 전날 수리를 맡겨 놓은 자동차를 찾으러 집을 나섰다. 사는 곳에서 제법 떨어진 구로디지털단지 역으로 향했다. 14년 동안 시간을 함께 한 오랜 자동차를 위해  일 년에 한 두 차례 꼭 가야만 하는 정비소였다. 그 정비소는 택시 운전사로 소박한 삶을 사시다 지난 주 돌아가신 막내 숙부의 음성이 담긴 곳이기도 했다.
 “남구야, 택시 기사들이 몰리는 곳이면 바가지 쓸 일은 없어.”
 숙부는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시겠다며 혼자서 살림과 돈벌이를 해야 하는 조카를 끌고 이 정비소까지 안내해 주신 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이른 아침부터 택시가 줄을 서는 곳. 자동차에 문제가 생기면 과천에서 나와 구로디지털단지 역으로 향했다. 이번엔 자동차 핸들이 문제였다. 어느날부터인가 팔에 온 힘을 다해야 핸들이 돌아갈 만큼 퍽퍽했다.

 

정비소는 구로디지털단지 역에서 제법 떨어져 있었다. 공간은 추억을 담아 놓는데 구로디지털단지 역 인근엔 즐거운 기억이 담긴 재래 시장이 있었다. 중국인들이 꽉찬 재래시장에서 본토 음식 을 골라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정비소로 향했다. 사람들 표정을 보며 그 사람의 삶은 어떨지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데 역에서 정비소로 가는 길에서 만난 얼굴들엔 힘겨운 열정이 보였다. 한참을 걷다 보니 새 차를 전시해 놓은 자동차 대리점이 눈에 띄었다. 깨끗하고 밝은 조명이 허름한 주변 건물 사이에서 밝게 빛났다. 쇼윈도에 비친 하얀 자동차가 눈 안으로 들어왔다. 창밖에서 걸음을 좌우로 옮기며 다른 각도에서 그 차를 내려다 봤다. 최근 동급 최강이라고 광고를 하며 비교적 경쟁 차량보다 싼 가격에 나온 신 차였다. 다른 지역 대리점보다 이 곳 대리점이 더 싼 값에 팔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대리점 안으로 들어섰다.

 

 “한 번 운전석에 앉아 보세요.”
 전시된 차를 맴돌면서 바라보자 대리점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50대 전후에 배가 좀 나온 직원에게 차가 예쁘다며 인사말에 답했다. 청바지를 입은 채 모자를 눌러쓴 내 모습을 살피는 눈길이 느껴졌다.
 “이 앞 정비소에 차량을 맡겼다가 지나가는 길에 한 번 들렀어요. 제 차가 오래 돼 차량을 바꿀 때가 되어서요.”
 새로 나온 차가 마음에 든다는 말과 차량을 바꿀 시점이라는 내용도 전했으니 이젠 운전석에 앉을 만한 자격을 갖춘 셈이었다. 차량 앞 문을 열었다. 기분 좋은 새 가죽 냄새가 느껴졌다. 운전석을 앞뒤로 조정해 내 몸에 맞춘 뒤 핸들에 손을 올렸다. 기어도 당겨보고 주변 곳곳에 손을 얹어 쓰다듬었다. 15년 가까이 된 오랜 내 차와 지금 막 공장에서 나온 반짝이는 차는 헌 것과 새 것의 차이를 명확히 느끼게 했다.

 

  새 차는 마치 어린 아이의 몸처럼 깨끗했다. 흠집 하나 없이 매끈했다. 아이의 살내음처럼 타이어에서도 그리고 차량 내부에서도 자동차만의 새 살 냄새가 났다. 아이의 울음 소리에 생명력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엔진 소리도 우렁찰 것만 같았다. 새 차를 바라보니 남편은 아내와 오랜 시간을 보냈더라도 새로 태어난 아이만큼 아내의 사랑을 받기 힘들 거라는 상상을 했다. 아이는 눈은 촉촉하고 남편 눈은 칙칙하고, 아이 살은 보드랍고 남편 살은 칙칙할 테니까. 아이는 구토를 해도 향기가 나지만 남편은 양치를 해도 입냄새가 날 것만 같았다. 내 오랜 차는 나에게 많은 추억을 새겨주었지만 새 차에 비해서는 늙었고 여기저기 찌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집 안에서는 주부이지만 그래서 엄마들의 삶과 비슷하지만 여전히 내가 남자인 탓에 여전히 남자들의 삶이 더 안쓰럽다.

 

견적을 한 번 내보자고 제안을 한 건 오히려 나였다. 이왕 들어왔으니 새 차를 사는 데에는 얼마큼의 비용이 들어가는지 알고 싶었다. 대리점 직원의 안내를 받아 컴퓨터가 옆에 놓인 자리로 이동했다. 직원이 먼저 물었다.
 “얼마를 가지고 차를 사실 생각이신가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니까 얼마를 가지고 차를 사실 건지 알아야지 금액을 뽑을 수 있으니까요.”
 잠시 아무런 말없이 직원을 쳐다봤다. 차 가격이야 이미 공개돼 있으니 그 비용으로 차를 살 텐데 얼마를 가지고 차를 살 거냐니. 또 한 번 되물었다.
 “차 가격이야 나와있는데 얼마를 가지고 살 거냐는 말씀이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푸근한 인상의 직원 얼굴이 조금씩 굳어갔다. 당연한 질문에 당연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반응이었다. 애당초 차를 살 계획이 없던 내 속 마음이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참 설명을 들으니 얼마를 가지고 차를 살거냐는 질문은 처음에 얼마의 돈을 먼저 지불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처음에 돈을 얼마를 내느냐에 따라 할부금액이 달라지니까. 그러니까 처음에 낼 수 있는 돈으로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은 당연한 질문이었던 셈이었다.

