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이 칼럼에 자주 등장한 우리 이모 이야기로 또 시작한다.
얼마 전 집에 놀러왔다가 유난히 징징거리는 아이를 보고 이모가 한마디 한다. “애 하는 게 꼭 동생 보는 애 같네” 무슨 근거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에 따르면 동생이 생길 때 아이가 심하게 보챈다고 한다. 초능력으로 엄마 몸 속의 생명의 존재를 알아채는 건지, 아니면 엄마가 부쩍 힘들어서 이전만큼 안아주지도 보살펴주지도 못하니까 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건지 아무튼 그렇다.
처음 이모가 그 말을 했을 때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건만 세번 정도 반복되자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설마??? 아직 수유 중이긴 했지만 출근하면서 재울 때만 젖을 물리는 정도라 그런지 지난 1월 말 ‘홍양’이 다시 찾아오셨는데 2월이 끝난 이 시점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그럼 혹시 둘째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나 뜻밖에도 눈 앞이 캄캄했다. 이렇게 눈 앞이 캄캄할 줄은 정말 몰랐다. 전에 쓴 칼럼에서 둘째, 셋째 가진 사람들이 부러워죽겠다고 고백했던 나인데, 세살만 젊었어도 둘째 가졌을 거라고 떠들고 다닌 나인데, 기쁨과 근심이 교차하면 모를까, 어째 이렇게 근심만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것인가 말이다.
정말 둘째를 가졌으면 어떡하지? 지금 인이 하나에 엄마와 언니가 매달려도 둘다 허덕이고 있는데 과연 둘째까지 봐줄 수 있을까? 입주 도우미를 구해야 하나? 아이가 둘이면 차라리 내가 직장을 그만 두고 육아에 매달리는 게 낫지 않을까? 직장을 그만 두면 대출금은 언제 다 갚지? 서울로 다시 이사를 가야 하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와중에 그래도 아이가 둘은 있어야지라고 외치던 식구들마저 등을 돌렸다. 언니는 “둘은 감당 못한다”고 선언했고, 엄마 역시 “너 힘들어서 여기서는 출근 못한다, 서울로 다시 이사 나가야지” 라는 말로 감당 못한다는 표현을 우회했다. 압권은 두달 전까지만 해도 둘째를 낳자고 했던 남편. 남편은 “정말 가졌으면 낳을 거야?”라는 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미친 거야?” 내가 버럭하자 남편은 우물쭈물 대답했다. “아니, 나는 자기가 너무 걱정하니까, 그냥 의견을 물어본 거라구...”
생각해 보면 참 웃기는 노릇이었다. 결혼하고 5년 넘게 생리만 시작하면 마음이 우울해지는 나날이었는데 아이 낳은 지 불과 1년 여 만에 애타게 생리를 기다리게 될 줄이야... 아이가 사랑스럽긴 하지만 나도, 엄마도, 아이 아빠도 그만큼 육아에 지쳤다는 말이었다. 예전에 양선아 기자가 둘째를 가지기 위한 준비라는 칼럼을 썼지만 둘째를 갖는다는 건 막연히 ‘아이는 둘은 있어야’라는 생각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며칠 뒤.. . 홍양이 찾아왔다. 시원섭섭 했냐구? 아니~ 안도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겸허히 받아들이게 됐다. 둘째는 남의 떡이라 더 부러웠을 뿐이었다고. 괜히 둘째에 대한 아쉬움으로 입맛 다시지 말고 하나나 잘 키우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