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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지갑을 잃어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도난당했다.
막내가 용변이 급해서 대형마트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선반에 가방을 두고 온 것이 화근이었다.
별생각없이 유모차를 밀고 나오다가 가방 생각이 나서 황급히 다시 화장실을 찾았을때 이미

지갑은 사라지고 없었다.
 
머리속이 하얘졌다.
현금은 거의 없었지만 어떤 카드가 몇개나 있었는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객센타에

들러  우선 각 카드사별 분실신고센터 전화번호를 받아 정신없이 분실 신고를 했다.

영문을 모르는 두 딸들이 집에 가자고 보채는 것을 달래가며 각 카드사마다 전화를 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신용카드 다섯 장에 체크 카드 두 장, 은행 카드 두 장, 하필 그날 새로 발급받은 증권사 카드에

보안카드까지 있었고, 면허증에 주민등록증은 물론 사라졌다.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

가족카드도  날아갔고 그 외 온갖 회원카드며 포인트카드까지...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더 속상한 것은 이렇게 지갑을 도난당한 것이 이번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도 이 마트에서만 두번째에다 부주의하게 잃어버린 적도 있고 핸드폰을 잃어버린 일도

 있었으니,  결혼 10년간 나는  수없이 중요한 물건들을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한 셈이다.

 늘 애들을 챙기느라 가방 건사에 소홀했던 탓이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이것 저것 필요한 물건을 함께 넣어 손 가방에 들고 다니는데 내 못된 습관 중 하나는

 가방의 지퍼를  잘 안 닫는다는데 있다.
유모차 손잡이에 덜렁 걸어 놓고 지퍼 닫는 것도 자주 잃어버리니 남편은 내가

 '그냥 편하게 지갑을 가져가시오'

하며 다니는 거란다. 맞는 말이다. 늘 신경 써야지 하면서도 난 번번이 잊어버리곤 했다.

 

핑계는 있다.
어린 아이와 외출하는 일은 챙겨야 할 짐도 많고 항상 신경이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그거에 온 신경을 다 쏟는 동안 정작 가방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한 명도 아니고 기본으로 두 명은 달고 다니다 보면 가방보다 아이들 신경쓰느라 정신이

없기 쉬웠다.

몸에 항상 가방을 딱 붙이고 다니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언제나 짐이 많아 무거웠고 유모차를 밀고

다니다보면  유모차 손잡이에 거는 것이 제일 간단했다. 

수시로 휴지며 손수건 꺼내고 아이들이 요구하는 물건들 꺼내고

넣어주고 하다보면 그때 그때 가방 지퍼를 여닫는 일이  번거롭기도 했다.

그러다가 닫는 것을 잊어버린체 돌아다니곤 하는 것이다. 그래도 물론 내 잘못이다.

애 여럿을 달고 다니면서도 딱 부러지게
물건 챙기고 다니는 엄마들도 많다. 그런일에 야무지지 못한 덜렁거리는 내 탓이다. 내 탓이다.

 

정신없이 분실신고를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말하니 남편은 기가 막히다는 듯 한숨을
쉬며 화를 낸다. 그러게 평소에 가방 좀 잘 챙기라고 하지 않았냐고, 그렇게 말해도 안 듣더니 이런

 일 생기지 않냐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길거리에서 눈물을 쏟았다. 남편말이 다 맞지만 잃어버려서 정신없고 너무

속상한데 한마디 더 야단치는 소리를 들으니 속상함이 한층 밀려온 것이다.

 

잃어버린 지갑은 남편의 선물이었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남편에게 미안해서 새로 사지도 못하고 큰 언니가 쓰다가 새로 사는 바람에 남게 된

 헌 지갑을 받아 쓰고 있는 것을 남편이 안스럽게 여겨 좋은 것으로 선물해준 것이었다.

지갑 선물엔 현금을 넣어 주는 것이 예의라며 남편은 빳빳한 새 지폐까지 넣어서 내게 선물했었다.

오래 잘 쓰고 있었는데 이렇게 어이없이 또 잃어버리다니... 나는 정말 구제불능인가봐.... 풀이 죽었다.

 

남편은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워낙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라서 자기 물건은 정확하게 챙긴다. 정리도 나보다 잘하고 물건 관리도

나보다 훨씬 잘한다. 그러니 덜렁거리는 마누라가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할까.

그나마 잔소리가 없는 편이라 고맙다. 자기처럼 제대로 하라고 들들 볶아댔다면 정말 함께 살기

어려웠을뻔 했다.

마흔 넘어가니 슬슬 깜박증도 생기는 듯 한데 물건까지 잘 챙기지 못하니 이걸 어쩌나.

그래도 가방까지 들고 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핸드폰이 사라지지 않은것이 더 다행이었다.  마침 오전에 은행 업무를 보았던 터라 모든 은행 통장과

도장, 거기에 차 열쇠도 있었는데  가방이 통째로 사라졌더라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날 뻔 했다.

새로 적금을 들기 위해 현금도 적지않게 지니고 있었는데 모든 은행 업무를 끝내고 나서 당한 일이라

천만 다행이었다.

 

이번일을 계기로 남편과 의논해서 몇가지 결정을 내렸다.
우선 신용카드는 한장만 남기고 해지하기로 했다. 은행 체크카드를 만들어 잔고 안에서만 지출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신분증도 면허증만 가지고 다니고 주민등록증은 집에다 두기로 했다.

무거운 짐가방은 따로 하고 중요한 소지품만 지닐 수 있는 작은 가방은 몸에 딱 붙이고 다니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이렇게만 해도 크게 곤란한 일은 많이 줄어들 듯 하다.

타고난 성격을 한번에 바꿀수야 없겠지.
그래도 똑같은 일을 계속 당한다면 성격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일을 빨리 수습하고 다음부턴 똑같은

실수 안 하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여보야...

다음달 내 생일에 이쁜 지갑 선물....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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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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