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에 와 있는 한국 유학생 가족의 많은 수가 이 지역 한인교회에 다니며 한인들끼리만 어울린다. 3년째 여기 살면서 내가 주로 나가는 여러 모임에 한인들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나의 '탈민족주의적(?)' '개인주의적' 성향은 아이를 낳은 뒤에도 여전해서,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한인 교회/한인 커뮤니티를 찾게 된다'는 한인 엄마들과는 마주칠 일이 잘 생기지 않는다. 


지난 3월, 아이 정기검진을 위해 소아과에 갔다가 게시판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알게 되어 가입한 우리 동네 '맘스클럽'에도 한국인은 나밖에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여기 사는 동안 이 클럽에 한국인이 들어올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사실은 그래서 가입했다. 어릴 적부터 뭔가 은근한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편하고 익숙하고 재미있기만 한 것보단 낯설고 새롭고 어렵고 신기한 쪽에 더 끌리는 것 같다. 


'맘스클럽'은 미 전역, 동네 곳곳에 있는 일종의 '서포트 그룹' 중 하나다. (서포트 그룹은 보통 같은 종류의 신체적/정신적/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를 '서포트' 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집단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맘스클럽은 '전업맘을 위한, 전업맘에 의한 서포트 그룹'인 셈이다. 맘스클럽 전체 대표 웹사이트에 명시된 이 클럽의 신념 중 하나는 여성들이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소외/고립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이 클럽은 '아이들에게 친구 만들어주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업맘으로서 집 안에만, 육아에만 매몰되기 쉬운 여성들이 숨통을 틔울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물론 전업맘들은 어딜 나가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아이들끼리의 '서포트 그룹'이 만들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모임에 처음 나갔던 날 우리 아이는 자신과 생년월일, 그리고 출생 병원이 똑같은 친구를 만났다!) 


연회비 2-30불 (2만 5천~3만 5천원)을 내고 동네 맘스클럽게 가입을 하면, 임원단이 매달 보내주는 소식지와 월간 계획표를 받아 볼 수 있다. 회원들은 이 계획표를 보고 마음에 드는 활동을 골라 여건 닿는 대로 모임에 참여하면 된다. 


Moms Club.jpg


위는 지난달 말에 받은 7월 계획표. 6월 30일과 7월 8일로 잡혀 있는 'Walking Club'은 동네 숲에 아이들 데리고 나와 유모차 끌며 간단히 하이킹을 하는 날이고, 14일에 있는 Monthly Social은 동네 교회의 공간을 빌려 한 쪽에는 아이들 장난감 펼쳐 놓고 놀게 하고 그 옆에서 엄마들끼리 커피 한 잔 하며 수다 떠는 날이다. 24일은 동네 아이스크림 전문점(콜*스톤)의 협조를 얻어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제조 관련 설명을 들려주고 샘플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날, 25일은 동네 실내 체육관에 모여 노는 날이다. 


이런 식으로 매달 일정표가 짜여져 배포되는데, 대부분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여름엔 물놀이가 많이 예정되어 있어서 어느 날은 누구네 집 뒤뜰에 이동식 풀장(공기 넣어서 펼쳐 놓고 호스로 물 대서 노는) 펼쳐 놓고 놀고, 또 다른 날은 동네 야외 풀장에 모여 왁자지껄하게 놀기도 한다. 하지만 맘스클럽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아이들 다 떼어놓고 노는 '여자들의 밤' 행사.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있는 이 행사엔 남편/친구/시터/옆집 아줌마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든 아이를 맡겨놓고 엄마들끼리만 모인다. 7월엔 야외풀장에서 만나 물 속에서 슬렁슬렁 걸어다니며 관절운동(!) 하는 Water Walk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요 몇 주 이 곳 기온이 갑자기 곤두박질쳐서 취소됐다. 6월엔 동네 아트센터 같은 데 모여서 와인 한 잔 마시며 그림 한장씩 그려보는 우아한(!) 행사도 했다. 어떤 때는 동네 도예 센터에서 도자기/접시도 만들고, 어떤 날은 누구네 집에 모여서 카드 게임도 한다. 


하지만 이 엄마들, 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서포트 그룹'을 지향하는 만큼,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기도 한다. 회원 중 누가 임신/출산을 하면 회원들이 돌아가며 경황 없을 그 집 식구들의 식사를 한끼 씩 책임져주기도 하고, 누가 이사 준비를 하면 몇몇이 조를 짜서 그 집에 가 짐 싸는 걸 돕거나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한다. 어떤 때는 마음 맞는 엄마들 몇이 모여 아픈 아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기부 행사를 열기도 하고, 겨울 어느 날엔 다 같이 모여 한국에서도 많이들 하는 '신생아 모자 뜨기 캠페인'에 참여하고자 뜨개질을 열심히 하는 날도 있다고 한다. 


아직 참여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데다 차가 없이는 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아쉬울 때가 많지만, 여기 사는 동안 꾸준히 이 클럽에 참여해 볼 생각이다. 나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그리고 다른 엄마, 다른 아이, 다른 가족을 위해서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모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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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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