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2490.JPG » 아이가 수영장이나 워터파크보다 좋아하는 건 목욕통에 물을 받아놓고 로봇을 가지고 노는 거다

 

 

 
 “잉잉, 독가시 어딨어요? 어디?(울먹울먹) 불화살은 어딨지요? 어딨지?”
 밤 10시. 집 앞 논의 개구리 울음소리도 잦아든 한밤 중에 나는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다. 아무리 마룻바닥을 뒤져도 랜턴을 켜고 장식장과 소파 아래를 샅샅이 뒤져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새끼 손톱만한 장난감 부속품이 쉽게 찾아질 리 있나. 야심한 밤에 이 뭐하는 짓인가, 퇴근하고 돌아와 아직 세수도 못했는데, 피곤이 몰려든다. 난 누군가, 여긴 여딘가. 내 안의 못된 엄마가 기어이 다시 튀어나오고야 만다. “그러게 누가 이렇게 부속품들을 다 뒤죽박죽해놓으라고 했어! 다시 한번만 사달라고 하면 볼기짝 빨개질 때까지 맞을 줄 알아!!!”
 아이가 드디어 조립 장난감의 세계에 빠졌다. 이른바 레고 개미지옥. 딸을 가졌을 때 떠오르는 기대 중의 하나가 어릴 적  갈망했던 마론인형과 인형에게 입히는 조그맣고 깜찍한 옷들을 잔뜩 사겠군이라는 생각이라면 아들은 레고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조그만 벽돌 조각들을 함께 맞추며 거대한 우주선이나 도시를 만들어보는 것도 멋질거야. 허나 상상과 현실은 역시 다른 거였다.
 여기서 잠깐 4살 아이의 장난감 역사를 되짚어보겠다. 아이가 최초로 골랐던 장난감은 돌 지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 작은 기념품점에서 발견한 조그만 코끼리였다. 사실적인 동물 피규어로 유명한 슐라이히의 아기 코끼리였는데 작은 손에 쏙 들어가는게 맘에 들었는지 몇달동안 항상 들고 다녔다. 놀이공원에서 잃어버린 뒤 똑같은 걸 새로 사기도 했다. 이후 아이가 푹 빠진 것은 상어였다. 말을 못해 부르르 떠는 것으로 상어를 표현하다'하오'를 거쳐 '상어'를 정확히 발음할때까지 4년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에 빠졌던 상대다. 상어 그림책과 상어 인형에 몰두하던 아이는 동네 장난감 가게에서 찾은 어른 팔뚝만한 상어인형을 근 1년 동안 끼고 산 것 같다. 다른 아이들은 강아지나 고양이같이 모양도 귀엽고 폭신한 봉제 인형을 들고 다니는데 아이는 이빨도 삐죽삐죽하니 살벌하고 차가운 질감의 비닐인형을 밤이나 낮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끌어안고 살았다.  반면 또래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자동차와 기차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이후 공룡과 거미를 잠시 사랑하다가(넌 왜 무섭고 징그러운 것만 사랑하는 거냐) 지난 가을부터 올 초까지는 ‘또봇’이라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로봇에 열광했다 . 장난감때문에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캐릭터 장난감은 컨텐츠라는 막강한 마케팅 도구를 가지고 있다. 장난감만 가지고 노는게 아니라 티브이,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통해서 시도때도 없이 또봇을 보여달라고 난리를 친다. 게다가 이노무 컨텐츠는 뭔노무 시리즈가 이렇게도 많은겨. 또봇x와 y,z가 나온다음에는 타이탄과 트라이탄이 차례로 등장하고 w에 이어 c가 등장했다. 그레이트 또봇, 또봇 쉴드온 등 이름도 외우기 힘든, 장난감을 팔아먹기 위해 조금씩 변형한 캐릭터들이 <진격의 거인>처럼 꾸준히 쏟아져나온다.
 그리고 나서 올 봄에 도착한 게 레고의 ‘히어로 팩토리’라는 시리즈였다. 처음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봇은 조립 로봇이긴 하나 어린 아이가 만들기는 너무 어려워 어른이 옆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자동차로 만들었다, 로봇으로 변신했다를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한국 조립로봇사에 획을 그은 영실업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른이 만들기도 너무 힘들었다. 하도 뻑뻑하고 아구가 안맞아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오붓한 풍경을 연출하는 와중에 욕이 나왔다. 게다가 부속은 왜 이다지도 잘 부러져서 좀처럼 연결안되는 as센터에 전화는 얼마나 해댔던가.
  조금만 도와주면 아이 힘으로도 착착 끼워맞출 수 있는 레고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을 때 쾌재를 불렀다. 게다가 아이가 선택한 시리즈는 피규어로 구조물을 만드는 시리즈에 비하면 가격도 저렴했다. 그런데 이것은 또 하나의 헬게이트가 열린 것에 불과했다. 퓨노는 로카를 부르고 로카는 써지를 불렀다. 써지는 벌크를 부르고 벌크는 오그룸을 부르고 오그룸은 파이록스를 부르고… 이게 왠 마태복음 1장의 암울한 패러디란 말이냐. 이제 대충 주요 캐릭터들이 갖춰졌나 싶더니 곧 하반기 신형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온단다. 레고 사주다가 집안 거덜난다는 불길한 예감을 곱씹으며 오늘밤도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잘자라 우리 인이
 앞뜰과 뒷동산에
 써지도 오그룸도
 잠이 드는 데
 퓨노는 영창으로
 독가시와 불화살을
 보내는 이 한밤
 잘 자거라~♬

((다음주에 반전의 2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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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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