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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산후우울증...집으로 불러들인 친구들과 수다로 외로움 털어내






요즘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병원 갈 때다. 안 좋은 자세 탓인지 출산 전에도 1년에 한두번씩 망가지던 허리가 애 낳고 제대로 망가졌다. 그래서 작정하고 얼마 전 신경외과에 가서  CT를 찍고  디스크 진단을 받아 이삼일에 한번씩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몸이 아파서 병원 가는 게 행복하다니, 변태인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며가며 한시간 치료 한시간씩 두시간 주어지는 이 시간은 육아로부터 완전하게 해방되는 시간인 것이다. 병원을 가기 위해 아이를 떼어놓고 집을 나가는 기분은 연애 초창기 데이트를 하러 나갈 때만큼이나 날아갈 것 같다. 그중에서도 지하철 좌석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온 병 커피를 홀짝거리며(모유수유 따위 홀랑 다 까먹는다!) 범죄소설을 읽고 있을 때  ‘아 행복하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언제 내가 이만큼 ‘작은 행복’에 만족한 적 있나 싶다.



단지 육아에 몸이 지쳐서만은 아니다. 사실 한달의 반 이상은 엄마와 언니가 아이를 키워주다시피하는데 감히 힘들다 투정할 처지가 아니다. 몸보다 마음의 자유, 안 보이는 철창으로부터의 해방, 나도 ‘애 엄마’가 아닌 ‘민간인’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이다지도 격한 기쁨을 주는 것이다.



산후우울증.



남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산모의 60% 이상이 크고 작은 산후우울증을 겪는다고는 해도  나이 마흔을 앞두고 5년 동안 기다려온 아이인데 나는 우울증 따위 걸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물론 기뻤다. 애 때문에 내 인생이 바람빠진 풍선마냥 찌그러진다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장기 육아휴직도 했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늘 불안하고 답답했다. 육아 때문에 왔다갔다 하는 친정에서 돌아와 한 이틀만 아이와 혼자 지내다보면 눈물이 나올 만큼 외롭고 쓸쓸했다. 삼십대 중반 넘어가면서 감정노동 따위 사춘기 감정으로 치부하고 살아왔던 내 입에서 “외로워”라는 말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쏟아져나왔다.



사람마다 우울증의  질감도 강도도 다르겠지만 나에게 이런 느낌은 어떤 것이었는가 하면 사막 한가운데 아이와 나만 둘이 뚝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것만 같은 고립감. 그리고 과연 이 험한 곳에서 내가 아기를 무사히 살려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 올 초 재미삼아 본 토정비결에서 바닷가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배 어쩌구 하는 내용을 봤는데 결국 이런 것이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책은 커녕 티브이도 제대로 볼 수 없고 컴퓨터는 켤 엄두도 낼 수 없는 데다가 전화가 와도 애가 울거나 자면(물론 울지도 자지도 않을 때는 안고 있어야 한다)  제대로 통화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이런 고립감을 부추겼다. 가끔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애를 안고 소파에 앉아 바닥에 노트북을 펴놓은 채 발가락으로 마우스질을 하는 신공까지 벌이기도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각자 바빴던 부부생활이었는데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는 시간만 목빠지게 기다리게 됐다. 퇴근시간이 지나면 20분 간격으로 전화해 “언제 와?”를 반복했다. 하지만 집에 오기만 하면 피곤하다고 앉아서 꼬박꼬박 조는 남편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는 법. 외로움에 몸을 떨던 내가 찾아낸 우울증 극복법은 바로 ‘오픈 하우스’였다.



친구와 친구는 아니더라도 친한 사람들, 친한 사람들은 아니라도 때로는 그냥 적당히 친분 있는 사람들까지 마구마구 집으로 불러댔다. 내가 나갈 수 없으니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수 밖에... 그래서 우리집이 누군가 초대하기 좋은 집인가 하면 비좁고 너저분해서 이사 오고 단 한번도 집들이 따위 해본 적도 없는 집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집에 누구 찾아오는 것도 ‘쪽팔리다’고 생각했을 텐데 외로워서 죽는 것보다는 쪽팔려 죽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너저분한 데다 아기 용품으로 뒤죽박죽된 집에 ‘제발 놀러와 줘’ ‘아기 보고 싶지 않으세요?’로 애걸복걸 했다. 다행히도 집이 회사에서 멀지 않아  점심시간이나 일이 많지 않을 때 많은 동료들이 기꺼이 찾아와주었다.



일주일에 한두명, 때로는 서너명이 집에 들러서 애 안고 두세시간 수다를 떨고 나면 외로움과 고립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더불어 가끔 우리집에 와있을 때 지인들의 방문을 목도한 엄마는 “우리 애가 성격이 못돼서 친구 한명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감격까지 했다.



여기에 병원치료라는 ‘합법적’ 탈출책까지 마련됐으니 요즘은 정말 살맛이 난다. 이제 단 한가지 남은 과제는 멀고도 먼 단추와 단춧구멍 사이가 나와 사회와의 거리를 암시하는 것만 같은 바지 허리 사이즈. 김미영 기자의 다이어트 도전 스토리라도 정독하면서 산후우울증과 출산 후 뱃살의 복잡다단한 함수관계를 풀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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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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