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0caba16ff44ec3e9eb4a8bf14c25bd2. » 녀석을 처음 안아봤던 그때.



나는 조카가 무려 다섯이다. 큰조카는 내일모레 고등학생이 될 정도로 장성했다. 첫 조카를 본 지 그만큼 오래 됐지만 나는 총각 시절 ‘어린것들’을 돌본 적이 없다. 그저 녀석들의 번데기 같은 고추나 들춰보며 희희덕거렸을 뿐...

육아 경험이 전무했기에 아빠가 되고 나서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하루하루가 가슴 떨리는 첫 경험의 연속이랄까.



녀석이 태어나고 산후조리원에서 내 아이를 처음으로 안아본 날. 그 조그만 핏덩이를 안아 올리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형제들은 “저 애아빠 팔 뻣뻣해지는 것 좀 보라”며 놀려댔다. 어디 그뿐인가. 30년 인생에서 ‘남의 똥’을 치우는 것도 처음이었다. “촌수를 정확히 따지는 게 똥 냄새”라는 어른들 말씀대로 나는 녀석의 기저귀를 능숙하게 처리했다. 녀석의 뒤를 닦아주며 사람의 ‘똥꼬’를 보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육아의 기술 중에 ‘어부바’는 난공불락으로 느껴졌다. 보통 할머니들이 포대기를 이용해서 아기들을 업어주는데 난 그걸 보는 것만으로 불안한 상상을 하곤 했다. ‘저러다 아이가 뒤로 벌렁 나자빠지면 어쩌나...’ 조금 더 큰 아이를 포대기도 없이 업는 광경은 더 아찔했다.  



그러나 아빠가 된 이상 ‘어부바’는 엄연한 통과의례였다. 지난 토요일 저녁, 아내는 연구 관련 주말 회의를 나갔고 녀석과 나는 또 단둘이 남았다. 밤 10시30분이 넘어 안방 형광등을 끄려고 하자 녀석은 씩 웃으며 협탁의 실내등을 제 손으로 켰다. 녀석은 희미한 실내등 아래서 자동차 책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나는 녀석이 제 풀에 지쳐 잠이 오도록 아무 말도 않고 누워서 책장만 반복적으로 넘겨주었지만, 녀석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지친 나는 결국 “5분만 보고 아빠가 실내등도 끌게”라며 최후통첩을 하고 5분 뒤에 실내등까지 꺼버렸다.



물론 예상대로 녀석의 울음보가 터졌다. 나는 녀석을 다독였지만 녀석은 어둠 속에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몸을 일으키면 녀석은 보통 내 품으로 달려들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등을 돌리란다. 업어달라는 얘기였다. 얼떨결에 난 ‘맨손으로 아이 업기’에 도전하게 됐다. 일단 평소에 봐왔던 대로 녀석을 침대 위에서 업어 올렸다. 오른손 바닥으로 녀석의 엉덩이를 받쳤고 왼손으로는 오른 손목을 잡았다. 나는 자세를 잡고 곧바로 자장가를 불렀다. 녀석의 팔다리에서 힘이 빠지고 축 처지면 그건 잠이 드는 것이리라.



그런데 20분이 지났건만 녀석은 여전히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엉거주춤하게 굽힌 허리는 괜찮았지만 손목이 아파왔다. 왼손과 오른손의 자리를 바꿨지만 더 이상 버티는 건 무리였다. 여전히 깨어있는 녀석을 결국 침대에 내려놓았다. 요즘 들어 부쩍 기저귀를 거부하던 녀석의 맨 엉덩이를 받치고 있던 손에선 된장냄새가 났다. 녀석은 처음 느껴보는 아빠의 등판이 그리웠는지 다시 업어달라고 졸랐다. 이때다 싶어 난 협상카드를 던졌다. “기저귀 차면 아빠가 다시 업어줄게.” 녀석은 기저귀를 차는 구속감보다 업혀있는 포근함이 더 좋았는지 순순히 기저귀를 찼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업었다 내려놓으니 녀석은 금세 잠이 들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아이를 제대로 업어본 경험이었다. 아이를 업어보니 손목에 엄청난 무리가 가는 것을 느꼈다. 우리 어머니들은 어떻게 우리를 업어서 키울 수 있었을까. 그것도 모자라 손자들까지 챙겨야 하는 우리 할머니들은 또 어떤가... 당장은 ‘어부바’의 맛을 알아버린 녀석이 손목 안 좋은 제 엄마를 괴롭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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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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