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와 함께 사라진 딸기농장 체험의 꿈


148958485823_20170316.JPG » 딸기를 따서 상자에 담은 큰아이. 내년 봄이면 다 같이 갈 수 있을까. 육아는 ‘유예’의 연속이다. 박수진


일요일 오전 11시, 집안이 고요해졌다. 나와 둘째아이만 남았다. 하루 전, 남편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놀러 왔다. 생일파티를 마치고 다음날 다 함께 ‘딸기농장 체험’을 하기로 했다. 날이 따뜻하면 나도 5개월 된 둘째를 아기띠에 매고 함께 가리라 마음먹으니 설렌다. 딸기 따기 체험, 나도 꼭 하고 싶었다.


막상 딸기농장에 가려고 하니 여러 가지가 걸렸다. 이틀 전부터 줄줄 흐르는 둘째의 콧물이 심해지진 않을까? 비닐하우스에서 갑자기 대변을 보면 기저귀는 어디서 갈지? 아이 넷, 어른 넷이 출발 준비를 하니 시간은 자꾸 지연됐고 수유 시간이 됐다. 이미 겉옷까지 챙겨 입은 유아 3명의 발을 다시 30여 분 묶어두기는 난감했다. 결국 나는 가지 않는 쪽을 택했다. 봄기운을 느끼며 딸기 따기, 나도 꼭 하고 싶었는데.


나와 함께 남겨진 것은 둘째만이 아니었다. 아수라장이 된 집도 함께였다. 5살 2명, 4살 1명이 놀다 떠난 거실을 보고 있으니 한숨만 나왔다. 부엌에도 정리해야 할 잔여물들이 있었고, 거실과 방바닥은 끈끈했다.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현장을 보존하고 싶었지만 네댓 시간을 참는 게 더 고역이었다. 결국 둘째를 업고 청소기를 밀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요즘 주말이면 나와 둘째를 남겨두고 첫째와 함께 나간다. 급기야 주말 ‘문센’(문화센터)을 끊었다. “다행히 아빠가 한 명 더 있더라고.” 남편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주말마다 남겨져 가사노동이 산재한 현장을 보존할 것인가, 그냥 내가 하고 말 것인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됐다.


두 아이 육아 초반에 남편 등을 밖으로 떠민 건 나였다. 수유 간격이 짧고 잠이 부족한 시기에 큰아이가 집에 있으면 수유하고 나서도 자거나 쉴 수 없었다. 큰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게 도움이 됐다. 그러나 둘째가 5개월이 지나니 큰아이와 남편이 같이 있는 게 더 수월하다. 둘째는 큰아이가 노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웃으며 시간을 꽤 보낸다. 큰아이가 나가면 내가 계속 놀아줘야 한다. 아직 앉지 못하고 이제 컸다고 누워 있는 건 싫어하니 주로 옆에 앉혀놓고 같이 놀거나 업어준다. 오른쪽 어깨부터 팔목까지 저릿저릿하다.


두 아이 육아에서 가사와 육아 분담은 어떠해야 하는가. 주말마다 집안일과 둘째를 남겨두고 큰아이만 데리고 홀랑 밖으로 나가는 것은 탈출이자 도피다. 무궁무진한 육아 업무에서 ‘나가 놀기’만 맡으면 어쩌겠다는 말인가. 설거지를 할 때마다 반찬이 남은 접시는 치우지 않고 남겨두거나 ‘이건 어떻게 할까’ 묻는 건 내 마음의 평화를 박탈하는 업무상 배임이다. 가끔 냉장고를 치우면서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버리는 음식이 많아?’라고 묻는 건 명백한 책임 회피다.


밖으로 등 떠민 사람이 나였으므로 기회를 봐서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나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둘째 돌보기에 더 좋다. 계속 둘째랑만 집에 있는 게 답답하고.” 일주일 뒤 어느 저녁, 남편은 또 첫째를 데리고 나갔다. 돌아온 뒤 물었다. “둘만 있는 게 더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남편이 뜨끔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 참….” 매뉴얼이라도 만들어 안겨줘야 하는 걸까.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이 글은 한겨레21 제1153호(2017.03.20)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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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서른여덟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 육아휴직 중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감정적으로 휙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 일도, 육아도 그렇게 해서 온 식구가 고생하는 건 아닌지 또 고민하는 ‘갈짓자 인생’. 두 아이의 엄마로서, 좋은 기자로서 나를 잃지 않고 행복하고 조화롭게 사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뭘까, 그 길을 찾는 것이 지금의 숙제다.
이메일 :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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