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 누나에 이어 <꽃보다 청춘>이 방영된다고 한다.
유희열, 이적, 윤상이 함께 페루를 여행한다고 하는데
이 세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벌써 가슴이 두근댄다.
(김동률은 왜 섭외하지 못했을까,
아쉽지만 그마저 예능에 나오는 걸 보고싶지 않은 마음도 드는 건.. 나만 그런가^^)
한국의 현재 마흔을 전후한 세대들에게
이들의 대중음악이 끼친 영향이 적다고만 할 수 있을까?
토이의 <그럴 때마다>를 들으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늦게 잠에서 깨어 이유없이 괜히 서글퍼질 때
란 가사는, 내가 20대 시절 숱하게 보낸 어느 일요일 오후의 감성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고 있어 '어떻게 이런 순간의 느낌을 놓치지 않고 썼지??'
하고 신기해하며 듣고 또 듣던 노래였다.
이적과 김동률이 함께 한 <그땐 그랬지>의 가사는 또 어떤가.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혀지더군
참 세상이란 정답이 없더군
사는 건 하루하루가 연습이더군
40대가 되어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런 가사를
이미 20대에 노래하던 그들이다.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이 그렇듯 급변하는 분위기 속에서
마흔 즈음이 되어서도 변함없는 감성과 인간적인 매력과 깊이를 더해가는
그들이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
여행은 중년이든 청춘이든,
모두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되돌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부디 그들이 <꽃보다 청춘>이란 여행을 통해, 더 무르익은 깊이와 감동을, 그리고 위로를
같은 세대인 우리에게 선물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유희열이 언젠가 그의 음악방송에서
자기가 하는 음악이 대중성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는 후배에게 이런 조언을 하는 걸 들었다.
"대중성이 없다는 얘기는, '서툴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중과 노래로 많은 대화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너의 이야기에 울고웃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음악은 결국 내가 하는 이야기이니까."
아! 육아에 대해서도 이렇게 조언을 해주는 선배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랑스 육아나 북유럽 육아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의 얘기 말고,
긴장감과 경쟁심을 가슴깊이 품고 시작해야 하는 군대식 육아 말고,
"육아는 결국 내가 하는 이야기"라며 마음을 다독이고 진정시켜 주는 그런
육아계의 유희열이 있다면.
20대도 30대도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여겼는데
40대에 들어서고 보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몸과 마음의 극심한 변화와 함께, 자주 육아와 일상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곤 하는데
사춘기를 다시 겪는 것 같다.
나의 노력과 희생으로 아이들이 빛나게 자라는 순간을 지켜보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어떤 공허함같은 것이 떠나질 않는다.
이미 40대 중반에 들어선 남편도 촘촘한 일상의 임무들을 묵묵히 수행하며 사는듯 보이지만,
내가 느끼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이런 감정을 비슷하게 겪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게 그 말로만 듣던.. 갱년기인가?
미용실에서 읽던 주부잡지에 나오는 줄만 알았던 단어에
내가 해당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
나는 아직 토이의 소박한 감성이 좋고, 김동률의 목소리와 가사에 취하던 그 시절에서
겨우 몇 발자국 걸어온 것 뿐인데 ..
마흔은, 늦었다고 하기엔 모든게 너무 충만한 나이다.
젊은 시절의 감성이 사라진 게 아니라,
어릴 때는 몰랐던 수많은 새로운 감성과 경험들이 더해져 넘칠 듯 출렁이는 나이다.
감독과 출연자 모두가 마흔 언저리에 있는 <꽃보다 청춘>팀들이
이번 페루 여행을 통해 40대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과 여유를 보여줬음 좋겠다.
힘겨운 시대를 함께 살아온 같은 세대인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고
그런 이야기가 담긴 여행으로 위로를 받으며, 곧 시작될 긴 여름방학을 잘 보내고 싶다.
다만 한가지. 90년대부터 지난 20여년동안 한국사회의 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그들이 모두 남자라는 사실이
부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한 건, 나만 그런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