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비트리에 세 번째 글을 올립니다. 저는 두 아들의 아빠입니다. 8살 윤슬, 4살 은유. 각박한 서울에서 살다가 2014년부터 제주로 내려와서 살고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로써 육아의 애환, 우리 부부의 좌우명인 평등한 육아에 대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여러 엄마, 아빠들과도 육아에 대해서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서로 비빌 언덕이 되면 좋겠습니다./ 박진현
어린 농부의 탄생
제주도로 이주한 지 4년차, 올해도 텃밭을 시작했다. 제주도로 이주한 첫 해, 한살림에서 텃밭 참가자를 모집했다. 나도 거기에 참여했다. 평생 처음 텃밭을 한 것. 한살림에서는 텃밭 참가자에게 친환경 유기농법을 실습위주로 가르쳐 줬다.
자급자족의 로망을 안고 텃밭에 뛰어 들지만, 로망과 현실은 언제나 다른 법이다. 친환경 유기농법은 땅을 오염시키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즉 옛날 농부들처럼 골갱이(제주에서는 호미를 골갱이라고 부른다.) 하나 달랑 들고 검질(잡초의 제주말)을 매는, 몸으로 때우는 ‘전통농법’이었다. 거짓말 좀 보태면, 한쪽 이랑에서 검질을 매고 나면 다른 쪽에서는 이미 검질이 자라고 있었다.
한살림에서 매년 봄 10여명이 텃밭을 시작 하지만, 한 해가 지나서 남는 사람은 1,2명이었다. 나는 제주도로 이주한지 3년차 되는 해에 직장 때문에 한살림 텃밭을 그만뒀다. 직접 키운 건강한 농작물을 먹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한살림 텃밭을 그만두고 나서는 굳이 텃밭을 할 생각이 없었다. 조그마한 텃밭을 하는 것도 공력을 제법 들여야 하기 때문. 하지만 첫째 아들 윤슬이가 텃밭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윤슬이를 위해서라도 텃밭을 해야 했다. 작년에는 빌라 화단에 손바닥만한 텃밭을 했다. 그 손바닥만한 텃밭에 윤슬이가 이름을 지어줬다. “농부 가족의 텃밭”
제주로 이주하고 나서 시내에 살다가 작년 12월 애월읍으로 이사왔다. 윤슬이는 우리 가족이 시내에서 시골(사실 읍내이기 때문에 우체국, 도서관, 약국, 의원, 노래방, 당구장 등 있을 건 다 있다. 그래도 서울 사람들에게는 시골이겠지만)로 이사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땅을 사서 텃밭을 하자”고 노래를 불렀다. 빌라 화단 텃밭으로 만족을 못했던 것.
윤슬이는 제주도로 이주할 때 다섯 살이었다. 신기하게도 텃밭을 무척 좋아했다. 매일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면 텃밭에 가자고 졸랐다. 오늘은 일이 있어 안된다고 하면 울며 떼쓰기도 부지기수. 그래서 아예 어린이집에 이야기해 텃밭으로 하원시키는 날도 많았다. 토마토가 열리고, 수박이 열리고, 가지가 열리고, 옥수수가 열리고, 호박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윤슬이는 “아빠 신기해. 아기 열매가 열렸어”라고 신나했다. 가지, 호박, 토마토, 옥수수를 따고는 또봇 장난감을 얻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아했다. 나는 그런 윤슬이가 더 신기했다.
‘민들레’라는 잡지에서 ‘가족텃밭 활동백과’를 쓴 저자의 글을 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텃밭 일을 즐거워하다가 5월이 지나면서 아이들을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텃밭 일에 흥미를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이런 저런 노력 끝에 다시 아이들이 텃밭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고 썼다. 윤슬이는 그런 슬럼프 없이 줄기차게 텃밭을 좋아했다.
