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이와 나는 지난 주말 어린이집 졸업반 아이들, 아빠들과 함께 1박2일 캠프에 다녀왔다. 아이들 13명과 아빠들 7명이 함께했다. TV 프로그램 제목을 따서 붙인 소위 “아빠 어디 가”이다. 지난 해 7월에 첫 캠핑을 하고 이번이 두 번째.


윤슬이는 제주에서 유일한 공동육아 어린이집 ‘보물섬’에 다녔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하고 나서 바로 보물섬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3년을 보물섬에서 생활했다. 5세 왕개굴방, 6세 남생이방, 7세 청어방. 반이 아니라 방이다. 보육기관이기보다는 집에 가까운 곳,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지향이 드러난다.

매달 아마(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아빠, 엄마를 통칭해 부르는 말)들이 어린이집에 가서 선생님과 아이들 한 달 생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어린이집 운영에 대해 의견을 모은다. 다른 어린이집과 다르게 아마들이 어린이집 운영에 참가한다. 아이들 생활도 철저하게 나들이에 맞춰져 있다. 근처 숲으로, 하천으로 나들이를 가는 게 하루 일상이다.

 

20180415_105409.jpg

윤슬이는 서울에서도 성미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녔다. 공동육아 일상이 나들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성미산이 없으면 공동육아도 이뤄질 수 없었다. 그 조그만 산 하나가 공동육아를 이뤄냈고,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제주라고 저절로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공동체는 유지되기도 하고, 해체되기도 한다. 보물섬어린이집은 윤슬이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보물 같은 존재다. 아내는 윤슬이 어린이집 졸업식에 자기가 엉엉 울었다. 졸업식 때 울 것 같다고 말한 윤슬이는 정작 담담했다.

그런 윤슬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창 밖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훌쩍거렸다. 보물섬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보물섬 아마들이 아이들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보물섬에 다닐 때처럼 매달 모이지는 못하지만, 3~4개월에 한 번씩 아이들과 아마들이 모두 모였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신나게 놀았고, 아마들은 술을 곁들이면서 저녁을 먹었다. 그러다 아빠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지난 해 7월 “아빠 어디 가”를 하기로 뜻을 모았다. 아이들은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당연히 엄마들은 아빠들의 작당에 대환영이었다.    

작년 7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나는 토요일 오후에 일이 있어 윤슬이를 먼저 보냈다. 아이들은 몇 개월 만에 만났지만, 전혀 서먹한 것 없이  즐겁게 놀았다. 몇 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서로 뒹굴고 놀았기 때문이겠지. 아이들 모두 9살. 이제 1박 2일 여행을 가도 스스로 하는 게 많아져서 아빠들도 편하다. 윤슬이는 며칠 후 "아빠도 자유시간을 가져서 좋았지"라고 말했다.

 

20180415_090713.jpg

저녁으로 바베큐를 해주고 나서는 아빠 한 명이 돌아가면서 아이들과 놀았다. 나머지 아빠들은 술 한잔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사실 아빠들끼리 가끔 저녁에 모여서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 술자리가 잦으면 엄마들의 불만과 원성이 높아지지만, “아빠 어디 가”는 엄마에게 환영 받는 프로그램이다. 다음 날에는 근처 오름을 올랐다. 윤슬이가 자주 간 오름이라 초입부터 "엥 또 이 오름이야"라고 따졌다. 뭐, 어쩌겠니. 숙소랑 가까운 오름이 여긴데.

아빠들끼리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이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이 모임을 계속하자고 도원결의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아빠들을 따라 오지만, 중학생 정도가 되면 “아빠 어디 가” 프로그램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 때 되면 “아빠 어디 간?(‘갔어?’의 제주말)”하자면서 우스개 소리를 했다. 7월 중순에 다시 “아빠 어디 가”를 약속하고, 1박2일 일정을 마쳤다. 아이들에게도, 아빠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태그
첨부
박진현
제주에서 8살, 4살 아들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육아휴직도 두 번 했습니다. 4년 전에 각박한 서울을 떠나 제주로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자 벌인 일입니다. 우리 부부의 좌우명은 평등육아입니다. 사실 아내가 먼저 외치기 시작한 좌우명이지만, 저도 동의합니다. 진짜입니다.
이메일 : hyunbaro@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equal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82785/8ca/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208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육아의 적, ‘큰아들’ 남편 imagefile 신순화 2010-10-20 38266
208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유관순을 만나다 imagefile 신순화 2019-03-02 38255
2083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엄마 따라 3년째 싱싱한 자연감성 쑥쑥 imagefile 빈진향 2014-07-15 37690
208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내가 병원이 아닌 곳에서 세 아이를 낳은 이유 imagefile 신순화 2010-04-27 37578
208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쭈쭈 없는 아빠의 설움 imagefile 홍창욱 2011-11-07 37284
2080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80편] 배타미와 장모건이 결혼 했을 때(드라마www) imagefile 지호엄마 2019-07-18 37129
2079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하루만에 젖떼기 성공! 시원섭섭한 엄마 마음 imagefile [4] 양선아 2011-10-12 36787
207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내 남자와 자는 일이 이렇게 힘들줄이야... imagefile [10] 신순화 2013-11-19 36114
207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동생 출산 함께 한 다섯살 아이 imagefile 신순화 2010-06-21 35934
2076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두달 뒤 마흔!, 센티(?)한 아줌마의 푸념 혹은 넋두리 imagefile [15] 김미영 2013-11-08 35777
2075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아들 2호야, 미안. 아! 미안 imagefile [6] 김외현 2012-12-21 35740
207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두근두근 열 두살 아들의 몽정기 imagefile [9] 신순화 2014-09-19 35728
207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들의 방학은 엄마의 특별근무!! imagefile [2] 신순화 2011-12-26 35643
2072 [김은형 기자의 내가 니 엄마다] 쭈쭈, 먹이기보다 끊기가 어렵네 imagefile 김은형 2011-08-23 35611
2071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 빅뱅 태양머리는 무슨! 단발령 잘못 내렸다가 큰일날뻔.. imagefile [12] 전병희 2012-04-19 35428
2070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말레이시아 게임 하다 진짜 말레이시아로! imagefile [9] 빈진향 2013-04-19 35383
2069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아이 머리 감길 때 울리지 않는 나만의 필살기 imagefile [16] 양선아 2012-07-05 35177
2068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촘백이 만든 평상에 놀러 오세요. imagefile [1] 빈진향 2013-05-24 34932
2067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17편] 뒤늦은 가을 소풍, 악어야! 입이라도 쩍 벌려줄래? 플리즈~ ㅠ..ㅠ imagefile [3] 지호엄마 2012-11-29 34848
2066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만약 둘째 아이가 생긴다면... imagefile [13] 지호엄마 2012-02-27 34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