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보다 아저씨를 좋아하는 아이의 취향
아저씨랑 잘 사귀어서 사회생활도 잘했으면
얼마 전 이종 사촌의 결혼식에 갔다. 아기를 보러 오거나 이런 저런 일로 집에 온 친척들이 대부분 아이를 보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의 공식 행사 데뷔(!) 무대라 옷차림도 신경 써서 결혼식장에 갔다.
아이를 안고 친척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막내 이모부(그러니까 아이에게는 할아버지)를 보더니 아이가 이모부의 양 팔로 냉큼 자리를 이동한다. 다행히 아이가 낯가림을 안하는구나 생각했는데 내려올 생각을 안한다. 이모부는 지난 여름 아이가 5~6개월 때 다른 볼일로 우리집에 오셔서 한번 아이를 안아준게 전부. 그러니까 지금 아이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을 턱이 없는 사람인데 내가 오라고 아무리 불러도 이모부 품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다.
껌 떼듯이 아이를 떼내어 안고 다시 식장 복도를 왔다갔다가 하다가 이번에는 대전서 올라온 외삼촌에게 인사를 했다. 외삼촌은 아이가 태어난 지 한달쯤 됐을 때 서울에 약속차 왔다가 잠깐 집에 들러 아이 얼굴을 보고 간 적 있다. 그러니 더더욱 기억할 리 없는데 푸짐한 외삼촌(그러니까 아이에게는 역시 할아버지) 품에 쏙 들어가더니 나올 생각을 안한다. 나중에 삼촌이 “엄마한테 가라”면서 나에게 아이를 안겼는데 아이는 삼촌 쪽만 쳐다보며 애원하는 눈초리를 돌리지 않는다.
아기들도 백인백색이지만 우리 애의 유별난 점 중 하나는 여자보다 남자를, 아줌마보다 아저씨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보통 아기들은 우락부락한 남자보다 곱고 깔끔한 여자들을 좋아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이날도 젊고 날씬한 아줌마인 내 사촌동생이 오라고 할때는 요리조리 싹싹 피하더니 아저씨(외삼촌과 이모부는 모두 50대 후반이시다) 에게는 몸을 던져 애정을 표시했다.
이날 만이 아니다. 엄마와 아빠에 대한 호감도는 비슷한 거 같은데, 아니 아빠보다는 엄마를 찾을 때가 많은데 이모들보다 이모부들에게 훨씬 더 열광한다. 이모들이 데면데면한가 하면 전혀 아니고 아주 물고 빨고 난리다. 특히 큰 언니는 요새 아이를 봐주느라 하루 열시간도 넘게 집에서 아이와 있는데 이모부가 집에 들어오면 까르르 넘어간다. 작은 언니네 가도 이모보다 이모부 품을 좋아하는 건 똑같다.
더 작은 아기 때부터 그런 특성이 나타나서 남편의 분석은 이랬다. 아무래도 남자 어른이 여자보다 힘과 덩치가 좋고 또 다들 둘 이상의 아이를 키워본 육아 경력자라 아이를 안는 기술도 뛰어나기 때문에 아이가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그런 편안함이 아저씨의 인상과 결부되어 아저씨만 보면 좋아하게 된 건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남편과 나는 한마음으로 “나이 들어서도 지금 취향(?)을 유지해라”라고 바란다. 왜냐면 그 편이 사회생활하는데 더 도움이 될것 같아서다. 사실 직장 생활하면서 가장 불편하고 어려운 게 아저씨급(?) 선배나 취재원과의 관계다. 뭐랄까 특별히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공통의 관심사도 찾기 힘든데다 부담스럽고 재미없으며 긴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건 대체로 아저씨들.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취재원들도 아저씨, 회사에서 인사권을 지닌 고위 간부나 선배들도 아저씨니 아저씨와 잘 지내는 건 사회생활에 무엇보다 중요한 기술 아닌가.
자식이 편하게 사회생활하길 바라는 엄마의 사소한 바람이 엉뚱한 아이의 취향으로까지 확대해석되는 듯하다. 내가 이런 말을 했더니 누군가 “요즘 애들이 클 때 쯤은 아줌마 취향이 사회생활에 더 필요한 덕목일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어쩐지 설득력 있다. 아무래도 아이에게 여성친화적 취향을 좀 더 키워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