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는 꼭 할머니한테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제주도에서 부산까지 택시, 비행기, 버스, 지하철을 타고
6시간이 걸려서 할머니 집에 가는 동안 나는 신이 나서 힘이 넘쳤다.
도착하니 “왔나? 아이고, 고생했제?” 하며 할머니가 우리를 반겨주신다.
참, 변함이 없는 할머니의 사랑이
역시나, 좋다.
아이들을 풀어놓고 할머니의 밥을 먹고 할머니가 데워놓은 자리에 누워서 쉬고
수다를 떨었다.
명절 며칠 전에 가서 여유 있게 쉬고, 먹고, 집에 없는 TV도 보고 놀았다.
나와 아이들을 충분히 사랑하고 돌봐주는 할머니가 계시는 그 집은
나에게 천국이었다.
명절이 되어서 온 가족이 모여 왁자지껄 먹고, 놀고, 자고, 즐겁게 지내다가
큰산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로 돌아왔다.
갑자기 외롭다.
아이들은 다시 만난 장난감이 반가워서 신나게 노는데
나는 하나도 신이 안 난다.
할머니의 품이 그리울 뿐이다.
할머니 밥도 더 먹고 싶고
할머니랑 몸 붙이고 TV도 더 보고 싶고
“좀 누워서 쉬라.”, “더 묵으라.” 하는 잔소리 같은 챙김도 받고 싶다.
그냥 그 집에 있고 싶다.
그리운 마음 앓이를 하룻밤 하고난 다음 날
할머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을 꼬박 할머니 그림을 그렸고
두 번째 날 밤에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안정숙.
손녀 최형주가 그렸습니다.’ 라는 글을 그림 옆에 쓴 후 붓을 놓았다.
홀린 듯 그려나간 그림은
약간 살이 빠지고 미용실을 다녀온 할머니의 모습이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꽃 모양의 귀걸이를 하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파르스름한 색깔의 한복을 입었다.
우리 할머니, 예쁘다.
몇 달 전에 제주도 여행을 하고 돌아가시면서
“나중에 내 영정 사진 네가 그려조.” 라고 하셨는데
이번 그림이 영정 그림의 기초가 될 것 같다.
86세인 할머니는 “너무 오래 살면 우짤꼬, 걱정이다.” 하셨지만
그것만큼 섭섭한 이야기가 없다.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나의 천국인 할머니 집에 더 자주 가고
내 아이들에게도 나의 할머니가 얼마나 따뜻하고 멋진 사람인지 더 알게 해주어야겠다.
할머니는 내 마음의 고향.
내가 언제나 돌아가 쉴 수 있는 곳.
그런 할머니의 존재는 하늘이 나에게 준 엄청난 선물이다.
고마워요,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