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하면서 애를 데리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대단한 거야.”
지난 토요일 동료기자의 결혼식에서 만난 또 다른 동료기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랜만에 조우한 그 친구의 옆에는 44개월짜리 아들이 함께 있었다.
“애 엄마는 같이 안 왔어?” “응, 오늘 출근했어.”
그 친구의 아내는 군인이다. 현재 서울의 한 군 시설에서 헌병대장을 맡고 있다. 기자 아빠와 군인 엄마. 두 사람은 모두 퇴근이 늦어 평일에는 본가에서 아이를 맡아 키워주시고 금요일 밤에야 아이를 데리고 오는데, 업무 특성상 아내가 휴일에도 출근하는 날이 많아서 토요일은 애를 혼자 키운다고 했다. 자다 일어나서 기분이 별로라는 그 아이는 “빨리 나가자”며 아빠 손을 끌었다. “일주일에 하루 보는 건데, 내 배 채우려고 더 있을 순 없지.” 그 동료는 스프만 떠먹고 자리를 떴다.
내가 아는 기자 커플은 아이를 강원도 홍천 처가로 보냈다. 주말에야 아이를 보러 홍천으로 향한다. 회사일이 바쁠 때는 토요일 당일치기로 가서 몇 시간 잠깐 얼굴 보고 오는 경우도 있다는데 애 엄마는 아이 얼굴이 눈에 밟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만 흘린다고 했다. 일도 가정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비극적 상황이다.
그렇다고 아이를 끼고 사는 맞벌이 부부의 일상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린이집을 보냈다면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출퇴근 전쟁에 이어 제2차전을 치러야하니 말이다.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 훌륭한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것도 어디 쉬운 일인가. 아이와 살 부비며 잠이라도 함께 자는 게 감사할 일이지만 그런 소박한 행복을 누리기까지 치러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
» 아내는 일과 육아를 이렇게 병행했다.
그나마 우리 부부는 아직까지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키웠다. 연구직 엄마의 생활은 비교적 예측 가능하고, 기자 아빠는 2년 동안이나 편집부 근무를 하면서 일과 육아를 여유 있게 병행했다. 그러나 다시 취재 현장에 나가 퇴근이 늦어지자 엄마의 ‘평일 원맨쇼’가 두드러졌고 엄마를 향한 녀석의 ‘애착’도 더욱 커졌다. 요즘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온 엄마와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 아내는 외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바람에 퇴근해서도 추가 작업을 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 집에 와서도 일을 해야 하는데 녀석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극한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아내는 고육책도 구사했다.
컴퓨터 앞에 녀석과 나란히 앉은 뒤 한글 작업창과 뽀로로 파일 창을 동시에 열어놓고 작업을 이어갔던 것. 지난 토요일에 아내는 회의를 마치고 밤 12시에 들어온 뒤 작업을 하다가 새벽 5시에야 잠이 들었단다. 오전 8시에 일어나 엄마를 깨우려는 녀석을 거실로 끌고 나왔다. 녀석과 함께 밥을 먹고 나니 그제야 아내가 일어났다. 몇 시간 더 작업을 해야 한다기에 녀석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유아용 안장에 녀석을 태우고 자전거로 집 앞 목감천변을 질주하자 녀석은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거워했다. 아내의 재택근무를 위해 사실상 집 밖으로 쫓겨난 우리 부자는 그래도 신나게 배회했다. 아내의 이 ‘가욋일’이 끝나면 우리 세 식구가 신나는 주말을 함께 즐길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