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은
엄마들의 모임이 잦다.
아이들 학교 엄마들 모임, 동네 엄마들 모임, 생협 엄마들 모임 등등
올해는 그 어떤 조직에서도 임원을 맡지 않아
비교적 조용히 지나가는 편이지만,
그래도 엄마된 지 벌써 13년째 맞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이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잡히는 약속들로 달력이 빼곡하다.
그 중에서도,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생협 엄마들과의 크리스마스 모임은
바쁜 시간을 내서 달려간 보람을 가장 많이 느끼게 된 자리였다.
다 만들어진 음식이나 차를 돈을 지불하고 먹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계획하고 준비해, 스스로 만들어 먹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서도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움직여 함께 만든 음식으로
한 식탁에 모인 엄마들의 뒷모습을 보노라면,
내가 이런 구성원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올해 마지막 모임은 각자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식탁을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살림 경력이 오래된 선배 엄마들이 테이블보나 식기, 소품들을 가져와 보여주었다.
가만히 있어도 바쁜 12월은 엄마들에게 부담스러운 달일수도 있는데
그래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소품들을 볼 때면
어쩐지 설레고 들뜨게 된다.
해마다 보고 겪는 일인데도 또 그렇게 된다.
식탁 차림이 집집마다 다른 분위기여서 재밌었고
아이들이 크는 동안 매년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쌓인
선배 엄마들의 살림 지혜와 정보들에
눈이 반짝, 귀가 번쩍^^
쉽고도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이렇게 다양하게 연출될 수 있다니.
잡지나 비싼 요리강좌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참 많이 알게 된 시간이었다.
이날의 회비는 겨우 3천원 정도였는데, 식재료는 생협에서 보조받고
준비물은 회원 각자가 나눠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함께 조금씩 보태는 지혜에는 돈보다 마음이 더 필요한 법이다.
이날의 메뉴는 중국식 샐러드, 그리고 미트로프.
함께 만들면 이렇게 비일상적인 요리들도 별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이날, 내가 맡은 요리는 한국 불고기.
우리에겐 흔한 음식이지만, 일본 엄마들에겐 늘 감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우리에게 스시나 돈카츠가 그렇듯이.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이런 날, 케잌이 빠질 수 없다.
일본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맛나고 이쁜 디저트를 실컷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생협 케잌은 시판되는 것보다 맛이 덜할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좋은 재료로 첨가물을 되도록 적게 넣고 만든 일본 생협의 케잌은 정말 신선하다.
먹고 나서도 느끼한 뒷맛이 없고, 위에 부담도 적다.
이런 음식들이 좀 더 대중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생협 엄마들은 내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래동안 함께 활동했던 친구에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게 되었다.
작은 상자 하나 덕분에 하루종일 설레고 뿌듯했던 하루.
아, 아이들이 선물 받을 때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던 하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 살면서는 단 한번의 크리스마스도 외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챙겨야하는 아이들과 식구들이 있었고, 그들과 관계지어진 크고작은 인연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전후를 보내느라 해마다 이맘때는 항상 시끌법쩍하게 보내게 된다.
너무 정신없고 바쁜 이맘때가 부담스러운 적도 많았는데
이제 막내까지 어느 정도 크고, 그 시간들을 뒤돌아보니
엄마로 지낸 13년 동안의 크리스마스가 수많은 추억들로
내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드는 거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맺은 수많은 인연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건,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상치 않은 선물 상자를 나에게 안겨준 친구처럼,
평소에 늘 고맙고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마음을 나누고 전하는 일.
이번 크리스마스가 가기 전에 꼭 해 보고 싶다.
외롭지 않은 엄마들의 크리스마스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