 

 비로소 질문을 이해한 뒤 내 통장 잔금을 떠올렸다. 퇴직금이 얼마였더라. 처음부터 차 구매 의사가 없다는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넉넉한 듯 대답을 했다.
 “먼저 천 만 원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할부로 계산을 해 주세요.”
 직원은 모니터에 천 만 원을 입력했다.
 “몇 개월 할부를 생각하세요?”
 “할부 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보통 36개월 할부로 합니다.”
 “그럼 36개월 할부로 계산해 주세요.”
 할부 금액이 모니터에 떴다. 차 한 대 값이 얼마인지 들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매달 내야 할 할부 금액을 보니 한 달에 들어가는 아이 운동 수업료와 학원비가 떠올랐다.
 “더 긴 할부 기간은 없나요?”
 퇴직금을 생각하며 당당했던 목소리는 겸손하게 바뀌었다.
 “5년 할부 기간으로도 뽑아줄까요?”
 막상 차량 구매 금액을 보니 차량을 구입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비슷한 차량과의 비교도 디자인의 뛰어남도 아니라 바로 돈이었다. 견적서를 챙긴 뒤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매장 밖으로 나왔다. 길을 걷다 대리점을 돌아보니 직원은 매장 앞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시작했다.

 IMG_2120.JPG

 정비소로 향하는 길, 어린 시절 오래된 자동차처럼 해진 치마를 무릎 가까이 걷어 올리시고는 두 손으로 빨래를 주무르시는 어머니가 생각났다. 올해 꼭 일흔이신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그릇을 비롯해 각종 물건을 가리키시며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물건이라시면서 당신의 알뜰함을 자랑하셨다. 난 어렸을 때 어머니는 새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다. 새 옷이며 새 신발이며 새 가방은 모두 내 것이었다. 언젠가 해지고 닳아 구멍이 난 속옷을 바라보시며 속옷 하나 제대로 못 사신다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이날 귓가를 맴돌았다. 쇼윈도에 비친 새 차를 타고 싶지만 새 차 앞에서 아이 학원비를 생각하는 나처럼, 어머니께서도 옷하나 제대로 사지 못한 건 새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나와 동생에게 새 것을 주기 위한 마음이 더 커서였다. 아이를 키워보니 무심코 지나쳤던 어머니의 모습이 내 모습과 겹쳤다.

 

 아이 학원비를 기준으로 차 할부 금액을 비교하는 내모습이 조금은 웃겼다. 참 변해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에 나온 웃음이었다. 사회부 기자 시절 내 지갑 안에는 두 장의 카드가 있었다. 한 장은 아내가 준 카드. 다른 한 장은 아버지가 가족들 몰래 주신 카드 한 장이었다. 떠난 아내는 나에게 남자가 밖에서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카드를 건넸고, 아버지는 기자 생활하면서 후배들에게 밥사는데 인색하지 말라고 카드를 몰래 주셨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밥과 술을 사는데 인색한 적이 없었던 건 그 두 카드 덕분이었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다니며 아쉬운 소리없이 술값 밥값을 계산을 하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게 카드를 준 사람의 의도에 맞춘 행동이라며 내가 나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매달 정확히 카드값이 얼마가 나오는 줄 모르고 풍요롭게 살던 시절, 지나고보면 후배들과 동료들에게 밥을 샀던 건 다름 아닌 그런 시간과 비용을 통해 인정을 받고 싶었던 내 욕심이 컸다. 나를 위해서만 돈을 쓸 줄 알았던 내가 이제는 내가 아닌 아이를 위해 돈을 쓰려고 한다.

 

 어느 한 광고였던가.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물었다. 삶이 1년만 남아 있다면 5억 원의 돈과 죽기전에 하고 싶은 일 가운데 어떤 거를 선택하겠느냐고. 아이들은 이구 동성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라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미리 찍은 영상이 흘러나왔다. 가장인 아버지에게도 똑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삶이 1년만 남았다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과 5억 원 가운데 어떤 거를 선택할 거냐는 질문. 그 질문에 가장인 아버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줄 5억 원을 선택할 거라고 답했다. 그 영상을 보며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부모에게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부모. 그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즐거움보다는 아이를 위해 돈을 쓸 때 아이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행복해 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란 생각을 하며 정비소에 한 걸음씩 더 다가갔다.

 

 자동차 정비소에 도착해 수리비용을 물었다.
 “네? 73만 5천원이요?”
 “차가 오래 됐었잖아요.”
 “2년 전에도 70만 원 정도 수리비를 냈는데, 차를 바꾸든지 해야지. 안 그래도 차 바꾸려고 앞에 자동차 대리점 들렀다 오는 길이에요.”
 볼멘 소리를 하니 카운터에 앉아 있던 정비소 직원이 난처해 하며 웃었다.
 “왜 저한테 그러세요, 사장님.”
 그렇게 따지는 이유를 들려줬다. 볼멘 소리가 부탁의 소리로 바뀌었다.
 “3만 5천 원 깎아서 73만 원으로 해 주세요.”
 이번에도 난처한 표정이었지만 더 크게 웃었다.
 “사장님, 저 힘이 없어요. 5천 원만 깎아 드릴게요.”
 수리내역을 받아보니 다른 곳에 갔으면 백 만 원도 훨씬 넘은 수리 비용이 나왔겠다는 생각이 들어 5천원 할인 받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2년에 한 번씩 큰 수리를 받는 게 새 차를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저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오랜 시간 상담을 해 준 자동차 대리점 직원에게 미안했다. 14년 째 타고 있는 자동차를 앞으로 한 3년 더 타기로 했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느 날 나도 아이에게 오래된 자동차를 자랑할 것만 같았다. 이 차는 너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차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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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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