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바~밤~ 빠바~밤~. 아내가 베개를 두 손으로 쥐고 침대 끝에 앉았다. 영화 <록키>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자세를 취하니, 녀석이 아내한테 달려든다. 아내는 달려오는 녀석을 베개로 퉁 밀친다. 녀석은 뒤로 벌렁 나자빠지는 오버액션을 선보인다. 잘 논다. 둘은 참 잘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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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아빠와의 놀이가 아이에게 예측불허의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하지만, 우리 집은 반대다. 아이디어와 예능감을 지닌 성윤 엄마는 아들과 몸을 부대끼며 새로운 놀이를 창조해낸다. 그럼 아빠는? 그저 감탄하며 따라한다. 엄마는 ‘따라쟁이’라고 놀리지만 상관없다. 좋은 건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면 되니까. 




지난 목요일 밤, 침대 위에서 벌이던 베개 놀이도 ‘성윤엄마표 신상’이었다. 짧은 야근을 마치고 귀가한 시간이 10시20분. 성윤 엄마 말로는 이미 1시간을 침대 위에서 뒹군 탓에 목이 말라 컵을 ‘짠’하고 부딪치며 주스와 우유를 꽤 많이 마셨다고 했다. 그러고 다시 시작한 게 베개 놀이였다.




한 명은 베개로 밀치고 한 명은 계속 넘어진다. 어째 두 사람의 ‘놀이본능’이 심상치 않다.“이제 그만하고 자자”며 진압에 나섰지만 이 집안 ‘유일 카리스마’인 나의 말발이 좀체 먹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재밌게 노니 두고 볼 수밖에.




밀치고 넘어지고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족히 100번은 되는 것 같다. 가까스로 진정을 시켜 흥분된 두 사람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가는 순간...




“자기야 빨리 와봐!” 성윤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니 오 이런!

녀석의 옷이 토사물로 뒤덮여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베개, 담요, 침대시트까지 녀석이 올린 토사물 투성이였다. 사건현장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성윤 엄마의 증언. “불 끄고 2~3초 흘렀을까... 기침을 하더니 꿀럭꿀럭 소리를 내더라고. 콧물을 흘리는 줄 알고 불을 켰는데 순간 소화전이 물을 뿜듯이...”




“으이구 그러게 내가 그만하라고 했잖아. 심하게 놀더니 이게 뭐야!”

그들의 무한질주 놀이본능을 질타했지만 당장 급한 건 뒤처리였다. 아내는 녀석을 냉큼 들어 욕조로 데려갔고 나는 세탁물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세탁기에 넣기 전에 먼저 초벌빨래를 해야 했다. 음... 고사리, 우동, 키위... 녀석 제대로 씹지도 않고 많이도 먹었구나.






991356553fee007a3c6094266cdb4f1e. » 녀석은 씻은 뒤에도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기침을 했다.




뒷정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누운 자리에서 깔깔거리고 있었다.

“애가 많이 먹었다고 했으면서 장난을 그렇게 치면 어떡하나?”

“얘가 멈추질 않잖아... 아~ 성윤아, 아빠 또 엄마한테 잔소리 한다. 그냥 우리 둘이 살자.”

그러면서 또 덧붙인다. “성윤이 오늘 토할 때까지 놀았지? 잊혀지지 않을 거야. 놀 때도 끝장을 봐야 집중력이 좋아져. 크크.”




정말 미워할 수 없는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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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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