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노벨 의학상에 일본의 야마나카 교수가 선정되었습니다.

그의 연구 성과 뿐 아니라 인간적인 성실함이나 가정적인 면도 많이 알려져서

일본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죠.

노벨상 수상 소식도 집안 청소를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나요^^

2010년 미국에서 과학분야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은 1137명,

일본인은 235명으로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일본에서 들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공부하는 방법이나 습관이 다르듯이

나라에 따라서도 각 과목을 가르치는 교육방법이 참 다르다르는 걸

아이를 일본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많이 느낍니다.

한국에서는 과학 교과에 해당하는 과목을

일본에선 초등 1,2학년 때 <생활>과목으로

3학년부터는 <이과>과목으로 배우게 되는데

오늘은 이 수업 이야기를 좀 할까 하구요.

큰아이가 초등학교입학과 함께 2학년 언니들에게 작은 선물봉투를 받아왔습니다.

편지와 함께 꽃씨 몇 알이 들어있었죠.

이 꽃씨로 4-5월 생활 수업 시간에 식물 공부를 시작하는데

각자 자기 이름이 적힌 화분에 흙을 담고 씨를 뿌리고 날마다 물을 주면서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관찰학습을 해요.

 

 

 

1학년 때는 나팔꽃으로 시작하는데 줄기가 많이 뻗어나가니 지지대를 받쳐서

작은 공간에서도 많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는데

이런 화분은 크기와 모양이 조금 다를 뿐, 땅값이 비싸고 좁은 도쿄에선 에도 시대부터

유행하던 문화라네요. 마당을 가지기 힘들었던 서민들이 꽃을 즐기기 위한.

 

1학년들 교실이 늘어선 1층 창문앞을 지날 때면

이 나팔꽃들의 화분이 쭈욱 늘어서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꽃을 많이 피우거나 적게 피우거나 아무렇게 뻗은 가지거나 가지런하게 잘 유도해준 모습이거나..

그 화분의 주인인 아이들의 각자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아 귀엽더라구요.

숙제로 관찰 그림도 그리고 성장 일기도 쓰기 위해

방학 동안은 집에 가져 와서 기르는데

자기 스스로 뭔가를 만들거나 키우는 걸 좋아하는 큰아이는

꽃이 자라는 걸 무척 신기해하며 돌봤는데

 

 

큰아이 못지않게 아직 아기였던 둘째도 무척 신기해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고 잎이 시들고 꽃이 진 자리에는

갈색 봉오리가 맺히고 씨앗을 맺는데

그걸 잘 모아두었다가, 다음해에 2학년이 되면 새로 입학하는 동생들에게

편지와 함께 봉투에 넣어 선물로 주는 순환 교육?이...

남편도 몇 십 년 전에 이와 똑같은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학년 시기에는 <생활>교과라고 부르는 것이 과학과 일상을 따로 분리하지 않거나

식물관찰로 끝나지 않고, 국어나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공부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특이한데 ...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학교 통신문에 씨앗을 다 거두고 나면, 가지도 잘 말려서 모아두라고 하더군요.

미술 시간에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기 위해.

 

<<꽃씨를 다 거두고 난 다음의 나팔꽃 가지>>

 

동그랗게 만 가지에 털실, 도토리, 솔방울, 리본 등을 재료로

미술 시간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들어왔더군요.

그 시기가 딱 12월이라 한동안 집안에 걸어두고 아이들이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한 해동안의 수업이 다른 교과와 자연스럽게 잘 이어져 있고

계절과도 잘 조화되어 있는 듯...

나팔꽃을 키우고 난 화분은, 겨울에 다시 튜울립 구근을 심고 2학년이 가까워지는

늦겨울에서 초봄에 튜울립의 성장을 관찰하며 구근 식물에 대해 공부.

2학년이 되면서는 튜울립이 끝난 화분에

채소를 또 키우기 시작하는데, 몇 가지 채소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모종을 골라 심고

1년동안 관찰, 수확을 하지요.

3학년이면 봉선화, 해바라기 등을 심는데 이 꽃들은 키워서 학교 주변의 마을의 화단에

옮겨심는 일을 해요. 과학과 사회수업이 연관되어 우리 마을의 환경에 대해서 배우게 되구요

고학년이 되면 커다란 양동이같은 곳에 벼를 키운다고 들었습니다.

가을에 아이들이 키운 쌀로 같이 밥도 지어먹는다네요.

 

아이가 배운 이과 수업 덕을 가장 많이 본 건 다름아닌 저였습니다^^

둘째가 어려 바깥 외출을 자주 하기 어려웠던 저는 재미삼아

아이가 키워 거둔 씨앗으로 베란다에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신기하고 재밌을 수가 없더라구요...

 

 

<<베란다에서 키운 방울토마토. 알알이 맺힌게 이쁜 보석같아요>>

 

일본은 지진 영향으로

베란다에 이중창이 없는데 그 덕에 바람과 햇볕이 충분히 들어와

꽃이나 채소가 잘 자랍니다. 물론 땅에 심는 것만 못하지만

방울토마토가 어찌나 맛나는지 올해로 벌써 3년째 키워봤는데 해마다

요령이 늘어서 토마토 농사만큼은 자신있어졌어요.

둘째 아이는 한 살때부터 베란다에 토마토가 열리는 걸 봐서 그런지

가끔 수퍼에서 토마토를 사 오면 그걸 들고 얼른 베란다로 뛰어가

토마토 가지에 열매를 붙이려고 애쓰는데

그 모습에 무척 놀랐습니다...

둘째에겐 토마토는 가게에서 사 오는게 아니라 나무에서 나는 거라는 거.

그게 첫경험이었으니까요.

올해는 블루베리도 키웠는데 달콤한 토마토, 블루베리 열매를 노리고

작은 새들이 많이도 날아왔는데, 아이들이 그걸 보고도 신기해하더군요.

 

일본의 과학교육은 실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일상과 주변의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지식을 습득하지는 못하지만

천천히 오랜 시간을 두고 관심을 갖고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하지요.

이건 결국 아이들의 삶에 여백이 있어야 가능한 거 아닐까 싶어요.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공부해 성과를 내기보다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몇 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즐기면서 공부하는 게

일본인들의 공부패턴이더군요.

둘째 낳기 전에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난 일본인들의 공부방식도 모두 그랬던 거 같습니다.

 

이번에 노벨 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교수의 어록이 한때 뉴스에 많이 나왔는데,

 

*** 돈과 성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 자연은 인간보다 독창적이다.

 

란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과학공부에도 뛰어난 지능이나 지식보다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나

상상력 같은 게 더 중요하다는 말, 유명한 과학자들이 다들 입모아 말씀하셨죠^^

 

그나저나 저는,

올해도 나팔꽃을 키워 씨앗을 모아뒀는데

매년 키워서 딸아이가 결혼하고 아기낳으면

손자손녀에게 보여 줄 생각으로...

이게 너희 엄마가 1학년 때 키웠던 씨앗이야...라며.

 

오늘도 어김없이 아날로그 육아기로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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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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