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3.jpg

 

계기는 '플란다스의 개'였다. 크고 멋지고 무엇보다 착한 개에 대한 동경말이다.

'렛쉬'도 근사하고, '오수의 개'도 감동스럽고, 일본의 충견 '하치'도 대단하고

'백구'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래, 역시 개는 커야했다.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면 크고 멋진 개를 기르리라.

 

2009년 12월, 기적처럼 크고 넓은 마당이 딸린 2층집을 얻게 되었을때

우리 부부는 무엇보다 먼저 개를 수소문했다.

남편이 다니고 있는 건설회사엔 지방에 수많은 현장사무소들이 있었는데

큰 개를 기르고 있는 곳이 많았다. 그 중에 한 곳에서 새끼개를 얻었다.

누렇게 생긴 큰 개였다. 아빠가 사자개라서 작은 송아지만큼 크는 개라고 했다.

 

아기 해치.jpg

 

개는 너무 이뻤다. 정말 사자새끼 한 마리 얻은 기분 이었다.

부푼 마음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지만 '해치'라고 이름 지은 이 개는

마당있는 집에 와서 무럭무럭 자랐다.

 

해치 2.jpg

 

처음부터 두 마리를 얻어 같이 키웠다. 다른 한 마리는 알래스카 맬라뮤트 계열의 검은 개였다.

이름은 '해태'라고 지었다. 둘 다 수컷이었고 둘 다 쑥쑥 자랐다.

그러다가 5개월만에 '해태'가 급성장염으로 하늘나라로 갔을때 우리가족의 슬픔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윗 밭에 묻어주고 아이들과 한달을 울며 지냈다.

혼자 남아 쓸쓸해진 '해치'를 위해 아랫집에 사는 진돗개 '진순이'와 짝짓기를 해 주고 다시 새끼 개

한마리를 얻었다. 아이들은 그 개에게 다시 '해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기 해태.jpg

 

아기 해태도 정말 귀여웠다. 아이들은 죽은 해태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아끼며 정을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작고 귀여웠던 해태2세는 1년 만에 엄청난 대형견으로 자라났다.

그러면서 아빠인 해치와 서열경쟁을 하느라 집안이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해태.jpg

 

얼마전 내 생일날, 사건이 벌어졌다.

윗밭으로 올라가는 나무에 메어 놓았던 해태의 줄이 끊어진 것이다.

해태는 바로 밑에 묶어둔 해치에게 덤벼 들었고 두 마리 수컷은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다 자란 대형견 두 마리가 싸우는 모습은 처참하고 무서웠다.

아이들과 외출을 하러 마당에 나왔던 나는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두 마리 개를 말리러

뛰어 들었다가 몸무림치는 개에게 치여 나동그러졌다.

눈이 찢어지고 입가에서 피가 흐르고 두 마리 개는  피범벅을 하며 싸우고 있는데

정말이지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날 것 같았다. 소리를 질러가며 두 마리를

떼어 놓으려고 애를 썼지만 흥분한 두 마리는 주인의 말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들도 없고, 어린 아이들은 겁에 질려 차 안에 들어가 울고 있고

그러다 떨어져 나온 해태는 피를 흘리며 끊어진 개줄을 질질 끌며 마을로 내려가는게 아닌가.

그 모습 그대로 마을로 내려갔다가는 대형 사고가 날 것이 뻔 했다.

골목에서 해태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가거나 쓰러질 것이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해태의 줄을 붙잡았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다시 윗밭으로

데려가 나무에 묶어 두었다.

남편이 없는 집에서 이런 일을 해결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책임감이 그 일을

가능하게 했다. 개를 묶어 놓고 내 몸을 보니 다리는 다 까져 있고 온통 멍 투성이었다.

남편은 당장 해태를 없애자고 난리였지만 죽은 해태 대신 데려와 새끼때부터 키운

해태는 이미 아이들에게 가족과 같았다. 나도 해태를 많이 좋아해서

없앤다는 것은 생각할 수 도 없었다.

 

지난 주말에 남편이 모처럼 해치를 데리고 마을 한바퀴를 돌며 운동을 시켜 주었다.

그때 해태는 산책 시켜주지 못한 것이 맘에 걸려 오늘 아침 나는 애들과 걸어서

가는 등교길에 해태와 산책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생각만 했어야 했는데 나는 무모하게도 산책줄로 해태를 옮겼다.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산책을 하게 된 해태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비탈길에서 중심을 잃고 한 쪽 손목이 개줄에 끼인체로

시멘트로 된 언덕길을 끌려갔다. 그러다가 줄을 놓쳤다.

정신이 번쩍 나서 달려가 개줄을 붙잡았지만 넘치는 해태의 힘은 막무가내였다.

그 상태로 뛰며 날뛰는 개와 200여미터를 가다가 결국 포기했다.

애들 셋만 보내고 다시 집으로 개를 데려오는 동안 땀을 족히 한 말은 흘렸을 것이다.

 

간신히 다시 줄에 묶어 놓고 집에 들어와 몸을 살펴보니 팔꿈치가 다 까져 있고

두 무릎에 피멍이 들어 있는데다 온 몸이 얻어 맞은 것 처럼 쑤시고 아팠다.

커다랗고 하얀 멋진 개와 세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낭만적인 등교길의 환상은

온몸에 타박상만 남기고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해태2.jpg

 

해태는 이제 30킬로에 가까운  대형견이 되어 버렸다. 힘이 너무 세서

자주 산책을 못 시키니 스트레스가 많아 어쩌다 한 번 산책을 하게 되면

이런 사단이 난다.

남편은 새벽에 나가 한밤중에 들어오고 주말에도 밭일이 많아 바쁜데

늘 어린 애들 셋을 데리고 종종거리고 지내느라 바쁜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크고 힘 센 개가 되어 버렸다.

처음에 개를 들일땐 이런 날들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저 크고 멋진 개에 대한 동경만 가지고 엇비슷하게 자라는

수컷 두 마리를 함께 기르기 시작한것도 문제였다.

힘이 넘치는 두 마리 수컷개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해치도 해태도 주인을 너무나 아끼고 좋아하는데 다만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할 뿐인데 그 힘을 적절히 빼주고 관리해주기엔

내가 너무나 역부족이니 말이다.

 

손바닥에 밴드를 붙이고 팔꿈치와 무릎에 연고를 바르며 나는

깊은 고민 없이 낭만적인 생각만으로 덜컥 크게 자라는 수컷 개

두 마리를 들인 나 자신을 탓하고 있다.

해치는 힘이 좋아서 힘든 일도 척척 한다는데 파트라슈처럼

우유 수레를 끌게 할 수 도 없으니 어쩌나. 사람들은 농담처럼

밭을 갈게 하면 잘 할거라고 하지만 그 훈견은 누가 시키냔 말이다.

도스트옙스키는 명작 '죄와 벌'을 썼다지만 나는

'개와 벌'을 쓰고 있나보다.

개들의 특성과 성향을 잘 알지도 못하고 덥석 키우기 시작한

죄로 지금 톡톡히 벌을 받는 기분이랄까.

 

내가 다가가면 쓰다듬어 달라고 곁에 와서 안기고

(큰 발로 내 가슴팍을 팍 치는 형식으로 ㅠㅠ) 주인을 너무나 좋아하는

이 두 마리 개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집 판 '개와 벌'은 어쩐지 장편으로 이어질 듯 한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해치야, 해태야.. 너희들과 사이좋게 오래 오래 살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개들은 말도 잘 듣던데 너희들은 도무지

맘대로만 하고 싶어하니... 정말 어쩌면 좋으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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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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