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밭에서 따 온 사과들이 온 집안에 굴러다니는 요즘.

동네 친구들에게 떡돌리듯이 몇 개씩 나눠주고도 너무 많아

오늘은 사과케잌을 만들어 봤어요.

일단, 커피랑 한 조각 먹고 하루를 시작^^

 

얼마 전에 자주 놀러가는 블러그에서

<EBS다큐, 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정확한 제목인지 모르겠지만..)

를 소개해 둔 글을 보고 너무 공감이 가서

저도 한마디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씁니다.

 

외국어교육은

육아이론이 그런 것처럼

수많은 이론과 방법론이 넘쳐나지요.

특히 아이가 이중언어환경에 노출되면

자연스럽게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는 인식이 일반적인데

저도 국제결혼을 하면서

내가 낳는 아이들은 한국어와 일본어 둘 다 잘하겠구나 -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을 키워보니, <이중언어환경>에 대한 많은 부분이 환상일 뿐

현실과는 무척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엄마와 아빠의 모국어 두 가지 모두 자연스럽게 말하고 이해하는 아이 -

이중언어 환경에서 나고 자란 아이라면 당연할 것 같지만

실제는 이렇습니다.

일단, 엄마와 아빠의 양육시간비율이 가장 중요해요.

두 언어에 다 골고루 노출되려면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비율이 비슷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고,

아빠와 함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도 아빠가 질적, 양적인 면에서 얼마나 풍부한 언어를

구사하는가에 따라서도 차이가 많이 나죠. (저희 남편은 사람과 말하는 걸 무척 즐기고 좋아하는 편인데도 아이들이랑 놀 때는 너무 정해진 말만 해서 저한테 늘 핀잔을 듣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성격에 따라

언어습득이나 표현능력은 너무 차이가 많습니다.

충분히 알아들으면서도 표현은 안 하는 아이도 있고

잘 알든 모르든 일단 말로 뱉어놓고 보는 아이도 있고.

이런 다양한 아이들의 성격을 배려하지 않은 언어교육은

실패확율이 거의 100%고, 실패로만 끝나면 다행인데

잘 하지 못했던 언어에 대한 열등감이나 혐오감까지 형성될수도..

언어는 그만큼 자신감과 연관이 아주 크거든요.

예전에 동방신기(해체되기 전)가 일본에서 한참 활동할 때

처음 TV에 나가던 시절, "출연자들이 다들 웃으면서 농담할 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면서도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게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하더군요.

한국에서는 그들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소개되곤 하는데

물론, 잘 하죠.. 열심히 하구요.. 그래도 일본어로 자연스럽게 말하면서도 스스로 뭔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된다고 느껴지는지 답답해하는 느낌이 저는 보이더군요.

 

그만큼, 외국어는 어렵습니다..

그냥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닌 뭔가가 있죠..

그런 고비를 매번 넘기면서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자신감이 늘게 되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한다는 거죠.

인내심과 끊임없이 그 언어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사람들 앞에서 몇 번 실수하거나 창피를 당했다고 느끼게 되면

그게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고, 자존감에 상처를 받게 되는 심리적 문제까지 생기기도 하지요.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그라들지 않는 조기영어교육의 붐은

아이들 자존감의 문제- 가 제일 큰 걱정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언어에 대한 즐거움과 호기심을 키워야 하는 시기에 열등감부터 가지게 되지는 않을지.

예전에 비해 지금은 한국어의 위상이 많이 높아진 시대인데

한류스타들도 일본어배우기에 애를 쓰기보다 오히려  수준높은 한국어를 우아하고 멋있게

구사하는 게 더 인기를 끌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해요.

통역 역할을 맡을 사람은 무수하게 널렸으니까요.

 

그래서 저의 결론은,,

1. 최소한 유아기만큼은(가능하면 초등학교 시기까지도)

    모국어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 수 있어야 한다.

