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까꿍, 했어!”

아이의 말에 돌아보니 스마트폰 액정에 뭐라고 글씨가 떴다 사라지는 게 보인다. 카톡 알림이다. ‘까똑하는 그 알림음이 아이 귀엔 까꿍이라고 들리는지, 아이는 매번 카톡 알림이 올 때마다 까꿍, 하고 따라 한다.

 

지난 2월 초, 급하게 스마트폰을 마련했다. 사실 그 동안 우리는 스마트폰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우리 부부는 연애 할 때부터 이런 쪽으로 쿵짝이 잘 맞는 사람들이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잘 사지 않고, 뭐든 한 번 사면 오래오래 쓰는 성격들이라 스마트폰이 있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스마트폰을 쓰게 될 경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소비를 최소화하는 게 몸에 배어 있는 우리에겐 그리 어렵거나 유별난 일도 아니었다. 미국 와서 처음 1년 반 정도는 핸드폰도 없이 살았다. 그러다 아이가 KT를 갖고 태어나 뜻밖의 병원행이 잦아지면서 핸드폰은 꼭 있어야겠단 생각에 선불제 휴대폰을 하나 마련했지만, 그나마도 전화/문자 외에 다른 기능이 없는 2G폰이었다. 최근까지도 굳이 스마트폰이 필요하단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올 초, 갑자기 스마트폰이 있어야겠단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연초에 아버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무언가 불길한 기운을 느낀 것이 시작이었다. 한국 떠나온 지 4년 반, 출산 후에도 한 번도 한국에 가 본 적이 없는 나는 엄마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세히 알 길이 없는 채로 육아에 열중해 왔다. 전화를 종종 하긴 해도 워낙 짧게, 안부 확인만 하고 끊는 형편이라 더더욱 그랬다. 사실 이건 어느 정도는 내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한국을 떠나오면서 물리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서적으로도 부모님과 거리를 두려고 애 썼다. 오랜 세월 서로 쌓아 올린 원망과 미움의 끝자락에서 두 분은 나의 결혼과 출국 이후 결국 떨어져 사는 길을 택했고, 나는 그저 두 분이 따로 떨어져서라도 좀 덜 불행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스마트폰 없는 우리의 생활은 그런 무심함을 가능하게 했다.

 

그렇게 살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부모님 연세가 어느덧 예순 언저리다. 두분 다 아직 몸 쓰는 일을 하시는지라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드실 텐데 그 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아닐까 싶어졌다. 어딘지 불길하고 안타까운 기분에, 급히 스마트폰을 구했다. 지인이 안 쓰는 공기계 하나를 받아 카톡을 설치하고, 엄마 아버지에게 연락을 취했다. 전화로는 워낙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잘 안 하시는 분들인지라, 카톡을 통해 문자 메시지로 자주 이야기를 좀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귀성이다 귀경이다 북적이던 구정 연휴에, 나는 4년 반 만에 영상 통화 속에 나타난 엄마,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안 본 사이 많이 늙어버린 내 엄마, 아빠는 비록 지친 얼굴이었지만 화면 속 내 아이를 보며 허허 웃었고, 짧은 영상 통화 끝에 나는 어딘지 서글퍼졌다. 주변의 유학생 가족들을 보면 카톡 때문에 원격으로 들어오는 시댁/친정의 간섭에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동안 너무 무심하게 살았나보다 싶었다.

 

뒤늦게 입성한 카톡의 세계. 그 덕분에 내 삶은 조금 더 생기 있어진 것 같다. 말로는 잘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문자로 조금씩이나마 하게 되면서 서로의 삶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고, 그 덕분에 서로에게 조금쯤은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것 같다. 육아를 하다 보면 내 부모의 젊은 날과 나의 어린 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이전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던 그 옛날의 경험들을 엄마가 된 나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곤 했다. 그렇게 조금씩 내 부모와 나, 그 때의 우리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기를 3, 이제 조금씩 치유의 과정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여전히 할 수 있는 말보단 못 하는 말이 더 많고, 드러낼 수 있는 일보단 숨기는 게 나을 일들이 좀 더 많은 상황에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전만큼, 특히 엄마가 되기 이전만큼 내 입을 앙다물고 내 상처만을 상처라 여기고 살진 않게 되는 것 같다


이 치유의 과정에, 어쩐지 이 카톡이 한 몫 단단히 해 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고마워, 까똑, 아니, ‘까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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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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