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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이것 좀 볼래? 너무 이쁘지 않니? 노랑 유화 물감 필요하면 이거 가져가라.

어쩌면 이런 색깔이 난다니?”'



나랑 같은 날에 태어나서 나보다 먼저 결혼해 첫 아들을 낳은 쌍둥이 자매가 호들갑을 떨며

내 얼굴에 들이민 것은 6개월된 조카가 싸 놓은 똥 기저귀였다. 나는 그야말로 ‘허걱!’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정색을 했지만 쌍둥이는 모유를 듬뿍 먹고 싼 그 노란 똥을 정말이지

감탄하며 보고 또 보고 있었다. 아무리 제 새끼가 이쁘다지만 똥 기저귀를 보면서 감탄하다니...

자식 똥까지 이쁘면 저나 실컷 볼 것이지, 아무리 조카를 이뻐한다기로서니 이모인 내 얼굴에까지

들이미는건 또 뭐란 말인가. 나는 못내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쌍둥이의 모습은 자식 사랑이 유별난 극성

엄마로만 보였던 것이다.



학창시절 채변 봉투를 받아가야 할 때면 세상에 가장 더러운 게 똥인양, 콩알만한 똥이 들어있는

채변 봉투를 코를 싸쥐며 미화부장에게 넘기고는 손을 씻으러 간다고 난리를 쳤던 나였다. 신혼 초

에는 남편의 방귀소리도 불결하다며 펄펄 뛰곤 하지 않았던가. 그러던 내가 낳은 첫 아이가 생후 며칠간

초록색 태변을 보다가 젖돌고 나서 처음으로 노란 모유 똥을 쌌을 때 온 세상에 대고 자랑하고

싶을 만큼 그 똥이 기특하고 이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세상에 그렇게 이쁜 노랑색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 옛날  쌍둥이가 내게 이걸로 그림이라도 그리라고 했구만...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아, 잊을 수 없는 첫 노랑 똥이라니...



엄마가 되면 똥이랑 친해진다. 처녀시절에 날고 기는 깔끔쟁이에 비위가 약하고 더러운 것은

조금이라도 못 참는 성격이었다해도 엄마가 되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 아이의 몸에서 나오는

것인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가 없는 것이다. 잘 먹고 이쁜 똥 싼 것을 확인할 때의 흐믓함이란

또 얼마나 큰지... 매일 매일 확인하면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느끼는 것도 엄마된

행복이었다.



천 기저귀를 쓰다보면 똥과 더 친해진다. 손으로 털어내고 비벼 빨다 보면 아이의 몸에서 나온

똥은 단순한 배설물이 아닌, 아이의 건강이자 하루 생활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첫 아이 똥에

섞여 나온 화초잎을 보고서, 내가 안 볼때 마루에 있던 화분에서 잎을 하나 떼어 입에 넣고

열심히 삼키느라 애썼을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빙그레 웃던 일이 생각난다. 똥에 피가 섞여

나온 줄 알고 깜짝 놀라 살펴보니 어느결에 입에 넣었던 방울 토마토 껍질인것을 알고

안도하기도 한다. 이가 한창 나올 무렵에 조금 된 밥을 넣어 주었는데 잘 소화시켜 똥으로

싸 놓은 것을 확인했을때는 얼마나 대견한가.

기저귀에 묻은 아이 똥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아이가 하루 종일 먹은 음식들이랑, 아이의  속 건강

까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아프거나 몸이 안 좋으면 똥도 달라졌다.

형님은 귀한 첫 아들을 낳고 똥까지 찍어 먹어가며 정성껏 아이를 키우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시집와서 들었지만 나는 그렇게 까진 못 했어도 손으로 만져보고, 냄새 맡아가며 아이들을

길렀다. 지금도 변함없이 막내 이룸이의 똥 기저귀를 손으로 빨아가며 아이의 하루를 냄새 맡고

주물러가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 8년동안 애 셋을 낳고 키우면서도 여전히 똥과는 별로 친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도 막내가 똥을 싼 것 같으면 얼른 나부터 부른다. 남편 옆에서 똥 기저귀를 가느라

펼쳐 놓으면 냄새 난다고 얼굴을 찌푸린다. 어쩌다 똥 싼 막내 엉덩이 좀 닦아주라고 시키면

오만상을 찡그리며 꼭 자기가 해야 하냐고 내게 사정한다. 어이가 없다.



