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율이, 합격이래!”

합격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말이 튀어 나왔다. 출근 일은 다가오는데 어린이집을 못 구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차였는데, 이런 연락을 받으니 굿뉴스가 아닐 수가 없었다. 마침 우리집에 놀러 와있던 친구 가족들까지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해주었다. 어린이집 가게 된 게, 이렇게 좋을 수가… 보육비가 저렴한 국공립 어린이집 당첨된 건 아니고, 우리 아이가 가게 될 어린이집은 우리 동네에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다. 원래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국공립 어린이집처럼 사람들이 줄 서고 몰리는 곳은 아닌데, 요 근래 어린이집 관련한 사고들이 많이 터지면서 부쩍 문의와 방문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제 만 3, 우리 나이로 4살이 된 우리 아이가 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이었는데, 마침 내가 새로운 일을 갖게 되면서 어린이집을 빨리 찾아야 되는 사정이 되었다. 어린이집을 선택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첫 번째는 ‘우리 아이가 준비가 되었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만약 아침마다 아이가 울고불고 한다면, 아마 나는 출근을 포기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좋은 엄마는 아니지만, 그렇게까지하면서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리 실험(!)에 착수했다. 일단,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셨을 때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런데, 내 상상과 달리 우리 아이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했다. 내가 외출을 한다는 데도 한번 매달리지도 않고, 아주 흔쾌하게 ‘엄마, 안녕! 잘 다녀와!’라고 인사까지 하며 보내주는 게 아닌가? 마치 엄마의 외출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이별은 자연스러웠다. 할머니는 낯 익은 사람이라 그럴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생면부지의 베이비시터에게 맡겨보았다. 역시, 잘 보내주었다. 물어보니 하루 종일 내가 없어도 찾지도 않는다고 했다. ~ 이런, 독립적인 인간이 있나? 오히려 내가 섭섭해야 할 판이다. 결론은 꼬박 2년 반 젖 먹이고, 꼬박 3년을 끼고 있었으니 이제 지겹다 이건가?ㅋㅋ 다행히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어서 분리불안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다음은 ‘어떤 어린이집에 보낼까?’에 대한 부분이었다. 일단 주위에 있는 어린이집을 둘러보았다. 마침 가까이 공동육아 어린이집(도토리 어린이집)이 있어서 방문했다. 2층 단독주택으로 된 어린이집은 들어가면서부터 가정집처럼 분위기가 훈훈했고 마음이 놓였다. 공동육아가 지향하는 철학이나 가치에 동의하고, 심지어 문제점까지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공동육아를 선뜻 선택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게 두 가지 있었다. 우선, 철학은 대안적일 수 있는데, 교육비가 대안적이지 못하다는 거다. 공동육아는 출자금이 있어서 목돈이 지출되어야 하고 월 보육료도 다른 어린이집에 비해 비싼 편이다. 그런 이유로 대안교육이나 공동육아는 특수목적고와 유사한 특수목적 어린이집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물론 특수목적은 '공부'가 아니라 '잘 놀리는 것'이 다를 뿐이다. 아무래도 경제적, 철학적 진입장벽이 있다보니 비슷한 철학과 관심사,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모인다는 점에서도 마음에 걸렸다. 편할 수는 있지만, 나는 생물다양성이 확보된 곳이 재미있고 좋다. 아무튼 망설여졌다.

그 다음 동네에 있는 어린이집에 가보았다. 그런데, 내가 방문한 시점에 꼬맹이들이 영어를 배우고 있는 게 아닌가? 그 길로 뒷걸음쳐 나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모습이다. 나중에 크면 내가 어떻게 돌변할 지 몰라도, 지금은 어떤 형태의 인위적인 학습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말도 잘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라니, 지금은 마음껏 놀아도 부족한 때 아니던가? 나도 어린이집을 다녔지만, 어린이집을 다니는 3년 내내 나는 늘 겉돌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꽉 짜여진 스케줄과 뭔가 많이 주입하는 수업방식에 숨이 막혀 매일 놀이터에 나와서 놀던 생각이 아직도 난다. 나도 그렇게 싫었던 걸 시키기 싫었다.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몇몇 어린이집을 수소문해보다가 더 이상의 대안이 없어 처음에 갔던 도토리에 연락을 했다. 늦었다. 정원이 다 찼단다. 우물쭈물대다 차선책도 없어진 셈이다.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사람들에게 수소문하여 우리동네에 있는 또 하나의 공동육아 어린이집(나무를 키우는 햇살 어린이집)에 한 명의 티오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가보았다. 직접 가보니, 철학이고 가치고 그건 다음 문제고, 나는 이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 앞마당의 모래놀이터와 마당 한 귀퉁에 자리잡은 부모들이 나무놀이집(부모들이 만들었다고 한다)이 마음에 쏙 들었고, 무엇보다 앞에 아무런 건물도 없이 들과 야트막한 언덕만 있어 시야가 탁 트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산으로 들로 오솔길로 매일 산책다닐 생각을 하니 흐뭇했다. (참고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주요 일과가 산으로 들로 산책이다. , 내가 다녔으면 좋겠다.^^) 정원이 20명 밖에 안 되는 것도 마음에 들고, 대부분의 가족들이 이 마을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산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본능적으로 자기가 있을 곳이라는 걸 알았는지, 우리 아이도 쭈삣대는 것도 없이 선생님과 아이들 무리에 섞여 잘 놀았다. 심지어 나더러 가라고까지 하는 게 아닌가?;;;

다 마음에 드는데,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우리 아이가 맞닥뜨린 최초의 경쟁이다. 한 명 뽑는데, 5명이 온 것이다. 그것도 성비 때문에 남자아이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실망했다. 그래도 한 번 넣어보기는 해야 될 거 같아서, 접수를 하고 나와 남편과 아이가 함께 이사진(엄마, 아빠들)과의 면담을 가졌다. 전날 어린이집 대보름 행사, 뒷풀이를 새벽 6시까지 한 탓에 몇몇 분은 음주면접이었다. 오랜 면담 끝에 우리가 될 확률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마음을 비워가던 중에 소식을 전해들은 거였다.

, 이제 우리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됐다. 그 사이 공동육아 어린이집 바로 앞에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 나와서 이사 가기로 했다. 우리 가족에게 큰 변화가 시작된다. 이제 꽃 피는 봄이 오면 오솔길을 걸어서 출근하게 됐고, 우리 아이는 동네 아이들과 산책하고 흙 마당에서 놀며 자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일과 육아 사이에서 똥줄도 탈 것이고, 한동안 전쟁 같은 아침도 예상된다. 그래도, 새로운 변화와 번뇌가 꽃봉오리 터지듯 터질, 봄이 마구마구 기다려진다.

나무햇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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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이메일 : tomato_@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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