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비트리에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저는 두 아들의 아빠입니다. 8살 윤슬, 4살 은유. 각박한 서울에서 살다가 2014년부터 제주로 내려와서 살고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로써 육아의 애환, 우리 부부의 좌우명인 평등한 육아에 대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여러 엄마, 아빠들과도 육아에 대해서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서로 비빌 언덕이 되면 좋겠습니다./ 박진현
출산은 부부가 엄마, 아빠가 되면서, 아이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다. 우리 부부는 두 번의 출산을 경험했다. 두 번의 출산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첫째 윤슬이는 병원 분만, 둘째 은유는 자연출산. 아내는 윤슬이를 출산하면서 ‘차가움’을 느꼈다면, 은유를 출산하면서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나에게 윤슬이 출산의 경험은 ‘아수라장’에, ‘아내 혼자만의 출산’이었다면, 은유는 ‘조용함’과 ‘가족이 함께하는 출산’이었다.
우리 가족은 지난 2014년 제주도로 이주했다. 이주 첫 해 7월 23일 둘째 은유가 태어났다. 조산원에서 자연출산을 했다. 아내는 첫째 아이를 병원에서 힘들게 낳았다. 그 경험이 둘째 아이를 자연출산으로 이끌었다. 물론 나는 처음에 반대했다. 병원 출산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뿌리 깊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나와 같이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2010년 6월에 방영한 sbs 스페셜 <자연주의 출산이야기>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내와 같이 자연출산을 준비했다. 두 권의 책은 자연출산의 고전으로 불리는 <농부와 산과의사> (미셀 오당), <폭력 없는 탄생> (프레드릭 르봐이예)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둘 다 산과의사이다.(산과의사는 산부인과에서 부인과만 빼고 아이 출산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이다.)
자연출산은 무엇일까? 둘째를 출산한 조산원의 원장님은 “자연출산은 무통주사와 촉진제를 쓰지 않고, 산모가운도 입지 않는다. 회음부 절개도 하지 않으며, 바큠(흡입분만)을 쓰지도 않는다. 관장도 하지 않는다. 엄마가 분만대에 올라가서 손발을 못 움직이는 자세로 아기를 낳는게 아니라, 아래못에서 편한 자세로 낳는다. 병원 분만은 병원 의료진들에게 편안한 시스템이다. 자연출산은 엄마가 주체가 된다. 엄마가 편한 대로 출산을 한다. 그야말로 자연에 맡긴다.”라고 설명했다.
첫째 아이는 2010년 11월 병원에서 낳았다. 자궁문이 다 열려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되고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시간은 90여 분으로 첫째 아이나, 둘째 아이나 비슷했다. 두 번 다 시간을 꽤 지체했다. 하지만 출산현장은 전혀 달랐다. 내가 본 첫째 아이 분만실 모습은 의사가 "이러면 아이가 죽을 수 있어요"라면서 고함을 지르고, 간호사가 아내 배에 올라타 무지막지하게 배를 눌렀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위생장갑을 낀 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아내는 첫째 아이 출산이 힘들었던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무통주사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무통주사를 맞고 내가 힘을 제대로 못줬어"라며 "그래서 은유(둘째 아이)를 낳을 때는 최소한의 의학적 개입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아내는 "윤슬(첫째 아이)이를 낳을 때 병원에서 환자 취급하는 것 역시 출산을 힘들게 했다"고 토로했다. sbs스페셜 <자연주의 출산이야기>를 보면 무통주사의 부작용을 지적한다. 소변 막힘, 임산부 저혈압, 임산부 열통, 진통시간이 더욱 길어지는 부작용을 꼽는다.
아내는 첫째 병원 분만 때의 느낌이 "차가움"이였다면, 둘째 출산은 "편했다"고 얘기했다. 왜 차가운 느낌이 들었는지 물었다. 아내는 "일단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자세를 취해야 하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 때 오후 1시 넘어 아이를 낳았는데 너무 환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소리를 지르고, 화까지 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 "아이를 억지로 꺼내려고 해서 나중에 진통보다 그게 더 아프고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둘째 아이 출산은 비록 힘들었지만 훨씬 부드러웠고 따뜻했다. 조산원 원장도 아내에게 "잘할 수 있어요"라는 격려를 했다. 나도 옆에서 손을 꼭 잡고 힘을 보탰다. 첫째 아이도 동생이 태어나는 장면을 직접 봤다. 아내가 내는 신음 소리 외에는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지지와 격려, 인내였다.