여자라고, 엄마라고 똥이 처음부터 이쁠까.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다보면 똥이 반갑고

고마운 순간들이 온다.

첫 아이가 아기였을때 몸이 안 좋았는지 며칠 칭얼거리면서 3일간 똥을 안 싼 적이 있다.

매일 규칙적으로 똥을 누던 아이가 똥을 싸지 않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도 젖은 계속 먹는데 똥이 안 나오니 배도 불편하고 영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3일이 지나도 안 나오면 병원에 가던지 관장을 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걱정하고 있는데

4일째 되던날 무언가가 다리에 묻에 씻기느라 아랫도리를 벗기고 세면대에 세워서 씻기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면서 온 몸에 힘을 주더니 순식간에 바나나 같은 똥을 선 채로

줄줄 싸는 것이다. 엉겹결에 세면대에 떨어진 똥을 손으로 건져 변기에 넣으면서도 더러운 줄을

몰랐다. 어디가 아픈줄 알고 걱정했는데 며칠 만에 이렇게 이쁜 똥을  싸는 것이 기특하고

고마와서 똥을 만지면서도 웃고 또 웃었다. 그 똥으로, 오랜 걱정이 한순간에 스르르 녹아 내렸다.

장염이 심하게 와서 내내 설사만 하던 아이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몽글거리는 똥을 누기 시작하는

걸 볼 때도 얼마나 안심이 되고 기쁘던지...



결혼 8년간 세 아이를 키우다보니 이젠 아이들 똥에 대해서 일가견이 생겼다.

눈으로 딱 보기만 해도 아이 속 건강이 훤하게 보이는 것이다.

아이가 많이 아프기라도 하면 똥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되었다.

며칠 열나고 아프던 아이가 똥을 제대로 싸기 시작하면 이제 몸이 돌아왔구나... 알게 된다.



윤정이와 이룸이가 지난주 내내 많이 아팠다.

이룸이는 젖이라도 내내 빨았지만 윤정이는 거의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똥도 안 누고 열은 내내 높았는데, 닷새만에 제대로된 똥을 누면서 열이

내리는 것을 보고 안심했었다. 몸이 돌아왔으니 이제 기운만 차리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10개월이 넘어서는 이룸이는 여전히 젖을 많이 먹지만 누룽밥도 먹고, 국에 말은 밥도 잘 먹는다.

잘 먹고 이쁜 똥 싸는 모습 보면 정말 행복하다.

아이 똥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가며 키우는 시절도 길지 않다. 어느결에 저 혼자 똥꼬를

닦으려고 하는 네 살 윤정이를 보고 있노라면 내 손에 제 온 몸을 맡기는 날들도 길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룸이의 똥 기저귀를 즐겁게 털고, 빨고, 삶는다.

똥 냄새, 젖 냄새가 가실 날이 없지만 이렇게 보낼 수 있는 엄마의 날들이 사실은 제일 고맙고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곽재구 시인은 <누런 똥>이라는 시를 썼다.



-   풋고추 열무쌈 불땀나게 먹고



    누런 똥 싼다



    돌각담 틈새 비집고 들어온 바람



    애호박 꽃망울 흔드는데



    이쁘구나 힘주어 누런 똥 싸다보면



    해지는 섬진강 보인다



    사는 일 바라거니 이만 같거라



    땀나고 꽃피고 새 거름 되거라 -



시인의 마음이 꼭 내 마음이다. 

바라거니 나와 내 아이들의 삶도 이 시와 같아라.



 잘 먹고, 잘 싸고, 새 거름되는 삶이 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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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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