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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은 아들의 생일이다.

결혼 1주년 때 얻은 아들이라 아들의 나이는 우리가 결혼한 햇수와 꼭 같다.

주부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내 나이도 늘 아들의 나이와 같이 간다.

 

열네살이 된 아들은 이제 엄마, 아빠보다도 훨씬 크다.

키도 크고, 발도 크고, 목소리도 굵고, 코 밑이 조금씩 거뭇해지고 있다.

아들은 변하지 않은 것들과 완전히 변한 것들,

그리고 계속 변해가는 것들 사이에 존재한다.

고기와 레고와 만화와 예능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갓 데쳐낸 두릎의 맛을 알게 되었고, 설거지가 밀려 있을때 부탁을 하면

툴툴 거리면서도 도와줄줄도 알게 되었고,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저도 같이 읽게 되었다.

아들은 아이도 아니고, 청년도 아니지만 그 어디쯤 존재하는 사내가 되어

나날이 조금씩 커 가고 있다.

아들을 지켜보며 남편과 나는 자주 흐믓하게 웃는다.

고마운 마음..

그 마음이 제일 크다.

 

아들의 생일2.jpg

 

아들의 생일은 마침 토요일이었다.

모처럼 가족끼리 마당에서 테이블을 펴고 축하 파티를 했다.

토핑을 빼고 특별히 주문한 케익위에

잘 익은 앵두를 장식하는 일은 두 여동생들 몫이다.

앵두 케익이 있어야 아들 생일같다. 세월이 흘러도 그럴 것 같다.

남편은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주었다.

이쁘게 핀 접시꽃들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충분히 넉넉하고 행복한 자리였다.

 

아들의 생일4.jpg

 

하루 전날 아들은 학교에서 생일잔치를 하고 받아왔다며 수십통이 넘는 편지들을

쏟아 놓았다. 초등과정에서부터 고등과정까지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 모두에게

받은 축하 편지다. 열명이 넘는 선생님들도 각각 엽서 한장에 빼곡한 글들을

적어 주셨다.

그냥 축하한다는 뻔한 말들이 아니라, 새 학교에서 처음 맞이하는 생일에 대한

인사와 그간 학교 생활에서 보아온 아들의 모습과, 자신들의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과

고민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아이들은 빼곡한 글씨들로

적어  건넸다.

 

온 가족이 모여 그 편지들을 읽었다., 그러면서 많이 웃고 또 울었다.

편지를 읽으면서 알았다.

아들을 수학시간에 아주 열심이고, 문제를 잘 풀어서 부러움을 사고

공기를 잘 해서 동생들의 우상이 되었으며, 베드민턴 동아리에서 제법 멋진

활약을 하고 있었다.

여러 편지에서 어린 동생들을 잘 챙기고 후배들에게 잘 해준다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농사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일도 척척 잘 하고

선배들이 청소할때마다 늦게까지 남아서 꼭 도와주고 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둠끼리 하는 연극에서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아 연습중이라는 사실도

편지를 읽으면서 알았다.

모든 학교 구성원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들은 학교 생활을 아주 즐겁게,

유능하게 잘 하고 있는 아이로 표현되어 있었다.

놀랐다. 정말 놀랐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학교를 좋아하게 되었고,

선배들과 친구들과 후배들에 대한 정이 생기고,

선생님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들은 우리가 짐작한 것 보다 훨씬 더 잘 하고 있었다.

배움도, 관계도, 몸을 쓰고, 친절을 배풀고

기꺼이 돕는 것도 잘 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여전히 천덕꾸러기처럼 굴기도 하고, 동생들과 자주 싸우고

무섭게 윽박질러서 야단도 맞고, 좀처럼 몸을 움직이고 싶어하지 않는 게으름으로

잔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학교에서는 충분히 제 몫을 아주 잘 하고 있었다.

그게 너무 고마왔다.

 

"음... 수학은 정말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 일이니?

동생들을 잘 챙긴다니... 우리 아들이 맞나?

집에서 하는 농삿일엔 관심도 없는데 학교 농삿일엔 척척 나서신다고?

호오... 이거 정말 완전한 이중생활이구나.." 놀렸더니

"제가 한 45중 생활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하며 큭큭 거렸다.

 

아.. 정말 고맙다.

학교를 좋아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그냥 그거면 감사하겠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들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제 생활을 좋아하고

잘 해내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만큼 행복했다.

 

아들의 생일.jpg

 

엄마를 너무나 좋아했던 아들이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엄마와 얼굴을 맞대고 자던 아들..

눈물도 많고, 걱정도 많고, 불쌍하거나 잔인하거나, 가슴 아픈것은 감당하지 못해

괴로와하던 여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아들이다.

엄마를 뜨겁게 원하고 사랑했던 만큼, 제가 원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을땐 사정없이 무서운 말들로 내 가슴을 할퀴고, 도무지 다시 아물지

않을 것 같은 생채기를 내며 나를 무너지게 하곤 했다.

너무 사랑해서 너무 미웠던 아들..

너무 원해서, 너무 미웠던 엄마..

우린 아주 오랫동안 그런 사랑과 미움속에서 서로를 밀어내고, 또 끌어 안으며

지내왔다. 그 사이 아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언어치료를 받아야 했고

학교 부적응으로 제도권 학교를 나와 대안교육을 선택하기도 했다.

제발 그냥 보통 아이들처럼만 자라 달라고, 다른 건 다 필요없으니 그저

평범하게만 커 달라고 울던 날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어느새 아들은 이렇게 자라서, 제가 있는 곳에서 제 몫과 책임을 의젓하게

감당하며 넉넉하고 유머있고 따스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는 뭐랄까..

내 인생의 한 단락이 끝나고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들도, 나도 삶의 큰 고비 하나를 넘은 느낌..

이제는 조금은 서로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는 마음...

아마도 13년을 제법 치열하게 싸우고, 미워하고, 사랑하며 살아왔기에 가능한

그런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열네살이 되고, 우린 결혼 14년차 부부가 되었다.

가족으로서 지내온 14년과 앞으로 살아갈 더 많은 날들을

이제 조금 안심하고 기대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이만큼 크느라 애썼다.. 아들..

너답게 커 가는 모습.. 제일 고맙다.

너의 열다섯, 너의 열여섯.. 두근두근 기대한다.

네가 있어서 다시 살고 있는 이 푸르고 여리고 말랑한 시절들..

고맙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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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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