"산모를 격려하면서 아이를 낳게 해도 사실 출산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진통을 할 때 어떤 병원에서는 정말 폭력적인 얘기를 한다. 산모한테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잘못하면 큰일 난다. 산모가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힘이 저절로 나온다.“
조산소 원장님의 말대로 따뜻한 말 한마디, 부드러운 손길이 출산에 큰 도움이 된다. 첫째와 둘째는 태어나고 나서도 상황이 무척이나 달랐다. 첫째 윤슬이는 태어나자 마자 출산의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의사가 “"아빠가 탯줄 자를 수 없어요. 아이가 위험한지 봐야 해요"라고 말했다. 탯줄도 의사가 가위로 싹둑 잘랐다. 아이는 거꾸로 매달린 채 울음을 터뜨려야 했다. 아내와 나, 둘 다 갓 태어난 아이를 한번 안아보지도, 쓰다듬어 주지도 못했다. 잠시 얼굴만 보고 난 후 포대기에 싸인 채 신생아실로 갔다. 그리고 4시간이 지나서 신생아실에서 볼 수 있었다.
자연출산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둘째
둘째 은유는 달랐다. 태어나고 나서는 100분 동안 아이와 가족만의 시간이었다. 엄마와 아빠 모두 갓 태어난 아이를 안았다. 엄마는 소중한 초유를 아이에게 줬다. 조산소 원장님은 "출산 후 100분은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사랑의 호르몬이 듬뿍 나오는 시기다. 이 순간만은 올곧이 엄마와 아이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탯줄도 천천히 잘랐다. 태맥이 완전히 잦아들고 나서 나는 직접 탯줄을 잘랐다. 모든 것이 적당히 어두운 조명 속에서, 조용히 이뤄졌다. 100여 분이 지난 후 아기는 따뜻한 물로 목욕을 했다.
<농부와 산과의사> 저자 미셸 오당은 자연출산을 방해하면 '아이의 사랑하는 능력에 손상'을 가져온다고 강조한다. 집단적으로 아이의 공격성을 키워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회일수록 출산문화가 그렇다고 지적한다. 프레드릭 르봐이예는 <폭력없는 출산>에서 의료진이 외치는 큰소리, 아기 눈을 부시게 하는 환한 빛, 태어나자마자 자르는 탯줄, 아이를 거꾸로 매다는 행위 등 병원 출산시스템이 아이를 존중하지 않으며 폭력적인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스파트르쿠스인은 신생아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동네 산책을 하다 잠깐 쉬는 중~
3년이 지난 지금, 우리 부부는 둘 다 자연출산을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윤슬이도 동생이 태어나는 것을 직접 봐서 그런지 질투는 없었고, 동생을 예뻐한다. 윤슬이는 “엄마,아빠, 은유 사랑해”를 곧잘 한다. 물론 “엄마를 가장 사랑해”라고 덧붙이지만. 얼마 전까지 은유는 “아빠만 사랑해”라고 말하다가, 최근에는 “아빠, 엄마, 형아 사랑해”라고 말해 우리 가족 모두를 기쁘게 했다. 은유는 어린이집 다니면서도 그 흔한 감기 한번 잘 안 걸리고 씩씩하게 크고 있다. 타고나 기질이 중요하겠지만, 출산의 과정에 따라 그 기질이 더 건강하게 잘 발현되리라고 믿는다. ‘은유’는 수사법으로써 은유도 있고, 지금은 잊혀졌지만 고어로도 쓰였다. 고어로 ‘은유’는 ‘애지중지 사랑하거나, 너그러이 은혜를 베풀다’이다. 자연출산에 잘 어울리는 이름 같다. “은유야, 세상을 은유하고 사람을 은유하면서 살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