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나는 어릴 때 잔소리 한 번 안들을 정도로 착했다고 한다.
가끔 며느리 앞에서 늘어놓는 어머니의 아들 자랑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릴 때를 떠올려보면 ‘착한 이미지’를 나 스스로 고착화시키며 자라온 게 아닌가싶다.
그렇게 말을 잘 듣던 아들이 지금은 청개구리가 되어 멀리 제주에서 살고 있으니 말 잘 듣는 것도 유통기한이 있는 게 아닐까?
35년을 살아오며 아내나 나나 누구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기 위해 용기를 내어 제주로 이주했다.
‘부모님의 기대’라는 ‘예’에 부응하기보다 ‘내 삶을 추구’하는 ‘아니오’를 선택하고 나니 나중에 후회가 될 지라도 지금은 몸과 마음이 가볍다.
청개구리 엄마, 아빠를 둔 아이여서 그럴까?
뽀뇨는 엄마, 아빠, 우유 등 대상을 지칭하는 단어 이외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안 해’를 제일 처음 배웠다.
한 손을 흔들며 이것도 ‘안해’, 저것도 ‘안해’하다 보니 ‘누구한테 배웠냐?’며 다들 물어보고 심지어 ‘예’를 가르치기 위해 외갓집 식구들은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할머니가 ‘할아버지’하고 부르면 할아버지가 “예”라고 대답하고, ‘이모’라고 하면 이모가 “예”라고 대답하는데 늘 마지막은 ‘뽀뇨’를 불렀다.
할머니, 할아버지 하는 걸 보고는 뽀뇨도 “예”라고 하게 되는데 실생활에서 “예”를 쓸 때가 많지가 않아서 그런지 ‘안 해’를 훨씬 더 많이 쓴다.
처음 ‘안 해’를 배운 것은 출판사에 다니는 용석 삼촌이 뽀뇨에게 선물한 세밀화를 읽으면서부터다.
책을 읽어주며 처음엔 무슨 책이 ‘안 해’, ‘싫어’라는 부정적인 말밖에 없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부정의 말이 뽀뇨에게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처음이자 유일한 말이 된 것이다.
사실 긍정을 이야기하는 말들은 ‘우유’라는 구체적인 단어와 ‘손짓’ 등 방향을 나타내는 표시 등 많이 있는데 선택을 표현하는 방식은 두 살도 안된 뽀뇨에게는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 해’를 일찍 가르쳐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 해’를 남발하는 뽀뇨,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을까?
다행히도 18개월 소녀, 뽀뇨는 아빠에게 뽀뽀를 선심으로 해줄 정도로 눈치가 빠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안 해’보다 ‘그래’를 쓸 날이 더 많겠지만 ‘안 해’의 용기 만큼은 누구보다 더 많이 가지길 바란다.
<뽀뇨랑 함께 책읽기. 이 책은 메뉴판 ^^;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뽀뇨가 아니아니를 처음 배운 동영상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