2. 탄탄한 모국어(제1언어)의 기반을 가지고

    외국어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3. 외국어 공부의 경험은 결국 자신의 모국어를 다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다시, 저희집 이야기로 돌아오면

지금 초등3학년인 큰아이를 키우면서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은 결과,

아이들이 나고 자란 곳의 언어, 제1언어가 되는 일본어를 충분히 숙달한 다음

한국어나 영어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중언어환경에서 나고 자란 만큼 당연히 두 개 언어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부모의 욕심이 아닐지요.. 또 남들에게 그렇게 보여지고 싶어하는 과시욕같은 것도

있겠지요. 그런데 아주 똑똑하고 특별한 아이이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평범합니다.^^ 우리가 그런 것처럼요.

좀 더 자라서 호기심을 가지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전에

어렵고 힘든 외국어에 질려버린다면 그것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죠..

 

저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자면

처음엔 낯선 일본어로 고생도 했지만(주로 마음고생이죠^^)

이젠 발음에 기름칠?도 많이 되었고 역시 외국어는 재밌네요.. 그래도 일본어도 처음엔 쉬운 것

같지만  일본인 스스로로도 일본어가 어렵다는 할 정도니.. 언어가 다 그런가봐요.

발음이나 말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역시 원어민들에게 가장 설득력있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기 의사를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의 내용'입니다.

이건 결국, 모국어 실력에서 파생되는 능력이거든요.

저는 일본 산 지 이제 12년째지만

40년 넘게 살고있는 남편과도 말싸움에서 이겨요 ㅋ

한참 싸우는데,  남편이 대꾸를 안 하고 멍- 하니 있더군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와... 일본어 너무 잘한다... "

 

이런 실력으로 시어머니와 신경전이 생길 때도 저는 절대 말로는 지지 않는답니다.^^

모국어 실력이 워낙 월등^^하다보니 그게 외국어를 구사할 때도 자연스럽게 자신감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논리적으로 앞뒤 설명을 정확하게 하면 일본인들은 대체적으로 수긍을 하는 편이죠.

 

아무튼, 저는 유아기와 초등 시기에 영어교육에 투자할 돈을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에 쓰자는 주의입니다.

큰아이는 지금도 학원을 다니지 않지만, 유아기에도 수영외에는 학원을 안 다녔는데

그 대신 한 달에 5만원-10만원 정도 형편이 되는 대로 5,6년동안 모으니(따로 통장을 만들었죠)

제법 큰 돈이 되더군요.

그 돈으로 가족끼리 둘째를 낳기 전에 프랑스를 다녀왔지요.

큰아이는 두고두고 그때 여행이야기를 지금도 합니다.

한국어도 어눌하고 영어는 학교수업에서 배우는 게 다지만, 세계 여러나라에 대한 관심만큼은

대단해요. 중요한 건 그런 관심을 열등감으로 벌써 물들일 필요는 없다는 거,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그런 확신이 본능적으로 느껴져요. 이것도 육아본능?^^

 

아무튼 외국어공부뿐 아니라 모든 학습의 기초는

자연에서 배우고 느끼는 영감, 호기심이 아닐까요.

<<도토리를 줍느라 1시간째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

 

되도록 자주 자연과 만나고 감성을 많이 키우는 것이

외국어에 대한 민감성을 키우는 바탕이 된다고 믿습니다.

조기영어교육에 투자할 비용으로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이 더 효과가 높지 않을까.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베낭여행비용으로 남겨두는 것.

저는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봐도 그 방법이 젤인 것 같은데.

일본어공부도 더 깊이하고 싶고 영어도 새롭게 배우고 싶지만

저는 요즘 다시 국어사전을 틈틈히 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한국어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네요.

베이비트리에서 한글 자판을 맘껏 두드리며 쓸 수 있다는 것도 기뻐요.

육아에 대한 하소연이나 남편, 시어머니 흉을 외국어로 써야 한다면 어떨까요?

조기외국어교육이 아이들에겐 그런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다같이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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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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