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스페인 여행을 갔다.
아내가 스페인 여행을 갔다. 정확히 말하면 5월 8일 스페인 여행을 갔다가 오늘(19일) 돌아온다. 11박 12일의 짧지 않은 일정이었다. 신혼 때 결혼 10주년이 되면 다시 유럽여행을 가자고 둘이서 약속했다.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을 파리와 마드리드로 갔다.) 그 때는 10년 후 아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물론 가족여행도 다녀 올 수 있지만, 만 세 살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탈 자신이 없었다. 내 처지도 사무실을 길게 비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처형이 현재 스페인에서 유학 중이다. 아내는 작년 12월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 첫째 윤슬이가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고, 아내는 몸조리도 할 겸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윤슬이도 돌보고 겸사겸사 병휴직에 이어 육아휴직을 했다. 휴직 중이라 직장에 얽매이지 않는 상황이고, 처형이 현재 스페인이 있다 보니 아내는 무척이나 스페인에 가고 싶어 했다. 나는 아내의 바람에 동의했다. 신혼 초 약속한 결혼 10주년 기념여행은 아내 혼자만의 여행이 됐다.
5월 7일 밤부터 지금까지 아내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돌봤다. 남자 셋만의 시간. 사실 아내가 여행을 가기도 전에 남자 셋 만의 시간이 무척이나 힘들 거 같아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내가 작년 연말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하느라 남자 셋 만의 시간을 이미 가져본 적이 있었다. 그 때도 힘들었지만, 역시 이번에도 쉽지 않았다.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 들 때까지 쉴 틈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눈 뜨자 말자부터 정신없었다. 아이들 밥 먹이고, 학교와 어린이집 갈 준비를 하고, 나는 나대로 출근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출근을 해서는 바로 업무의 시작. 윤슬이 돌봄교실이 5시까지 해서, 사무실에서는 4시30분에는 집으로 나서야 했다. 2주 동안 그랬다. 일반 직장이었으면 가능하지 않았거나, 엄청난 눈치를 봐야했을 것. 그래도 내가 일하는 곳이 사장이 없는 노동조합인지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이해를 해줬다. 무척이나 미안했고 고마웠다.
뿐만 아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인 우리 사무실 조직국장은 자진해서 이틀이나 우리 집에 와서 육아도우미를 해줬다. 이 총각은 제주에서 페미니스트 학습 모임을 주도해서 꾸리는 신기한 사람. 여성의 처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남자들이 브라자도 하고, 생리대도 차 본다면서 육아도우미를 자처했다. 아이들은 이미 이 총각 삼춘(제주에서는 삼촌을 삼촌이라 부른다.)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좋아했다. 삼춘의 출현에 흥분한 아이들은 이 총각을 물고 뜯고 빨았다. 결국 이 총각이 아끼는 남방을 아이들이 무는 바람에 찢어지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다. 이 총각의 희생 덕분에 이틀은 육아와 가사를 동시에 해야 하는 힘듬에서 벗어났다. 집도 청소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요일에는 텃밭 모임이 있었다. 4월 말에 심은 쌈야채가 어느새 풍성하게 자랐다. 이날 역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이모가 우리 남자 셋을 집으로 초대해줬고, 삼겹살 파티를 했다. 점심까지 푸짐하게 먹고, 이런 저런 놀이를 하느라 그 집에 오후 4시까지 있었다. 아이들은 저녁까지 있을 기세였다. 그 분도 일요일 하루를 몬딱(모두의 제주말) 우리를 위해 쓰게 할 수 없는 노릇이라,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달래 집으로 데려왔다.
무척 고되다 싶을 때, 삼춘이나 이모가 구원투수가 되어줬다. 나머지는 어떻게 보냈냐고. 그래도 여기는 아름다운 섬 제주 아닌가. 동네 오름을 오르고, 포구를 가고, 근처 5분 거리의 해수욕장 가고, 집 앞 해변길도 걸었다. 집 앞 해변길에서 해거름 지는 걸 보고 늦은 저녁을 집에서 먹었더니, 시장이 반찬이라고 아이 둘다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기도 했다. 동네 오름을 올랐을 때 윤슬이는 바다와 한라산이 같이 보이는 멋진 풍경에 “제주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어”냐고 감탄을 했다. 오름에 올라서는 동네 하루방(할아버지) 두 분을 만나기도 했다. 아이들이 오름 정상에 있는 벚나무 열매를 먹고 싶어 했다. 나는 이것을 먹어도 되는 건지 몰라 망설이는데, 하루방께서 자기 어렸을 적에 벚낭(나무를 제주말로 낭이라 부른다.) 열매를 따먹었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따먹었는데, 아직 익지 않아서 무척이나 시었다. 셋 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입에 넣은 열매를 퉤,퉤 하면서 뱉어냈지만, 그것마저도 재미있었다. 하루방이 물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오름에 올라왔냐고. 어린 아이 둘이 오름 정상에 올라와 있으니 궁금했던 모양. 첫째 윤슬이는 이제 여덟살이라 자기 발로 왠만한 오름을 올라간다. 아직 만 세 살도 안 된 은유는 내가 업고 올라가야 한다. 처음에 은유를 업고 오름에 올랐을 때는 군대에서 완전군장을 하고 행군을 하던 때가 생각났지만, 이번에는 그럭저럭 할 만 했다. 내려 갈 때는 아이 둘이서 장난을 친다고 내리막길을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내려갔다.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됐다.
