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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기말고사인 아홉살 큰 녀석..

늦도록 제 방에서 공부는커녕, 문방구에서 산 싸구려 장난감 조립에 열을 올리고 있기에

“내일이, 시험이네?” 물었더니

싱긋 웃으며 “괜찮아요. 못 봐도 되잖아요.” 한다.

평소에 공부를 하라는 소리를 한 적 없이 키운 결과다.


“음... 뭐... 꼭 잘 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는 건 틀리지 말아야지.”

옹색하게 늘어놓았더니

“아는 거야 맞겠죠. 모르는 건 틀릴테고...”

천하태평이다. 그러나 워낙 맞는 말이어서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혁신초등학교 2학년인 울 아들.

가방엔 알림장 한 권이 고작이다. 교과서는 물론 필통까지 학교에 두고 다닌다.

대신 학교에서 읽을 책이나 30분인 중간 놀이 시간에 친구들과 놀 딱지, 카드, 장난감 같은

물건들은 학교에 열심히 챙겨간다.

1학년 때는 학교에 가면서 “딱지 많이 따 올께요.” 하며 인사를 하던 녀석이다.

요새는 유행이 바뀌어서 딱지는 안 친다나? 그래도 중간 놀이 시간 때문에 학교 다닌다는 말은

변함 없다.

오후에 큰녀석을 데리러 학교에 가보면 운동장 모래놀이터에서 제일 열심히 노는 게 내 아들이다.

비 오는 날에도 우산 던져 놓고 물놀이, 흙 놀이에 열심이시다.


첫 아이 낳아 학교 보내서 2학년 1학기까지 지내는 동안 받은 사교육이라곤

다섯살 때 한글을 떼기 위해 몇 달간 했었던 학습지가 유일하다.

둘째를 낳아야 하는데 남편은 전국 출장을 떠나 주말에만 돌아오고, 책 좋아하는 아들에게

도무지 책 읽어줄 여유가 없을 것 같아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일이었다.

몇 달 후에 한글을 익혔기에 학습지를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학습지 교사가 펄펄 뛰었다.

한글은 그야말로 시작이고 이제부터 ‘국어’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어 과목 들어가면서 수학과 과학도 함께 들어가고, 대개 영어와 한자 기초도 시작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래도 필요 없다고 했더니

제7차 교육 개정이 어떻고, 대학입시 때 논술이 어떻고 하며 지금 몇 만원 아까워서

아이의 미래를 망치겠냐!고 훈계가 대단했다. 가만히 앉아 설명을 듣다보면 순간의 학습지 선택이

내 아이의 대학 입시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경우 어지간하게 간이 큰 학부모라도 흔들리지 않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로 끊었다.


유치원도 6세 때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딱 9개월 간 다닌 게 고작인 우리 아들은

일곱살 때도 엄마와 여동생과 펑펑 놀다가 학교에 입학했다.

일곱살인데 아무곳에도 보내지 않으면 어떻하냐고 주위에선 걱정이 컸다.

이미 두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친정 언니는 인터넷을 뒤져 수학 교재를 선정해

택배로 보내주기까지 했다. 입학하기 전까지 집에서 국어와 수학이라도 해 주라는 것이다.

글씨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셈도 잘 못하는 아들을 보자니 마음이 조금 흔들려서

한글 자음, 모음을 공책에 써 보고, 수학 교재도 매일 몇 장씩 풀자고 했더니

몇 번 하는 시늉을 하던 아들은

“그런데 이걸 왜 해야 해요?” 물었다.


“초등학교 입학 하기 전에 이런 걸 미리 공부해 두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게 쉽고 재미있어진대.” 했더니

“그래도 저는 학교에 가서 배울래요. 미리 하는 거 재미없어요.” 했다.

