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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칠순이 되는 친정엄마는 요즘 얼마 전에 끼운 전체 틀니에 적응하시느라 고생중이다.

1남 5녀를 낳아 길러오신 험난한 세월은 엄마에게서 무엇보다 치아를 제일 먼저 앗아가 버렸다.

풍치로 오래 고생하시다가 부분 틀니를 끼우신 것이 몇 해 전인데, 그동안 남아 있던 치아들도

마저 흔들려서 이번에 전체 틀니를 하게 되셨다.

윗 이빨 하나, 아랫 이빨 세 개만 남겨 놓고 나머지 치아는 빼 버린 후에 틀니를 제작했는데

잇몸이 아무는 한 달여 동안 치아 없이 지내셔야 했다.

그 기간동안만 쓰는 임시 틀니에 드는 백만원이 아까웠던 것이다.

대부분의 치아가 사라진 모습으로 우리집에 오신 엄마의 첫 모습은 충격이었다. 참혹했다.

입술과 양 볼이 모두 입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 시골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꼬부랑 할머니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한달여 간 엄마는 죽만 드셔야 했다. 과일도 갈아야 드실 수 있었다.

그래도 마스크를 하고 우리집에 가끔 다니러 오셨는데 아이들은 할머니의 모습이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가다 윤정이가 물었다.

"엄마, 엄마도 이다음에 할머니처럼 이렇게 늙는거야?"

"그럼, 엄마도 늙겠지. 이빨도 언젠가는 빠지겠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더니

"엄마, 엄마는 늙지마, 응?" 하며 윤정이가 울듯이 내게 매달리는 것이다.


"야, 엄마도 나중에는 할머니가 되는 거야, 어떻게 안 늙냐?"

필규는 깔깔 거리며 이렇게 말해 주었지만 윤정이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웃었는데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그래..

엄마도 내 엄마는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부평 할머니도 어느새 이렇게 이빨이 다 빠진

꼬부랑 할머니가 되 버리더라. "

"엄마는 늙으면 안돼!"

"알았어... 엄마는 늙지 않을께..."

웃으며 울면서 나는 그날 그렇게 얘기하고 말았다.


필규가 이 맘때 였을까.

동화책을 읽다가 문득 "엄마, 엄마도 언젠가는 죽어요?" 묻는 것이었다.

"그럼...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

"엄마는 죽지마세요. 죽으면 안되요" 하며 갑자기 필규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 엄마가 언젠가 죽을까봐 걱정이 되는구나? 알았어. 엄마는 아주 아주 오래 살께."

"백년... 아니 200년 동안 살아야 해요. "

그래서 필규랑 200년 동안 살겠다고 약속했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리던 아이가 어느 날 문득 엄마의 나이를 의식하는 때가 온다.

동화책에서 죽는 주인공을 보거나 혹은 텔레비전에서 등장인물이 죽는 장면을 볼때

아니면 길가에 죽어 있는 작은 곤충들을 보다가 갑자기 생명이 죽는 것을 제 엄마와 연결하게 되는 것이다.

필규는 그게 네살, 다섯 살 무렵이었다.

무조건 안 죽는다고 말 할 수는 없어서 그냥 오래 오래 살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너와 아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낼 만큼 엄마는 오래 살거라고 그렇게 약속했다.

그런데 윤정이는 이빨이 다 빠져버린 참혹한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엄마인 나도

언젠가는 저런 날들이 오지 않을까... 생각이 자라버린 것이다.

엄마가 언제나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제 옆에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아이가 알아버리는 순간이란

가슴 찡하고도 뭉클할 수 밖에 없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것 같은 세계가 한 순간에 모두 흔들려

버리는 것이리라. 이제 윤정이도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 것이다.


"엄마는 할머니랑 달라. 할머니 때는 가난하고 어려워서 좋은 음식도 잘 못 먹고 이가 아파도

치료도 잘 못 받고 그래서 그래. 엄마는 매일 맛있고 좋은 음식 먹잖아. 아프면 치료도 금방 받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엄마는 아주 아주 건강하고 천천히 늙을꺼야. 할머니가 되어도

허리도 반듯하고 이빨도 튼튼한 그런 멋쟁이 할머니가 될 거라고..."


이런 말로 윤정이를 위로했지만 그 후로도 윤정이는 잠 자기 전에 이불 위에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문득 나를 말없이 오래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가

"엄마.. 엄마는 아주 아주 천천히 늙어줘" 말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어린 딸 아이의 마음에 생긴 그늘이 안스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어느새 우리 아기가

이렇게 자랐구나 고맙기도 하면서, 윤정이의 걱정이 사실은 내 걱정이기도 한 것을 깨닫고는

마음이 흔들려 버린다.


나이들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젊은 엄마에 비해서 흰 머리도 금방 생기는 것 같고

체력도 많이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된다.

주름도 벌써 자글자글 한데 이제 막내 이룸이가 두 살이다.

'이룸이가 학교 입학할 때는 나이 오십을 바라보고 있을텐데 막내 딸이 늙은 엄마를 부끄러워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든다. 운동도 많이 하고 잘 가꿔서 젊음을 오래 간직해야지...'라는 생각은 하지만

지금도 얼굴에 크림 하나 바르지 못하고 허둥거리며 하루 하루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읽은 잡지에서 늦은 나이에 딸을 입양해서 엄마가 된 연극 배우 윤석화씨가

이쁜 딸 자랑을 하면서 "이 다음에 우리 딸 때문에 나, 주름 피러 갈지도 몰라요" 하며 웃던 기사가 생각난다.

이해할 수 있다. 

딸에게 주름 많은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

어린 딸 곁에서 젊고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으로 있고 싶은 마음...


이룸이도 언젠가는 제 엄마가 젊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겠지.

처음엔 걱정하다가 나중에는 제 언니랑 엄마를 이쁘게 가꾸어 주겠다며

이런 저런 정성을 기울여 줄지도 모른다.

애들이 이렇게 어리고 이쁜데 정말 오래 오래 건강하고 젊게 살고 싶다.

할 수 있는 한 오래 오래 아이들 곁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남고 싶다.

이룸이가 조금만 더 크면 오래 중단했던 마라톤도 다시 하고 요가도 하고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어린 내 아이들 마음에 늙고 무력한 엄마의 모습은 보여주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엄마... 천천히 늙어줘"

"그래... 아주 아주 천천히 천천히 늙을께. 안 늙을수는 없지만 엄청나게 건강하고 힘 넘치는 할머니로 늙을께"

윤정이랑 이렇게 약속했다.

필규랑은 2백년까지 살겠다고 약속했듯이 말이다.


내 나이 마흔 둘...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지만 아이들은 벌써 엄마의 나이를 제 걱정속에 품기 시작했다.

가슴이 저릿하다.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나를 돌보며 살아야겠다. 아이들에게 약속한 것처럼

오래 오래 건강한 엄마로 남아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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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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