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페이스북에서 양선아 선배의 글을 보게 됐다.

양 선배 딸, 봄이(가명)가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솜씨가 제법 좋았다.

“아빠 선배 딸인데 너랑 같은 1학년이야” 이러면서 녀석에게 그 사진을 보여줬다.

 

민지.jpg » 양 선배! 이거 올려도 괜찮쥬?

 

녀석은 자기가 그림을 정말 못 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녀석은 나 어릴 적보다, 아니 어른인 나보다 그림실력이 좋다)

봄이의 그림을 보고 녀석이 감탄했다.

“대단하다. 그런데 얘 취미가 뭐래?”

녀석의 물음을 바로 댓글로 옮겼다. 얼마 안 가 양 선배의 답글이 달렸다.

“성윤이랑 한 번 미팅해야 하나? ㅋㅋ 야구 소년 만나서 야구 얘기 좀 들으면 좋아할라나?

인라인 스케이트, 동생과 놀기, 그림 그리고 편지 쓰기, 침대 공연이 취미라고 전해줘.”

녀석에게 바로 보여주며 “만나볼까?”라고 물으니 반응이 이랬다.

“아직은... 취미가 맞지 않아.”

쿨럭. 역사적인 소개팅은 이렇게 무산됐다.

 

되짚어보니 베이비트리 생생육아의 주인공인 봄이, 성윤이, 또만이(윤은숙 전 기자의 아들 가명)는 모두 2008년생 쥐띠 동갑내기다. 녀석과 또만이는 5년 전에 조우한 바 있다.

당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우리 회사 아무개 여자후배. 일명 ‘또만이 엄마’로 불리는데, 또만이는 녀석과 생일이 비슷했다. 고만고만 커가는 얘기가 재밌어서 둘이 한 번 만나면 어떨까 서로 궁금해했다. 그러던 차에 사내커플의 결혼식장에서 성윤이와 또만이가 조우했다. 긴장된 순간... 또만이는 성큼성큼 걸어와 성윤이가 물고있는 공갈 젖꼭지를 확 낚아챘고 성윤이는 앙~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http://babytree.hani.co.kr/?mid=story&category=376362&page=4&document_srl=32165)

또만이는 최근에 다음과 같은 천진난만한 방학시간표를 제작해

소셜네트워크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만이 계획표.jpg » 은숙이! 이거 올려도 괜찮지?

 

공갈 젖꼭지 갖고 신경전을 벌이던, 뽀로로 같던 녀석들이 이제 개똥철학 같은 제 생각을 표현한다. 참 많이 컸다. 

한 직장에서 기자 선후배로 만나 각자 결혼하고 부모가 됐다.

비슷한 역경을 헤치며 아이들을 이만큼 키웠으리라. 

하나도 아닌 두 아이의 엄마로 굳세게 살아가고 있는 양 선배와 윤 후배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뱃속에서부터 한겨레의 역사를 목격한 이 아이들의 만남이 궁금해진다. 

봄이와 성윤이의 소개팅은 성사되리라 본다. 또만이와는 재회할 것이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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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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