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91748_P_0.JPG » 연합뉴스 사진 제공


지난 금요일은 '블랙 프라이데이'였다. 

땡스기빙(추수감사절)을 시작으로 성탄절, 그리고 새해까지 긴 축제 분위기가 시작되는 이 곳에서는 땡스기빙 다음 날인 금요일에 각종 쇼핑몰에서 일제히 할인 행사를 여는데, 이날을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부른다. 이 날, 싼 값에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은 새벽부터 쇼핑몰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앞다투어 들어가 물건 사냥에 나선다. 물론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심지어 요즘은 한국에서도 이 '블랙프라이데이'를 겨냥한 해외 직구, 일명 '블프 직구'라는 게 유행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올해 이 곳 블랙 프라이데이는 여느 때와는 조금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블랙 프라이데이 도어 버스터'며 '블프 직구'를 위해 분주하던 바로 그 날, 

미주리 주 퍼거슨을 중심으로 미 전국  각지에서 블랙 프라이데이 보이콧을 겸한 집회가 이어졌다. 

이 보이콧 움직임의 중심에는 지난 8월에 발생한 흑인 청년 마이크 브라운의 사망 사건이 있다. 


지난 8월, 퍼거슨에서 한 십대 흑인이 경찰의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 청년은 총기도 무엇도 없는 비무장 상태였음에도 경찰과 몸싸움 과정에서 총에 여러 번 맞아 사살되었다. 언제나처럼, 이번 사건 역시 결국은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것이었다. 불과 며칠 뒤면 대학 신입생이 될 한 아이가 대낮 길거리 한복판에서 처참하게 죽어갔지만, 

그를 죽인 백인 경찰은 경찰과 당국의 철저한 보호 속에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 백인 경찰에 대해 불기소 처분이 최종적으로 내려지고 나자 퍼거슨 전체가, 아니 전국 곳곳이 분노로 들끓었다. 때는 마침 땡스기빙 주간이었고, 분노한 사람들은 이 큰 명절을 앞두고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이어지던 성난 사람들의 시위는 금요일, 블랙 프라이데이에 절정에 이르러 '브라운 프라이데이' '블랙 아웃(정전, 침묵 등을 의미) 프라이데이' 등의 이름으로 거리를 메웠다. 전국의 대도시 대형 쇼핑몰 근처에서는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 거부 운동이 벌어졌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흑인도 사람이다"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아직도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난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지는 경우보다 조용히 묻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여전히 교육, 경제, 사회 각 부문에서 '약자'이기 때문이다. 

제법 크게 알려지는 사건이라 하더라도 늘 결과는 똑같다. 

피해자인 흑인은 처참하게,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목숨을 잃고, 가해자인 백인은 처벌받지 않는다.

약자를 보호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약자를 쏘아 죽이는 곳. 

흑인이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쓰고 어슬렁거렸다는 이유로, 

흑인이 백인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는 이유로, 

흑인 자폐아가 백인 경찰을 보고 도망치듯 뛰어갔다는 이유로 

그렇게 무참히 총을 맞고 죽어가는 곳. 

무고한 사람을 그렇게 죽여놓고도 처벌은 커녕 보호받는 백인 경찰들이 큰소리치며 사는 곳. 

그곳이 한국이 그렇게 좋아하는 '선진국' 미국이다. 


그런데, 


이런 미국 사회의 모습이 과연 미국에만 있는 것일까?

한국에는 저런 인종 문제가 없으니까, 

한국에는 저런 총기 사고 문제가 없으니까, 

우리는 그럴 일 없어, 하고 외신 뉴스 보며 혀만 차고 있어도 되는 걸까?


한국 경찰이 약자를 보호하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많이 겪어 봤으니 

지금 여기서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태도,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태도이다.   


이번 퍼거슨 사태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결국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여전히 '특별한 이유 없이 총을 맞아 죽어도 되는' 존재이며 

백인 경찰은 '별 이유 없이 사람을 죽여도 되는'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미국 사회에서는 사람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서도 법의 보호를 받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흑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히 살아 있으며, 

대다수의 미국 시민들이 그것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죽하면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에 쇼핑 보이콧을 제안한 일부 단체들의 취지가 

"흑인도 사람이고, 일을 하며, 돈을 번다. 흑인에게도 구매력이 있다. 

그러니 흑인 인구가 단결해 불매 운동을 벌이면 나라 경제에 타격이 온다" 였을까. 

우리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존재 자체가 아닌 '경제력'으로 입증해야 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뼈 아프게 꼬집는 대목이다.  


한국 사회에서 미국의 흑인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아파트 경비원, 

원전 취수구 작업에 투입된 잠수사, 

계약직 콜센터 상담원, 

월세를 못 내 미안하다던 세 모녀, 

쫓겨날 처지에 있던 기초생활수급자 노인, 

외국인 노동자, 

시설에서 학대받던 장애인, 

노숙인, 빈민, 노점상인..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 없이 목숨을 잃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일을 하다 사고로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폭력으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이들 모두가 사회경제적 약자라는 사실, 

그래서 법의 보호를 받기는 커녕 도리어 법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소식을 매일같이 듣는 대다수의 우리들은

나의 경제력을 입증하기 위해 동분서주, 나의 존재가치를 선전하는 한편으로 다른 이들의 목숨에는 무관심하다. 


나는 내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 

그것도 언제 어떻게 달라질 지 모르는 병을 갖고 태어난 뒤, 

다른 모든 이들의 목숨 하나 하나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특히 내 아이 케이티가 태어난 바로 그 날 미국에서는 20여명의 아이들이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나는 늘 그 아이들에게 빚을 진 느낌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날 이후로 억울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면 이전보다 한층 더 깊은 슬픔과 고통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는 열심히 생각한다. 

지금 여기, 한 아이의 엄마로서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세계를 조금이나마 더 나은 방향으로 돌려 볼 수 있을까 하고.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더불어 살 수 있을까 하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엄마'들 만큼은 다른 이들의 목숨에 무관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엄마들이 주로 찾는 공간에 이런 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어쩌면 우리 '엄마'들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생명을 품어 낳고 키운 경험이 가져다 주는 어떤 힘,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치에 대해 어떤 경이로움을 느껴본 경험에서 비롯된 깨달음.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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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lyson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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