"해 가까이서 사진찍자"는 말에 아이들이 해를 향해 뛰고 있다.
포구에 가서는 바나나 우유를 하나 씩 물고 낚시하는 삼춘들 구경을 한참 했다. 잠시 바라만 볼려고 간 해수욕장은 본격적인 물놀이로 번졌다. 돌 틈에 있는 깅(제주말로 게)이도 잡고 놀다보니 어느 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바다 건너로 저무는 해거름이 너무 예뻤다. 바다로 떨어지는 해와 아이들을 같이 사진에 담고 싶어서 아이들을 불렀다. “해 가까이로 와. 사진 찍께” 그러자 아이들이 해가 있는 바다 쪽으로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아이들이 왜 저러나 싶었는데. “해 가까이로 와”라는 말을 아이들은 해가 있는 쪽으로 가라는 소리로 이해했다.
윤슬이 초등학교 공개수업도 있었다. 윤슬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공개수업을 무려 세 시간이나 한다. 한 시간을 하면 아이들이 연기를 한다고. 세 시간 쯤하면 날 것 그대로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었다. 공개수업을 보면서 윤슬이가 초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윤슬이는 공개수업 하기 전 날, 나에게 “학교에서 공부하는게 좀 힘들어”라고 말했다. 아직 한글을 모르는 윤슬이는 수업시간에 역시나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윤슬이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 중에 친구가 있다. 공개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윤슬이가 아직 한글을 몰라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친구가 윤슬이 담임선생님이랑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데 “윤슬이가 영리한 아이라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더라”고 알려줬다. 자기 아이도 한글을 모른 채로 학교에 갔는데 1학기가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고. 그래도 자기 아이 때는 1학기때부터 받아쓰기를 했는데, 올해는 교과과정이 바뀌어 받아쓰기를 안 하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들으니 좀 위로가 됐다. 생각도 정리됐다. 그 동안 집에서 공부를 그다지 안 시켰는데 이제 좀 열심히 가르쳐야 하나라는 생각을 한 게 사실. 그런데 학교에서도 공부하느라 피곤한데 집에서까지 닦달하면 오히려 안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입학식 때 담임선생님도 한 말이 생각났다. “늦게 한글을 배운다고, 늦게 셈을 알게 된다고, 아이들을 재촉하지 마세요. 아이들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 다릅니다.”
참, 아내가 여행을 가고 첫 출근 날 일이 늦게 마쳤다. 돌봄교실이 끝나는 5시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에게 내가 갈 때까지 아이를 데f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5시30분쯤 교무실에 갔더니 친구는 윤슬이에게 한라봉을 먹이고 있었다. 윤슬이는 귤을 무척 좋아하나 한라봉은 시다고 안 좋아한다. 하지만 선생님이 주는 거라 잘 받아먹고 있었다. 남자 셋이 이렇게 주위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2주를 잘 보냈다.
짧게 쓸려고 한 글이 쓰다 보니 무척이나 길어졌다. 아내는 이제 2시간 후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6시간 후면 제주로 온다.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정도. 물론 솔직하게 말하면 2주간의 독박육아도 끝난다는 사실이 무척 좋다. 하지만 막상 남자 셋 만의 시간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무척 아쉽다. 언제 평일에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이랑 해변길이랑 오름이랑 포구랑 해수욕장을 다닐 수 있을까. 2주가 힘든 시간이기도 했지만,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은 평일에 이렇게 보내기도 힘든 것도 사실. 나는 아내에게 스페인 여행을 선물했지만, 아내는 평일에 남자 셋만의 다시 보내기 힘든 시간을 선물한 셈. 아이들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를 해볼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난다. 막상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 아내가 첫째 육아휴직을 하고 직장에 복귀할 쯤 혼자 3박 4일 제주도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 여행에서 아내는 제주도에서 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현실이 됐다. 우리가족이 스페인으로 가서 살지는 않겠지만, 여행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과 지혜는 다시 우리 생활을 바꾸거나,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윤택하게 만들거라고 생각한다. 참 그리고 둘째 은유가 좀 더 크면 꼭 스페인으로 가족여행을 떠날테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