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에게 완패한 아기 욕조 실랑이...첨단유행보다 좋은 건 할머니표 육아법




554c073ab65eb188f812fb65f13de0c4. » 아기는 엄마가 준비한 첨단 욕조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목욕시키기는 신생아 육아 가운데 가장 난이도 높은 분야에 속한다. 그래서 욕조도 만원대 단순한 목욕통부터 온도계, 등받이, 서서 목욕시킬수 있는 받침대까지 구비된 수십만원짜리까지 천양지차다. 하지만 지난 주 썼던 바와 같이 나는 큰 고민하지 않고 5000원짜리 마트표 대야를 준비했다. 큰 욕조는 불편하기만 하다는 산모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참으로 알뜰하고도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물론, 이게 다 일리가 없었다. '유아 욕조'라는 단어를 치면 펼쳐지는 그 끝없는 제품들의 향연에서 너무나 깜찍한 욕조를 발견했던 것이다. 보통 욕조가 넓고 긴 반면 마치 달걀을 세워놓은 듯 갸름한 이 욕조에는 엄마 자궁을 닮아 아기들이 엄마 뱃속에 있는 것처럼 좋아한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게다가 가격도 3박4일 고민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다. 바로 질렀다.



산후조리를 이유로 자의반타의반 육아에서 배제됐던 나 대신 아기를 목욕시키던 엄마와 언니는 먼저 5000원 짜리 대야에 분노했다.  문명의 이기가 넘쳐나는 21세기에 왠 '다라이'냐는 이유였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문명의 이기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꺼내보였다.



"이게 뭐니? 화분이니?"



엄마는 뜨악한 표정으로 욕조를  쳐다봤다. 엄마 자궁, 인체공학 등 과학적인 설명을 장황하게 했으나 엄마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언니들한테 전화까지 돌려가면서 나를 흉보기 시작했다. "어디서 화분같은 걸 가져와서 목욕통이라고 우기는 구나" 평소 나를 바라보는 언니들의 편견으로 추측하건대 이런 응답이 전화기 넘어로 들리는 듯 했다. "걔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설명에 실패한 나는 몸소 아기 목욕 시연을 하며 피부로 와닿는 감성적 접근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욕조에 물을 붓고 아기를 넣었다. 아기의 어깨 아래로 손이 내려가질 않았다. 폭이 너무 좁아서 팔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욕조 아래까지 얼굴이 들어가는 아기가 물에 빠지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아기가 아직 너무 작아서 그래, 좀 더 크면 잘 쓸 수 있겠는 걸"의연하게 등골을 적시는 식은 땀을 숨겼지만 엄마는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나의 패배를 유유히 즐기고 있음이 확실했다.



자존심에 두꺼운 금 하나를 새긴 나는 호시탐탐 설욕의 기회를 노렸다. 그리하여 두달이 지난 다음 다시 욕조를 꺼냈다. 목을 어느 정도는 가누는 지금쯤 들어가면 엄마 뱃속에 있을 때처럼 폭 쪼그리고 앉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을 했다. 꺼지지 않는 비난의 첫번째 표적인 5000원짜리 대야에서 비누칠을 하고 꺼낸 아이를 헹구기 위해 이 욕조에 넣었다.



아이는 앉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생긴 걸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뻣뻣이 섰다. 니가 무슨 뻣뻣이 허리를 세우고 세수했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후예라도 된다는 거냐.  지금 엄마의 권위에 도전하는 거냐. 자존심에 두번째 금이 갔다. 맞은 데 또 맞는 쾌적한 기분으로 인체공학적 욕조 안에서 바가지로 물을 부어 아이 몸을 헹궜다. 그리고 엄마의 화분 저주는 현실화되어 욕조는 길쭉한 난 화분에 물주는 용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뭐, 그래도 진짜 화분으로 쓴 건  아니지 않습니까)





20c62ba42bfe23f5f7d03b2d16d1a3d5. » 수입산 아기띠 안에서 울던 아기는 할머니가 포대기로 업기만 바로 잠들었다.



욕조는 신구 육아 갈등의 포문을 연 시금석이 됐다. 이후로 사사건건 엄마와 나는 부딪혔다. 큰맘 먹고 준비한 육아용품들(주로 '첨단' '인체공학' '최신 트렌드'등의 수식어가 붙은 물건들이었다) 은 대체로 비웃음이난 비난을 샀다. 더욱 열받는 건 아기가 할머니와 짜기라도 한 듯 엄마의 준비물들을 싫어하거나 거부했다. 엄마가 수입산 아기띠로 매면 울고불고 하다가 할머니가 포대기로 등에 업으면 수면제라도 되는 듯 바로 잠에 드는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 한대 쥐어 박고 싶은 충동까지 불끈 들었다. 내복보다 훨씬 깜찍한 바디수트를 보고 단추도 없는 옷을 갓난 아기에게 어떻게 입히려고 하느냐고 친정엄마는 핀잔했지만 괜찮다고 박박 우겨서 입힌 첫날 아기는 옷에 응가를 해버리는 것으로 엄마를 골탕먹였다. (앞트임 단추가 없어 응가 묻은 옷을 위로 벗겨야 하니 응가가 엉덩이부터 허리, 등짝, 뒷통수까지 '황금색' 흔적을 남겼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신구세대의 육아 경쟁에서 절대적 심판자인 아이에게 판정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해봤자 그저 "으그그그""꾸꾸"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응답을 하니 어쩔 수 없이 완패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의 백일을 앞둔 지금 나는 역전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친정엄마의 클래식 육아법을 제압할 모던 육아 필살기를 찾기 위해 인터넷질로 음... 신상품 쇼핑에 혈안이 돼 있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혁신적이며 합리적인 육아의 달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전에 가정 경제만 거덜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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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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