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을 빨리고 싶은 건 왜 그럴까?

젖을 찾지 않은지 반년이 넘어간다. 그렇게 틈만 나면 물고 빨고 주물럭거리던 젖을 어떻게 하루 아침에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는 건지 참 신기하다. 젖을 떼고 나니 후련한 것도 있지만, 가끔은 허전한 생각이 든다. 뽕으로 한껏 부풀렸다가 뽕을 뺀 것마냥 매가리 없이 푹 꺼진 가슴 때문일까?  탯줄에 이어 젖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한 결합체였던 우리가 물리적으로,심리적으로 점점 분리되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 알수 없는 허전함은 완전한 휴식과 해방의 '최종병기'가 사라졌기 때문인 거 같다. 가끔 그게 그리워서 젖을 물리고 싶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좀 쉬고 싶거나 머리 속이 복잡할 땐 젖을 물려 본다. 피곤한데 아기가 떼를 쓰거나 잠투정을 부려도 혹시나 해서 젖을 물려본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젖을 안 물었으면 안 물었지, 이를 앙 다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건 뭐람? 저 필요할 땐 그렇게 매달리다니, 나 필요할 땐 협조하지 않는 나쁜 아기!

깨물고 싶은 건 왜 그럴까?

요즘 우리 아이는 한참 말을 배우는 중이다. 갑자기 새로운 단어가 툭 튀어나오면 나도 놀라고 저도 놀란다. 역시 먹성  좋은 유전자답게 먹는 것부터 배운다. ;, ;, ;, 사;과, 포;도 등등 할 수 있는 말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언제부턴가 2음절 단어에서 3음절 단어로 넘어가더니 지난주부터는 할아부를 할아버~지로 발음하면서 당당히 4음절 시대를 열었다. 내친 김에 단어에서 문장으로 넘어갔다.아저씨 (한참 뜸 들이다) 갔다.’  주술관계가 완전한 문장이다. 이렇게 한참 말을 배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고 신통하다. 바디랭귀지에서 버벌랭귀지시대를 여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너무나 즐겁다. 얼마나 귀여운가? 그런데,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꼭 안고, 여기저기 꽉 깨물어주는 게 문제다. 가끔은 혼자서 1인 多역하며 잘 놀고 있는 아이가 너무 신통해서 얼굴도 깨물고, 손도 깨물고, 팔도 깨물고, 가끔은 엉덩이까지 깨문다. 분명히 '아파'라고 말하는데도 계속 깨물다가 결국 아이를 울게 만든다. 가만 잘 노는 애를 깨물어서 울게 만드는 내 심리는 도대체 뭘까? 나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맞는 아이, 그냥 두고 싶은 건 왜 그럴까?

아이들은 정말 천의 얼굴을 가졌다. 표정관리를 하는 어른들과 달리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웃을 때 예쁜 건 너무나 당연하다. 반대로 징징 울고 떼 쓰면 당연히 밉상이다. 그런데 가끔 우는 얼굴이 예쁠 때가 있다. 가끔 우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울릴 때도 있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가족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소율이 친구 예음이는 나이는 같지만, 개월 수로는 10개월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그런데 우리딸이 예음이한테 맞는 신세다.ㅋㅋ 우리 모르게 소율이가 밉상짓을 했는지, 예음이가 소율이 얼굴을 때리자, 고개를 툭 떨구고, 눈을 질끈 감고 눈물 한두 방울을 뚝! 떨어뜨리고 있는 거다. 그 광경을 본 예음이 엄마, 아빠가 달려와 펄쩍 뛰면서 소율이와 나에게 무척 미안해했고, 예음이를 나무랐다. 그런데, 나는 속상하기는커녕 그게 너무 재밌는 거다. 오히려 한참 흥미진진하게 보던 드라마를 못 보게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끝을 못 본 이 아쉬운 느낌은 뭐지?  엉엉 우는 대신, 한두 방울 눈물로 절제된 슬픔을 표현하는 그 표정이 정말 너무 예술(가관)인 거다. 그렇게 우는 소율이의 심정은 뭘까? 친구하고 싶던 예음이한테 맞는 기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친구하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드러난 표정일까? 그 이후에도 소율이는 몇 번을 더 얻어 맞았다(물론 얼굴을 툭툭 친 거지 심각할 정도는 아니다). 벌써부터 얻어맞는다고 생각했는지 소율이 아빠는 조금 속상한가 보던데 나는 속상하기는커녕 그 둘 사이에 벌어진 일이 너무 궁금하다. 말 못하는 예음이와 소율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아이들 사이에도 분명 관계라는 게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예음이도 괜히 그러는 것만은 아닐 거다. 뭔가 있을 거다. 그저 말을 못하니 손이 올라가는 수 밖에...어쨌거나 그건 아이들 일이니까 아이들에게 맡겨두고,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으련다.ㅋㅋ 아...촉촉히 젖은 눈과 슬픈 표정, 절제된 눈물 한두 방울,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다시 보려면, 예음이와 소율이 싸움이라도 붙여야 하나?ㅋㅋ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변태같은 이 심리를...ㅋㅋㅋ

 사진_1~3.JPG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태그
첨부
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이메일 : tomato_@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slowlife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3904/663/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수
36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쭈쭈 없는 아빠의 설움 imagefile 홍창욱 2011-11-07 55619
364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폴라로이드카메라 imagefile [1] 윤아저씨 2011-11-03 14889
363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 엄마는 베이스, 아들은 드럼 imagefile [6] 전병희 2011-11-03 16270
362 [김연희의 태평육아] 왜 하의실종 종결자가 되었나? imagefile [3] 김연희 2011-11-02 59478
36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열 여덟명 시댁 식구, 1박 2일 손님 치르기 imagefile 신순화 2011-11-01 19179
360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육아의 적들...답이 어디에? imagefile [4] 홍창욱 2011-11-01 19393
359 [김연희의 태평육아] 1과 2 사이, 고냐 스톱이냐? imagefile [4] 김연희 2011-10-28 18235
358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나만좋아해 imagefile [2] 윤아저씨 2011-10-27 14220
357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 베이스맘이 전하는 보육기관 알아보기 팁 imagefile [10] 전병희 2011-10-27 16518
35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홉살 아들, 돈벌이에 나서다! imagefile 신순화 2011-10-25 17247
35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엄마표 돌잔치? 이제 대세는 아빠표 돌잔치다 imagefile [2] 홍창욱 2011-10-25 54885
35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도끼질 하는 남편 imagefile [12] 신순화 2011-10-21 133391
» [김연희의 태평육아] 어머...나는 변태인가? imagefile [3] 김연희 2011-10-20 75820
352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 나는 이래서 엄마표 전담 육아 한다 imagefile [6] 전병희 2011-10-20 16983
351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그냥그런거지 imagefile [2] 윤아저씨 2011-10-19 14362
350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젖떼고 첫 맥주, 나보고 정신 나갔다고? imagefile [7] 양선아 2011-10-19 59717
349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뽀뇨가 커서 아빠를 원망하진 않을까? imagefile 홍창욱 2011-10-18 29294
348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 안녕하세요.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를 소개합니다. imagefile [6] 전병희 2011-10-13 22560
347 [김연희의 태평육아] 대충 키우는 ‘태평육아’, 대충 잘 큰다 imagefile [9] 김연희 2011-10-13 70128
34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전업육아 다이어리를 열며 imagefile [8] 홍창욱 2011-10-12 76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