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우리 집 마룻바닥에 깔려 있는 유아용 매트를 빨았다. 욕조에 넣고 세제 풀어 빡빡 밟아줬다. 이전에 물로 씻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작심하고 빨아본 적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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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매트는 오돌토돌 가는 줄무늬에 수많은 잔구멍이 뚫려있는 게 특징이다. 그 요철 사이에 걸레질로는 제거할 수 없는 먼지들이 있을 터. 매트를 물속에서 밟으면 밟을수록 허연 세제 물은 시커멓게 변해갔고 머리카락이며 정체불명의 모래알갱이들이 수챗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낑낑 대며 헹구고 건조대에 고이 말려 바닥에 다시 까니, 뽀사시한 빛이 난다.



길이 2m80cm에 너비 1m30cm. 연두색 바탕에 무당벌레와 꽃무늬가 들어간 매트 두 장을 ㄱ자 모양으로 마루에 펴놓으면 녀석의 동선과 딱 겹친다. 가정용 우레탄 트랙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아이 낳고 장만한 수많은 물건 가운데 이 매트는 유일하게 내가 구매를 결정한 아이템이다. 장난감이며 육아용품이며 한때 잠깐 쓰이고마는 걸 아까워하는 내가 이 매트를 앞장서 구입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녀석, 우사인 볼트가 되다



생후 16개월쯤부터 다리에 힘이 붙으면서 녀석은 뛰기 시작했다. 날 추운 겨울엔 생동하는 에너지를 오롯이 집안에서 풀 수밖에 없었다. 녀석에게 집은 운동장이었다. 기분이 좋으면 마루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채 5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달음질쳤다. 날이 저물어서야 들어오는 엄마 아빠가 반갑다고 겅중겅중 뛸 때면 감동적이기는 했지만 내심 불안했다. “성윤아, 밤에는 살금살금” 하며 타일렀지만 녀석이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문제는 층간소음이었다. 우리 집은 4층. 예전에 5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시달린 적이 있기에, 그 누구보다도 층간소음이 걱정됐다. 그래서 아내는 3층 아주머니께 롤케이크·양갱 등의 선물을 사들고 가 양해를 구했다. 어머니뻘 되는 아주머니는 의외로 “별로 시끄럽지 않다”며 관대한 태도를 보여주셨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밤늦게 아이가 뛰면 침대로 데려가는 등 나름대로 소음을 줄이려 신경을 썼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아주머니 딸이 아기를 낳고 몸조리 하러 친정에 온 것이다. 그때부터 아주머니의 ‘어필’이 잦아졌다. 아주머니는 주로 성윤이의 질주가 극에 달하는 낮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셨고, 우리 부부는 그 불만을 ‘이모님’을 통해 전해 들어야 했다. 그저 죄송할 뿐이었다. 유아용 매트를 살까 생각해봤지만, 아내는 오히려 위생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반대했다. 만만치 않은 비용도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어서 폭주하는 성윤이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OO일보도 울고 갈 사실왜곡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는 그날도 올라와 이모님께 한 말씀 던져놓고 가셨다. “이 집 애 아빠가 층간소음 가지고 불만을 나타내서 5층 사람들이 이사를 갔다. 자기가 그래놓고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

이 말을 전해 듣고서는 터무니없는 왜곡에 어안이 벙벙했다. 세상에 나 때문에 5층 사람들이 이사를 갔다고? 기억을 떠올려보면, 5층에는 중년의 부부와 중학교 다니는 큰딸, 초등학교 둘째딸, 막내아들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았다. 말로 해도 안 되는 갓난쟁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쿵쾅쿵쾅’ 소음이 너무 심했다. 그래서 몇 차례 경비실에 얘기를 하다가 어느 휴일은 내가 직접 올라가서 불만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우리는 일상적으로 생활하고 있을 뿐이다. 아파트 처음 살지? 당신이 예민한 거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가? 내가 예민한 건가? 어쨌든 더 이상 말이 안 통할 것 같아 그날로 포기하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로부터 2년여 뒤에 5층 사람들이 이사를 갔는데 그게 나 때문이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제를 이대로 방치했다간 지역사회에서 매장될 것 같았다.






거금 18만원, 아깝지않은...



654e71be100d375aff7aef983b47bae0.그래서 그날로 유아용 매트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나에 대한 허위 정보가 유통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하루라도 빨리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대형 매트 2장을 구매했다. 장당 단가가 18만원. 1+1 행사로 두 장을 샀으니, 총 구매비용도 18만원이다. 



적지 않은 액수이지만, 매트는 그 값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녀석의 질주는 요즘도 계속된다. 그러나 매트를 깐 뒤에는 3층 아주머니의 어필은 없었다. 매트가 소음을 100%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수인한도’ 수준으로 낮췄으리라 생각한다. 이 좋은 걸 두고 왜 그리 마음을 졸였는지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봐도 참 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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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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