혹시 윤슬이가 일은 안하고 입으로만 텃밭을 즐기는 것으로 생각할련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 8살이 되고 나서는 어설프지만 한 명 몫을 한다. 정말 열심히 일을 한다. 기다림도 배운다. 4월 초부터 다른 가족이랑 우리가족까지 합쳐 3팀이 모여 애월에서 텃밭을 시작했다. 윤슬이는 꽃샘 추위가 한번 씩 심술을 부리는 3월부터 텃밭을 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나는 농사는 때가 있는 것이라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으면 죽거나 제대로 못 큰다고 설득을 했다. 대신 제주여성농민회에서 구입한 옥수수 씨앗을 발아시켜 트레이에 심었다. 옥수수 모종이 싹을 피웠다. 2주 동안 건강히 자라났고, 텃밭에 옮겨 심었다. 윤슬이는 조그마한 손으로 옥수수 모종을 텃밭에 옮겨 심었다. 지난 주말에 텃밭 옆 집에 사는 분이 주신 방풍나물 모종도 심었다.
텃밭에 대한 호기심은 책으로, 요리로 이어진다. 요즘 잘 읽는 책 중의 하나가 텃밭 책이다. 텃밭 13년차 도시농부가 쓴 책을 올해 구입했다. 한살림에서 텃밭을 할 때는 생산자가 늘 조언을 해줬다. 이젠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아무래도 텃밭 가이드가 필요했다. 이 책을 윤슬이 때문에 열심히 읽는다. 저녁 먹고 나면 꼭 읽어달라고 한다. 그래서 주말 텃밭 일에 맞춰 해당 부분을 읽는다. 옥수수 모종을 키울 때는 옥수수 부분을 같이 읽었다. 윤슬이는 도서관에 가면 텃밭 관련 그림책도 잘 빌린다. 요리하는 것도 즐긴다. 한참 쌈야채와 토마토가 나올 때는 직접 샐러드도 만든다. 진짜 칼로 토마토를 썰고, 쌈야채는 손으로 찢는다. 이제 삼겹살에 상추를 싸서 먹는 것도 즐긴다. 야채와 친해졌다. 윤슬이는 부엌에서 엄마나 아빠가 밥을 차릴 때도 같이 요리를 하고 싶어 한다. 7살부터는 진짜 칼을 주고 감자나 양파는 직접 썰게 했다. 요리로 주제로 한 그림책도 좋아한다. 그림책에 나오는 요리를 직접 해보자고 조른다. 텃밭을 하다 보니 부엌육아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윤슬이가 혹시 여자 아이냐고. 아니다. 남자 아이다. 윤슬이는 남자도 요리를 할 수 있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어릴 때부터 경험하고 있다. 텃밭이 자연스레 성평등 의식까지 이어지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제주로 이주 와서 텃밭을 해서 얻는 선물이 많다. 건강한 먹거리는 기본이고, 아이도 텃밭과 함께 성장한다. 마트에서 상품으로만 만나는 먹거리와 직접 키워 수확해서 먹는 야채와 과일은 분명히 다르다. 힘든 노동과 흙, 햇살, 바람이 만나서 우리가 먹는 먹거리가 만들어진다는 걸 직접 경험하는 것 자체가 소중한 배움이다. 윤슬이는 텃밭을 하다 보니 모든 먹거리가 제철이 있다는 것을 안다. 윤슬이는 겨울에 마트에 있는 수박을 보고는 “이거는 제철에 나오는 게 아니지”라면서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손발을 놀려 일을 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부모나 주변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경험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윤슬이는 어디 가서나 열심히 일해서 어른들한테 일꾼이라는 칭찬을 곧잘 받는다. 일과 놀이의 중간단계를 노작이라고 부른다. 4살 은유도 형이 일할 때 옆에서 모종삽 하나 들고 자기도 해보겠다고 흙도 파고 놀고 있다. 우리 가족은 텃밭에서 노작을 하면서 잘 일하고, 잘 놀고, 잘 먹고 있다.
* 애월로 이사 와서 텃밭을 하면서 좋은 이웃도 얻었다. 세 가족이 함께 텃밭을 일구고 있다. 한 텃밭 , 세 가족인 셈. 한 가족은 두 딸이 있는 직장맘. 한 가족은 일인가구로 비혼 여성. 애월로 와서 텃밭을 할 땅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아는 지인이 우리 가족을 애월에 사는 비혼 여성한테 소개해줬다. 지난 주에는 텃밭 일하고 삼겹살 파티도 했다. 아이들도 같이 텃밭을 하는 이모들을 무척 좋아한다. 좋은 이웃, 술 친구도 얻었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