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를 쓴다고요? 그럼, 육아가 어려워요, 육아일기가 어려워요?”
최근 술자리에서 만난 한 검사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육아일기 쓰는 게 더 어렵죠.”
» 작년 이맘때쯤 짱구춤을 추는 듯한 모습.
첫 육아일기(기자, 아빠가 되다)를 쓴 날이 2010년 4월26일. 그러니까 벌써 1년 전이다. ‘베이비트리’ 기획 단계에 양선아 선배한테서 육아일기를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처음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사양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두 가지 이유였다. 틈틈이 써놓은 육아일기가 장성한 내 아이에게 큰 선물이 될 거라는 개인적인 동기, 그리고 <한겨레>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기꺼이 가욋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
그렇게 해서 베이비트리의 성공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다. 초반 홍보 부족을 느끼며 기자 명함 뒷면에 베이비트리 홍보 디자인을 집어넣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취재원을 만나 명함을 건넬 때마다 “저, 여기에 육아일기 쓰고 있습니다. 많이 봐주세요”라는 구전 홍보도 잊지 않았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요즘은 바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먼저 알고 육아일기 얘기를 꺼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 전에 한 부장검사는 “우연히 육아일기 봤는데 재밌던데요. 공감이 많이 가더라”고 했고, 지난해 가을 회사 후배의 결혼식에서는 “성윤이 아빠시죠? 육아일기 잘 보고 있어요. 제 남편한테도 많이 가르쳐주세요”라는 회사 선배 부인의 인사도 들었다.
물론 곳곳에서 ‘견제(?)’도 들어온다. “김 기자 육아일기, 우리 집사람이 볼까봐 두렵더라.”(최아무개 변호사) “선배! 기자 아빠들의 공적이 된 거 알죠?”(노아무개 기자).
이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나의 육아 자체보다는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육아일기가 더욱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하는 육아란, 정말 아빠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인 것 같은데, ‘육아일기’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훨씬 과대포장 되고 특별하게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더더욱 드는 생각. “솔직하게 꾸밈없이 쓰자.”
억지로 쥐어짜지 않고 솔직담백한 육아일기를 쓰려면 충실한 취재는 기본이다. 평소에 녀석과 자주 부딪치고 세심하게 관찰해야 쓸 거리가 생긴다. 그런데 최근엔 퇴근이 늦다보니 평일에 녀석을 볼 날이 그리 많지 않다. 주말 하루 녀석과 운동장에서 축구한 일로 육아일기를 쓸 수는 없는 일. 그렇다면 돌파구는 없는 건인가...
그동안 녀석의 동태를 파악하는 데는 고급 취재원인 아내의 도움이 컸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내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바쁜 일상을 핑계로 대화를 회피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육아일기를 쓰는 아빠가 왜 그렇게 EQ가 부족하냐”는 아내의 지적이 뼈아프다.
‘짬짬육아’ 1년을 조촐하게 자축하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자 한다. 아빠가 되는 일, 남편이 되는 일, 가장이 되는 일,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결코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