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녀석, 책 속의 여자아이를 보고 좋다고 웃는다
내 인생의 책
초등학교 4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웬 아주머니가 책을 들고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어머니가 부르신 도서 방문 판매원이었다. 어머니는 약간을 고민하시더니 값을 치르셨고, 아주머니는 계몽사에서 펴낸 세 권짜리 백과사전과 한국사 전집을 놓고 가셨다. 고대사부터 기술된 역사책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백과사전은 숙제할 때마다 유용하게 참고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아버지 회사 사외보에 내가 만든 가로세로 퀴즈가 실렸다. 상품은 5만원짜리 도서상품권. 배낭 메고 지하철 타고 종로서적으로 갔다. 수많은 선생님들이 교직을 걸고 ‘참교육 운동’을 전개하시던 그때, 누가 가르쳐줬는지도 가물가물한 이른바 ‘불온서적’들을 왕창 샀다.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학교야 학교야 뭐하니> <꼭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부터 <노동의 새벽>까지.
어린 시절 그 책과의 만남을 통해 읽기능력을 길렀고 동시에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으며, 언론인의 꿈을 키우고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깜냥으로 총각 때부터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를 놓고 토론할 때면 “내 아이는 공교육만으로 키우겠다. 선행학습을 위한 사교육은 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어려서부터 독서하는 습관만 길러놓으면, 돈으로 만든 ‘스펙’정도야 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는 어렴풋한 자신감이었다. 놀랍게도 내 아내도 처녀 시절부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 교육문제로 싸우는 부부가 많다는데, 우리는 연애 시절 일찌감치 합의를 본 셈이다.
사교육 없이 입지전적인...
그렇게 해서 접하게 된 것이 최희수씨의 ‘푸름이 육아법’이었다. 아이를 훌륭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동시에 아이에게 ‘책 읽는 능력’을 길러줘 스스로 공부하게 만든다는 게 내가 요약하는 ‘푸름이 육아법’이다. 공교육만으로 ‘버티려는’ 우리 부부에게 정말 솔깃한 내용이었다.
사교육 전혀 없이 독서만으로 아이 셋을 영재로 키운 푸름이닷컴 교육팀장 유은정씨의 사례도 경이로웠다. 그의 책 <삼남매 독서영재 육아법>을 보면, 아이들 사줄 책값이 모자랐던 전업주부 10년 세월 동안 미용실 한 번 가질 않았다고 한다. 2만원밖에 수중에 없었지만 공룡에 푹 빠진 막내에게 1만3천원짜리 공룡모형을 사주고 7천원으로 며칠을 버텼다는 대목도 있다. 아이 교육을 향한 열정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지난달 29일 삼남매 엄마 유은정씨가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우리 회사 노조 여성부가 마련한 육아 특강이었다. 책을 통해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강연을 들었다. ‘독서영재’ 삼남매 중 첫째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외교관을 꿈꾸는 둘째는,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에서는 노는 아이들을 보며 중학교를 자퇴해 현재 독학으로 국제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셋째는 학교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 가끔씩 TV프로그램에 영재로 소개가 되어도 친구들이 잘 안 믿는단다. 아이들이 발레·중국어·태권도 등 학원을 각각 한 개씩 다니는 모양인데, 엄마의 운동 비용까지 합해서 이 집안의 한 달 사교육비는 40만원이다. 문자해독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피아노와 제2외국어도 사교육 없이 책 보면서 혼자 독파했단다.
그는 전업주부로 아이들과 함께 책에 파묻혀 지냈던 ‘보람찬 10년’ 경험을 압축적으로 들려주었다. 그의 ‘독서교육’은 아이들이 싫증내지 않고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매우 ‘전략적’으로 이뤄졌다. 자동차에 관심을 보이는 막내아들을 주차장에 데리고 가 번호판을 읽게 하면서 숫자를 가르치고, 외제차의 생산국가와 세계지도 위에서 그 위치를 알려주면서 각국의 수도를 외우게 하는 식이다. 또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아 책을 빌릴 때면 9권의 대출한도 중에 한 권은 엄마가 읽었으면 하는 책을 끼워 넣어 관심 영역을 확장시켰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그런 식으로 국어·수학·과학 등 각 과목에 도움 되는 도서를 읽게 했다.
그의 경험을 듣던 우리 회사 맞벌이 엄마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 살짜리 아이를 둔 한 여기자가 “밖에서 일 하는 엄마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방식”이라며 한탄하자 그는 “바쁘더라도 자기 전에 단 한 권이라도 책을 읽어주라”고 조언했다.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엄마표 선행학습·사교육 아니냐. 1등을 하는 것도 좋지만 올바른 가치관,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반론도 나왔다. 다소 공격적인 질의에 그는 “나는 아이들이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안내를 해준 것이다. 경쟁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좋은 책만 읽으면 끝?
특강 다음날, 우연찮게 현직 국어교사 이계삼씨가 쓴 <삶을 위한 국어교육>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교묘한 말로 포장된 ‘이상’보다는 살아 숨쉬는 우리네 ‘현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고민이 녹아들어 있는 책이었다. 여기서 이 교사는 “아이들이 좋은 책을 많이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좋은 글을 쓰게 하는 것은 과연 ‘좋은’ 일일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사적’인 행위인 책읽기와 글쓰기가 갑자기 불어 닥친 논술 광풍으로 대학을 가기 위한 ‘공적 행위’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물론 책읽기와 글쓰기가 좋은 것이라는 원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을 가기 위한 글쓰기 과정에서 아이들의 내밀한 자기성찰은 위축되고 스스로 절실하지 않은 세상의 문제에 모범답안 같은 글만 당연하게 늘어놓을 거라고 보았다. 가난·진리·희생·우정 등 돈으로 환산 안 되는 가치를 위해 몸을 쓰는 일을 두려워하게 될 아이들은 ‘참여’보다는 ‘관조’가 몸에 밴 ‘세상의 평론가’로 빚어질 것이라고 이 교사는 걱정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소개했다.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 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책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 여지는 전혀 없으며 그런 까닭에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과 같은 게 있을 리 없다…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책 읽는 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음모임에 틀림없다.” 강유원 <책과 세계>(살림, 2004)
주체적인 독서, 그리고 삶
‘독서가 왕도’라는 교육법과 ‘텍스트의 독재’를 경계하는 목소리를 공교롭게도 동시에 접한 한 주였다. 양 극단의 주장을 곱씹으며 정리가 필요했다. 학창 시절 독서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해주었기에 ‘좋은 책을 많이 읽는 행위가 좋은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독서 행위가 단순히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선행학습의 도구로 쓰이는 것에는 반대한다. 때문에 독서의 범위와 수준을 제한하며 내 아이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고 싶지는 않다. 궁극적으로 독서는 한 인간의 ‘주인된 삶’을 위한 것이다. 읽고싶은 책 마음껏 읽어라! 할아버지의 경제력(그리고 아빠의 이해심 또는 무관심)과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의 신분까지 결정짓는다는 ‘사교육 공화국’에서, 이방인이 될지언정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