그 말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쳐지면 어떻하니, 알고 들어가면 조금이라도

앞서 갈 수 있잖아, 네 또래들은 이런거 다 알고 있더라... 등등의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긴 했지만

학교 생활을 시작도 하지 않은 아이에게 벌써 남보다 앞서갈 것을 기대하며 조바심을 부렸던

내가 부끄러워 그 길로 공부하라는 말을 접었다. 스스로 무엇이든 하고 싶은 동기가 없으면 절대 손대지 않는

아들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방과후 프로그램은 2년째 변함없이 ‘체육’과 ‘과학실험’뿐이다.

전교생이 거의 다 하는 ‘영어’도 안 한다고 하고, 등·하교 차량 서비스를 받아볼까 싶어

꼬셨던 태권도도 관심 없단다. 그야말로 수업 끝나고 싫증날 때까지 학교 운동장이나 도서관에서

놀다 오는 게 주요 일과다.

과제라고는 일주일에 두 편씩 써가야 하는 일기와 일주일에 한 번 받아쓰기 연습을 해 가는 게

고작이고 가뭄에 콩 나듯 수학 교과서 문제 풀이가 있다. 이것도 과제라고 별로 안 반긴다.


혁신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학원이나 사교육을 안 받는 게 아니다. 다만 일반학교 학부모들보다

혁신학교를 보내는 학부모들이 ‘놀이’의 중요성을 더 크게 여긴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방과후 프로그램에서 매일 매일 수업이 있는 ‘영어’는 거의 다 듣고, 피아노니 태권도니 하는

예체능 학원들도 많이 다닌다. 내가 보기에 우리 아들처럼 아무 학원도 안 다니는 아이는

없지 싶다.

아들은 수업 끝나고 놀만큼 놀다가 내게 데리로 오라고 콜렉트콜로 전화를 하고, 집에 오면

빈둥거리며 책 보거나, 제 방에 박혀 레고를 조립하고 좋아하는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게 고작이다.

공부하라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고, 대신 빨래 좀 같이 널자거나 제 빨래 가져가서 개키라는

걸로 나와 실랑이 한다. 공부하라고 잔소리는 안 하지만 제 빨래 제가 개켜서 정리하는 거

안 하면 그냥 안 둔다. 입만 열면 공부보다 집안 일 돕는게 더 중요하다고 큰 소리 치는 엄마에게

이 녀석이 좀 컸다고 슬슬 반항하는 중이라서 가끔씩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난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저학년이니까 공부니, 시험이니 신경 쓸 일 없다고들 한다. 3학년쯤 되면

달라질 거라고도 한다. 내가 언제까지 아이 공부와 성적에 대범할지 궁굼해 하는 엄마들도 있다.

나중에 아이가 많이 뒤쳐지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예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사교육에 목숨 걸 자신도 없고, 돈도 없다.

학교 끝나고 학원 스케줄에 맞춰가며 살고 싶지도 않다. 사교육 대신 셋째 아이를 선택한 우리다.

가정 형편상으로도 불가능하다. 많이 논 아이가 공부도 잘 한다가 내 소신이다.

지금 우리 아들은 엄마의 소신대로 징그럽게 놀면서도 놀 시간이 부족하다며 불평하며 살고 있다.

활자 중독이 있는 엄마를 닮아 책은 좋아하고, 어떤 일이든 한번 꽂히면 몇 시간이고 붙들고

있는 성격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고집도 세고, 억지로 시키는 일엔 꿈쩍도 하지 않지만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누구보다 열심히 매달리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게 학교 공부가 아닐 뿐이라고 믿고 있다. 앞으로도 학교 공부에 그런 흥미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하는 교과서 공부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공부가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그런 큰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 시킬 수 있을까?가 늘 내 고민이다.

우선은 텃밭 농사 공부와 집안일 공부를 중요하게 여기게 만드는 게 나날의 투쟁이랄까?


그리하여 공부에 대처하는 우리 아들의 자세는

‘땡기는 대로’가 되시겠다.

이 자세를 언제까지나 쿨하게 믿어주는 엄마가 될 것이냐...!


내 심경의 변화도 내겐 늘 흥미진진하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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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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